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에 안기다
강진 백련사 남도기행 템플스테이 - 아암과 초의가 걸었던 옛길
봄.
봄은 봄이다.
봄은 앎이다.
앎은 사랑이다.
사랑은 슬픔이다.
슬픔은 삶이다.
삶은 때마침이다.
동백의 붉은
절명이다.
다산과 아암 길이 되다.
서로 교류하고
그리워하며 정신세계를
넘나드는 사이,
마침내 서로에게 스며들어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의 길이
되었을 것이다.
남도의 땅, 봄날의 경이
봄은. 동백의 그 붉디붉은 절명絶命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백련사의 동백숲에 들어 생각했다. 백련사의 동백숲에는 아직은 사랑에
눈멀지 못한 천연한 애기동백 하나 나무숲에서 동자승의 살빛웃음처럼 간지럽게 웃고 있고, 사랑에 제넋을 툭 놓았을 절대의 절명들도 귀의처로 가고 없는 시간이 그림자만 누이고 있었다. 나에게 봄은 슬픔이었다. 까닭모를 눈물이었다. 한없는 해바라기로 등을 태우며 그렁그렁하는 마음이 건조되기를 바랐던 것도 봄이었고, 질질거리며 걷다 보면 진달래가 피어있어 질질거림의 사유를 진달래 탓으로 돌리며 겨워했던 것도 봄이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건 제 근본을 뚫고 나오는 싹들이라는 정의를 내린 것도 봄이었다.
최초로 봄산의 봄색에 가슴 절절해져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대둔산 아래에이봄, 나는와있다. 이팔청춘의 가시내였던 내가 사십이 훌쩍 넘어 백련사의 동백숲에 들어 내봄날을 추억하고 있다.
아암과 다산의 마음이, 초의의 발길이, 그들의 사유와 공유가, 그리움이, 지향이 가득한 백련사의 애기 동백숲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더듬고 있다. 봄바람이다. 꽃을 부르고 싹을 부르던 봄바람이 나를 부르고 우리를 불러 백련사에 닿게 했다.
그랬다.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던 사람들. 강진에서의 추억을 더듬어 포항에서 왔다는 마음 넉넉한 가톨릭 신자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기 위해 충전하고 있다는 불심깊은 여인, 채식주의자, 예수 닮은 깊은 저음을 가진 신부를 꿈꿨다는 수행자, 각각 혼자 떠나와 길동무가 되고 룸메이트가 된 사람들. 봄은 그들을 불러모아 2박 3일간 만덕산을 병풍 친 남도의 땅 강진 백련사에 함께 머물게 했다. 이 또한 봄날의 경이 아니겠는가?
가장 환하고 정갈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백련사의 원래 이름은 만덕사萬德寺로,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801~888)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1211년(고려 희종 7년)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 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白蓮結社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白蓮社로 불리우게 되었다. 白蓮寺가 아닌 白蓮社인 이유는, 즉 삶 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수행을 통해 현세를 정토로 만들자는 최초의 민간결사운동인 백련결사 운동을 백련사에서 벌였기 때문이란다. 이 또한 남도정신의 한 근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재 백련사에는 초의 선사의 맥을 잇는 여연 스님, 백련결사의 후예 같은 일담 스님과 원정 스님이 계신다. 백련사의 남도기행 첫날, 여장을 풀고 일담 스님과 차를 마시고 원정 스님으로부터 예불법과 사찰 내 예절을 익혔다. 맛있는 저녁공양, 남도의 맛은 사찰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후 저녁예불에 앞서 참가자들이 범종을 각각 세 차례씩 울렸다. 어설픔이 경건함을 해치진 않았을지, 저녁놀이 슬몃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먼데 구강포가 한번 들썩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 백련사의 첫날은 어둠과의 만남이었다. 어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문명이 걷어내버린 원시의 그 어둠. 그 맑고 환한 어둠을 고스란히 마주하게 된 나는 부처님의 가피라도 받은 듯 환희로웠다. 백련사에 온 이유가 지금 이 순간 이 어둠과의 만남에 있는 듯했다. 내가 경험한 가장 환하고 정갈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태고를 간직한 순백의 어둠이 백련사, 그곳에 거하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다만 어둠과 함께 어둠인 채로 한밤을 보냈다.
산사의 아침은 아련한 새벽 도량석의 목탁소리와 깊은 산을 건너고 먼 곳 강물을 타고 온 바람이 텅 빈 제 몸을 울려내는 듯한 종소리로 눈을 뜨게 하였다. 그 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깊숙한 데를 울리고 이끌어 심연에 닿게 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가 없었고, 기어이 이튿날은 새벽예불과 참선시간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혼자 마루에 앉아 법당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명상이랄 것도 없이 그저 일탈된 자로서 망연자실 가부좌를 했던 것 같은데, 청정한 바람이 나를 꼬옥
안아 편안함으로 쉬게 했다.
벼락처럼 만난, 내 슬픔의 벼리
일담 스님이 이끌었던 남도기행은 그동안에 맛보았던 여타의 기행 길과는 달랐다. 대중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을 남도의, 강진의, 대둔산의, 백련사의 속내
가 있고 쉬 내보여주지 않았을 속살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었다.
아암혜장 선사가 4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드셨다는 북미륵암에서의 마애불 친견은 그 어떤 말로도 장엄과 경이와 위안을 표현할 수 없었다. 벼락처럼 내 슬픔의 벼리를 만나게 했다.
오랫동안 봄이 슬픔이었던, 아픔과는 다른 그 어떤 슬픔, 그 슬픔의 실마리를 보게 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그리움, 나는 내가 그리웠던
거다.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잃어버린 내가, 나는 그리웠던 거다. 백련결사 당시 민중의 염원과 발원이 먼데서 종소리처럼 아련하게 들려오는듯 하다.
“맑게 소리내어 독송하면 생명의 소리는 스스로 바람이 되고 선정禪定의 향기는 그득하게 펼쳐져 두루두루 비처럼내린다.”, “믿을지어다. 불과佛果가 멀지않음을. 어찌 이 마음을 가벼이 여기겠는가.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무릇 한 구절이라도 듣는 이는 오히려 보리의 수기를 받는데, 하물며 삼매를 닦는다면 찰나에 몰록 성불한다.”
그리고 자비한 웃음으로 앉아계시기만 하던 마애불이 몸을 일으키시는 모습을 본것은 꿈이었을까?
돈언燉焉 이은영.
전통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간략한 붓 터치로 선禪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문인화가. 조선대 미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고향인 순천에 머물며 순천미협, 순천청년작가회, 그림벗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세종문화예술회관 부스전을 비롯해, ‘그림으로 읽어가는 3인의 그림전’ 등 각종 그룹전과 정기전을 갖고 있다.
강진 백련사 남도기행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아암과 초의가 걸었던 옛길 _ 맑은 차 한 사발(淸茶一椀)
생일도 학서암 _ 우리는 모두 별이다
밤하늘의 은하수 같은 남도의 섬들을 바라보며, 그 섬이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사연을 만나는 명상여행.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임철우 작가가 태어난 고향은 섬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선량도라고 불리던 섬이다. 지금은 날마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기쁘다 해서 생일도라고 한다.
생일도에 있는 학서암은 완도에서 가장 오래된 암자로 명절 때마다 불공을 드리러 온 돛단배들이 줄을 잇는다. 학서암이 있는 백운산 정상에서는 청산도와 보길도, 거문도 등 완도의 섬들이 한눈에 보인다.
백운동 별서와 상견성암 _ 백운유거白雲幽居
흰 구름(白雲)은 예로부터 출가자, 운수납자를 상징한다. 유학자의 수행터인 백운동 별서, 그리고 스님들의 천년 수행터인 월출산 상견성암을 찾아간다. 상견성암은 지금도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고 있는 토굴이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상견성암에 올라 좌선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평생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수행터의 맑은 기운 속에서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참나를 찾는 특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문의 _ 강진 백련사 061-434-0837, www.baekryunsa.net
<우리절에 안기다>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www.templest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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