부처님 성지에서 느끼는 환희로움
“아난다여,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가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태어나셨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셨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여기서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셨다’라면서 믿음을 가진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아난다여, 누구든 이러한 성지순례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대반열반경』
성지순례에 대해 부처님이 남긴 유훈이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시고 깨달음을 얻으시어 중생을 교화하시다가 열반에 드신 땅, 인도. 불자라면 누구나 인도성지순례를 꿈꾸며, 한 번쯤은 부처님의 향훈이 남아있는 땅을 밟아보고 싶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인도성지순례 가이드북을 펴낸 대연 스님을 만나, 성지순례의 의미와 궁금증을 풀어본다.
부처님의 향훈이 남아있는 성지의 힘
-인도에는 언제 처음 가보셨나요?
=1998년입니다. 부처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죠. 그 전에 선방만 다니며 10안거를 났어요. 그런데 앉아서 공부한 것이 일어서서 움직이면 깨지고, 현실에서는 적용이 안 되는 거예요. 어느 날 『가려뽑은 아함경』이라는 책을 읽고, ‘부처님은 이토록 쉽게 이야기하셨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어렵게 공부하나’라는 의문이 생겼죠. 다른 나라 스님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고 싶어, 1997년부터 미얀마를 비롯한 불교국가의 수행센터에서 수행을 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 56개 국을 다녔습니다. 외국 절에서 머물거나 현지인들에게 영어로 법문하며, 때로는 공부하러 또 때로는 세상 구경하러 많이 떠돌아다녔지요.
-성지순례 가이드북 『불교성지순례 인도-네팔』을 펴낸 계기는 무엇입니까?
=인도를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대중교통과 도보로 성지 순례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처님이 19안거를 지내신 기원정사에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감탄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거예요. 내 평생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기쁨이 있었어요. 부처님의 향훈이 남아있는 성지의 힘인가 싶었죠. 중생에게 주는 기쁨으로 생각하며 며칠간 즐겼어요. 그때 기회가 되면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발원을 했는데, 2002년 그곳의 나무 밑에서 1년을 살며 이뤄졌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성지순례 오신 많은 분들을 보게 되었는데, 역사적 배경과 설명 없이 그냥 왔다 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올바른 성지순례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서 가이드북을 내게 됐습니다.
-인도에는 몇 번이나 갔다 오셨는지요?
인도에서는 2년 반 정도 살았구요, 8대 성지만 11바퀴 돌았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부처님의 외가까지 훑어보았지요. 지금도 매년 인연 되시는 분들과 함께 가고 있어요. 저는 어느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문화를 알기 위해 우선 박물관을 섭렵합니다. 인도 뉴델리 국립박물관도 한 달 이상 둘려보며 거의 살다시피 했죠. 그곳에 피프라흐와에서 발견된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니, 지금은 모든 여행사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었어요. 제가 성지순례를 가는 이유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갔다 올 때마다 경전을 읽으면, 경전의 내용과 폭이 달라져요. 그 즐거움이 너무나 크기에 가는 겁니다.
부처님의 제자답게 살겠다는 발원
-성지순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지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에요. 내 스승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그 발자취를 쫓아가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경전의 뜻을 더욱 잘 새기며 발심과 수행정진의 계기가 이뤄집니다. 그것을 통해 부처님 제자답게 살기 위한 실천과 노력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는 것이죠.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온 신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말씀드렸듯이, 부처님의 생애와 배경을 이해하며 부처님이 누구인지 몸소 느끼게 된 것이죠. 부처님이 뜬 구름 잡는 분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부처님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면서, 수행은 실제적인 것이지 결코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떤 분이 “왜 부처님께 절하는지 알게 됐어요.”라고 말할 때 저도 보람이 느껴지고 행복해지더라구요.
-일정이나 프로그램 등 성지순례는 어떤 방식이 바람직할까요?
=저는 일정을 촉박하게 안 짭니다. 정신없이 급하게 다니면 갔다 와서 고생한 기억밖에 없어요. 성지순례는 고행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게 진행되면 안 돼요. 수행의 기쁨을 느껴야 수행을 계속할 마음이 생기듯, 성지순례도 즐거워야 환희심도 나고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습니다. 오며 가며 부처님의 설법하신 내용을 되새기며, 부처님 제자답게 살고 싶다는 원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인원 구성도 너무 많으면 진행에 어려움이 있어요. 30명 이하가 적절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성지순례 가시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인도 성지순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도 역사와 힌두 신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배경이 없으면 인도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어요. 인도의 문화나 관습들을 알아야, 부처님이 왜 그렇게 설법할 수밖에 없었는지 명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흔히 여행사 가이드의 말이 전부인 줄 알고 맹신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은 역사와 문화 전문가가 아닙니다. 흥미 위주의 설명을 하기 때문에, 꼭 한 분이라도 인도의 문화와 부처님의 일대기를 꿰뚫고 설명할 수 있는 분이 동행해야 합니다. 자료 준비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따라 성지에서 받는 감동과 환희심의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불교8대성지
1. 룸비니-부처님의 탄생지
친정으로 가던 마야 왕비는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무우수 아래에서 왕자를 출산한다. 후일 인천(人天)의 대스승이 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유적지로는 마야 왕비가 출산 후 목욕한 연못과 마야데위 사원, 아소까 황제가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아소까 석주’가 있다.
2. 부다가야-깨달음을 성취한 곳
부처님은 전정각산에서 극한의 고행을 한 후, 지친 육신을 이끌고 네란자라 강에 이르렀다. 수자타가 공양한 유미죽을 먹고 기운을 차려, 보리수 아래 앉아 목숨을 건 마지막 수행에 몰입해 대자유인의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다. 깨달음을 성취한 자리인 금강보좌 위로 마하보디 대사원이 세워졌다. 서쪽에는 부처님 당시의 보리수로부터 4대(代)에 해당하는 보리수가 있다.
3. 사르나트(녹야원)-최초로 설법한 곳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처음 펼쳐진,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그때까지 고행을 계속하던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하기 위해 250km를 걸어 이곳에 도착했다. 설법을 들은 다섯 비구도 곧 아라한이 되었다. 사슴동산이라는 녹야원의 뜻처럼, 지금도 성지 옆에는 울타리를 쳐놓고 사슴을 방목하고 있다.
4. 라즈기르(왕사성)-불교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가 있는 곳
마가다 왕국의 수도였던 라즈기르.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와 부처님께서 머물렀던 여래향실이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후 제1차 결집을 한 칠엽굴과 부처님의 유골을 가져다 세운 사리탑터가 남아있다.
5. 쉬라바스티(사위성)-수많은 경전의 무대로서, 가장 오래 머무신 곳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던 쉬라바스티. 부처님께서 35세에 성도하신 후, 45년을 사시는 동안 25번의 안거(기원정사 19안거, 녹자모강당 6안거)를 보낸 곳이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기에 곳곳에 수많은 일화와 부처님의 자취가 남아있다. 이곳을 무대로 『금강경』을 비롯한 숱한 경전이 설해졌다.
6. 상카시아-천상에서 설법하고 인간세계로 내려온 곳
설화의 땅으로 전해진다. 부처님은 쉬라바스티에서 외도들의 도전을 받아 세 가지 신통력을 보이신 뒤, 도리천으로 올라가셨다. 왕자를 낳고 7일 만에 죽은 마야 왕비를 비롯해 천신들에게 3개월간 설법을 했다. 이곳을 통해 인간세계로 다시 내려오셨다.
7. 바이샬리-마지막 안거를 보내신 곳
부처님이 마지막 안거를 보낸 곳이다. 이곳은 최초로 비구니의 출가를 허락한 곳이며,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이 있다. 유마 거사의 고향으로 『유마경』의 무대이기도 하다.
8. 쿠시나가르-열반에 드신 곳
춘다의 공양을 받은 후 생긴 병으로 고생하던 부처님이 이곳에 도착해 열반에 들었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펴고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서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열반당이 세워졌으며, 그 안에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모습을 형상화한 6.1m 길이의 열반상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