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둘째 주 일요일이면 조계사 불교대학은 무량감로회의 의료봉사를 기다리는 노인들로 붐빈다. 10시부터 진료를 시작하건만 9시부터 얼추 100여 명이 강의실에 모였다. 지역노인복지회관 등을 통해 저소득층 노인 사이에서 꾸준히 입소문이 퍼져 지금은 매달 250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 대부분이 자녀들이 장성하고 독립한 후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들이다. 이들이 모여 있는 강의실은 외롭고 쓸쓸하다. 청춘이 낡은 사진처럼 흔적으로만 남은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병을 달래줄 치료의 손길이다.
불자 약사와 의사들로 구성된 의료봉사 단체인 무량감로회가 결성된 건 2009년. 무량감로회는 불자 약사들의 모임인 불자약사보리회로 시작했다. 1998년 소외된 노인을 돕겠다는 뜻을 모아 결성된 불자약사보리회는 자비를 들여 종로 탑골공원과 서대문구 독립문에서 간단한 진단과 무료 투약 봉사를 해왔다. 하지만 2001년 의약분업이 법제화되면서 약사들이 처방할 수 있는 약의 종류가 줄어들었다. 이에 이발봉사와 식사 제공 등 추가로 봉사활동을 기획했지만, 원래 취지였던 의료봉사의 범위가 줄어든 것이 이내 아쉬웠다.
의료봉사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게 된 것은 2009년 불자 의사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불자약사보리회에서 무량감로회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의료봉사에 나섰다.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회원들도 점점 늘었다. 현재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회원만 의사 10여 명, 약사 20여 명, 자원봉사자 50여 명이다.
무량감로회 의사들은 보통 10년 이상의 의사 경력을 지니고 있는 전문의들이다. 박귀원 회장만 해도 서울대학교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소아외과 전문의이다. 박 회장은 원래 기독교인이었다. 김종화 불교연구원 이사장이 운영하는 문화재답사모임에 참가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불교문화재를 보고 불교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김종화 이사장의 권유로 능인선원에서 불교수업을 듣고 불교로 귀의했다.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시는 회원들이 있어요. 어떤 회원들은 레지던트나 원무과 직원을 데리고 나오고요. 한번 나왔던 회원들은 꼭 다시 나옵니다. 일반 병원에서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유명 의사의 진료도 여기서는 금방 받을 수 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해요.”
오전 10시가 되자 노인들은 접수대에서 진료카드를 받아 진료소로 이동했다. 무량감로회의 진료과목은 내과, 정신건강의학과, 피부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이비인후과로 작은 종합병원 규모이다. 처음 찾은 노인은 아픈 곳을 자세하게 묻고 진료카드를 만들어 관리한다. 그리고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각 분과로 이동해 진료를 받는다. 가장 많이 찾는 과는 내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이다. 아무래도 천식, 관절염 등 노인성질환이 많기 때문이다.
무량감로회의 진료소는 강의실 책상 하나가 전부다. 하지만 강의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환자와 마주한 회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료에 임한다. 증상을 꼼꼼하게 묻고 주의사항도 세세하게 일러준다. 진료가 끝나면 손을 꼭 잡고 건강을 기원한다. 약사들은 감기약 하나를 지어도 영양제를 더한다. 그런 정성 하나하나에 감동한 노인들은 직접 나서서 입소문을 퍼트린다. 조금씩 늘어난 노인들은 현재 250여 명이 넘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서초동에 사는 오말협 할머니(75세)는 무료 진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조계사 불교대학까지 지하철을 타고 찾아온다.
“자식들 독립하고 혼자 살아. 내가 여기 다닌 지 벌써 5년이 넘었어. 예전에 독립문에서 약 나눠줄 때부터 다녔지. 여기 약 먹으면 다른 데 약은 못 먹어. 약이 좋아. 지금 일주일치 주는데 그거 가지고는 안 돼. 한 달 치 줬으면 좋겠어.”
삼귀의로 시작한 무량감로회 의료봉사는 권혁철 회원의 유식 강의로 마무리된다.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권 회원은 기독교를 따르다 10년 전부터 유식불교를 공부해왔다.
“불교는 진리를 관념적인 것이 아닌 현실세계의 연기 법칙에서 찾습니다. 봉사활동은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연기의 일부입니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면 제 마음이 편안해져요. 회원들끼리 봉사활동도 중독이 된다고 하는데, 활동을 하면 할수록 모두 제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무량감로회는 여러분의 참여와 후원을 기다립니다. 매달 5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어르신들이 점점 늘어나다보니 안내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회원들의 회비로는 약품을 마련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후원을 기다립니다.
-봉사활동 참여 방법: 매월 둘째 주 일요일 9시까지 조계사 앞 도착 후 연락(총무 강영자 010-4185-4543)
-후원 계좌번호: 신한은행 100-025-810643 (예금주 박귀원)
*입금 후 다음 카페 ‘무량감로회(cafe.daum.net/aaams)’에 댓글을 남겨주시거나, 강영자 총무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