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융회통의 정신으로 불교와 사회를 살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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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회통의 정신으로 불교와 사회를 살려야 할 때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4.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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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뜰

한국 사회에 불교는 있는가? 불교 신자가 2,0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지만 불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불교를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불교가 땅에 들어온 뒤 우리 겨레의 정신과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문화재의 3분의 2는 불교 문화재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 전통에는 알게 모르게 불교가 배어 있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나 관습 중에도 불교로부터 나온 것이 적지 않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불교를 어떻게 바라볼까? 많은 이들이 말한다. 불교는 어렵다고. 또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낡은 종교라고. 불자가 아닌 이는 물론이고 불심 깊은 불자들의 입에서도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 그런 말들이 쉽게 튀어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불교가 개인 차원의 기복신앙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는가?

뭇 생명을 위한 자비의 삶을 추구하는 불교
불교는 무엇일까? 불교는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을 위한 자비의 삶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종교이다. 또한 스스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착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한 현대 사회에서 불교의 가르침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도덕적 선진국을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불교를 바라보는 눈길이 호의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이것은 불교가 오늘날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과 맞물려 있다.
현대사회는 인간상실의 시대이다. 물질적 능력, 경제적 능력을 잣대로 모든 것을 헤아림으로써 인간을 물질로 평가하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인간상실의 시대에 인간중심의 종교인 불교는 인간을 인간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줄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소지를 안고 태어났으므로 소중한 존재이다. 귀하고 천하고 부유하고 가난하고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바르게 살려는 생각과 실천만이 불교에선 중요하다.
또 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갖가지 갈등들이 나타나고 있다. 남북이 갈라져 한 형제끼리 이데올로기 갈등을 빚고 있다. 남쪽에서는 어느 곳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이쪽 편과 저쪽 편이 갈라져 치열하게 맞서는 지역갈등이 우리 국민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과 대립이 더해진다. 또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갈등이 있고, 나이와 세대에 따르는 갈등도 있고, 종교의 차이에 따르는 갈등도 만만치 않다. 불교의 가르침은 이 같은 갈등과 대립을 통합과 화합으로 이끌 수 있다. 두루 원만하여 막힘이 없고, 갈등과 대립이 있을 때 한 단계 높은 곳에서 화합하는 원융회통의 정신이 우리 불교의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우리 사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고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
다. 불교가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 자체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사회에서의 불교의 구실을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불교부터 바로 서지 못한다면 어떻게 불교가 사회의 아픔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통합종단 50년은 불교계 자성의 계기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불교의 위상이 낮아진 것은 고질적인 불교 집안의 다툼 때문이었다. 원래 우리 불교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호국불교라 하면 흔히 많은 사람들은 불교가 권력에 빌붙어 국가의 비호를 받으면서 번영을 누려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호국불교는 원래 이 땅이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땅(佛緣國土說)이라는 생각에서 이 땅을 부처님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淨土思想)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이 땅을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지키려는 것이 바로 호국불교였다. 그런데 닭벼슬보다도 못하다는 중벼슬(종권)에 눈이 어두워진 일부 권승들이 권력과 결탁함으로써 호국불교의 전통을 타락시킨 것이다.
다행히 불교의 타락을 안타깝게 여긴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의 노력으로 권승의 무리를 몰아내고 새로운 불교의 개혁이 추진되었다. 절집을 깨끗하게 만들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떨어진 불교의 위상도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권력 눈치보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절집 살림도 아주 깨끗해진 것은 아니다. 올바른 선 수행과 계를 제대로 지키는 기풍이 불교 집안에 가득한 것도 아니다. 통합종단 50년은 아직도 갈 길이 먼 불교계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회 속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민 옆에 늘 함께 하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불교의 사회참여가 중요하다. 불교의 사회참여는 어두운 곳을 밝히는 단순한 봉사나 복지활동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어두운 곳을 만드는 원인을 찾아내 고쳐야 한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비판하고, 정의 사회를 만드는 것은 피해서는 안 될 불교의 중요한 사명이다. 불쌍한 이웃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신행활동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개인의 삶이 더욱 원자화되고 삶의 환경이 파괴될 가능성이 큰 21세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불교의 사회 참여는 바람직한 도덕적 인간상을 만들고 나아가 정의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이 때 교세확장이나 불교의 사회적 위상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마음을 비우고 불교의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할 때 자신의 불심도 깊어지고, 자연스럽게 불교에 대한 호의적 사회 분위기도 형성된다.

‘승속일여’의 정신 견지해야
원래 승과 속은 둘이 아닌 것(僧俗一如)이다. 우리 불교는 모든 중생의 구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대승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산림불교적인 성격이 강하다 보니 세속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해방 이후 종단 정화 과정에서 권력이 강하게 개입했고, 권력과 밀착한 권승집단이 나타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불교가 사회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어서만은 안된다.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는다’(『유마경』)는 가르침을 생각할때 사회문제에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으면 안 된다.
불교의 사회참여는 고통 받고 있는 뭇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불교 본래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노력이다. “여래가 세상에 온 것은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법구비유경』은 말하고 있다. 약사여래의 본원도 남에게 매여 자유롭지 못하거나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이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뜻이다.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도 불교의 사회참여는 필수적이다. ‘상구보리’를 위해서는 세속적 사회를 떠나야 하지만 ‘하화중생’을 위해서는 세속적 사회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통합종단 출범의 정신은 무엇이었던가. 해방 이후에도 남아 있던 일제의 강압에 의한 관제왜색불교에서 벗어나고, 불교를 가볍게 여기던 권력의 개입 고리를 끊어내자는 것이었다. 이는 전통불교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불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 만해 한용운 스님의 불교유신론과도 일맥상통한다.
만해 스님은 선禪의 목적이 열반에 안주하는 데 있지 않고, 중생 제도에 노력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였다. 대승적 보살정신을 바탕으로 현실사회 속에서 삶의 길을 열어나가는 데 선禪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제 원융회통의 정신과 방편의 묘를 살려 불교를 먼저 살려내는 것, 나아가 우리 사회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 것. 이 시대 불교의 가장 커다란 과제이다.

손혁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양한 시민사회활동을 펼쳐왔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집행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풀뿌리지역연구소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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