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간화선과 위빠사나의 역사적인 만남, 그리고 소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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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8일 오후 2시. 공주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 다목적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간화선과 위빠사나의 만남과 소통 국제연찬회’에 참석한 30여 명의 스님과 140여 명의 재가자들이 큰 강당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간단한 입재식이 진행됐다. 전통불교문화원 본부장 혜오 스님이 “간화선과 위빠사나를 대표하는 선지식들을 모시고 연찬회를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두 수행법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는 자리인 만큼 출재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연찬회의 의미를 설명했다.‘아는 자’와 ‘보는 자’
입재식 직후 파욱 스님의 법문이 시작됐다. 파욱 스님은 미얀마, 스리랑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도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다. 오후불식(午後不食) 등 철저하게 계율(戒律)을 지키는 파욱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기 위해 포천에서 온미얀마 이주노동자 은나툰(36) 씨는 “미얀마에서 파욱 스님을 친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한국에서 법문을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휴가를 내서친구들과 함께 왔다.”고 한다. 은나툰 씨는 파욱 스님의 아침, 점심 공양은 물론 의복까지 담당하며 정성을 다해 스님을 모셨다.
미얀마에서 나고 자랐지만 스님은 꽤 능숙한 영어로 미리 준비한 원고에 따라 ‘위빠나사의 A to Z’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법문의 주제는 ‘아는 자, 보는 자’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명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팔리 경전을 자세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비구여, 이전에도 지금도 나는 고통과 고통의 소멸에 대해서만 설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명상을 설한 이유입니다.”고(苦)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파욱 스님은 “고통의 소멸은 오온(五蘊)이 일어나지 않을 때 가능하다.”며 “위빠사나가 없다면 깨달음도 열반도 없다.”고 말했다. 위빠사나를 통해서 고통을 소멸할 수 있고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파욱 스님은 “고통과 번뇌의 소멸은 아는 자와 보는 자에게만 일어날 수 있다.”며 “아라한(阿羅漢, Arhan)이 아는 자이고 보는 자이며 아라한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욱 스님은 또 구체적 수행법으로 콧구멍과 윗입술이 사이 부분에 호흡을 집중하면서 무상·고·무아를 깨우치는 ‘아나빠나 사띠’를 제시했다. 스님은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등 초기불교의 기초적인 가르침도 자상하게 전달했다. 파욱 스님은 “아라한과를 증득하면 사성제를 꿰뚫어 볼 수 있고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며 윤회도 하지 않게 된다.”며 법문을 마쳤다.
법문이 끝난 뒤 질의응답시간에는 평소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대중들은 ‘호흡수행을 하면서 몸이 자꾸 아프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호흡이 고요해질수록 미간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것은 올바른 방법인가?’, ‘삼매에 들어가지 않고 사대수행(四大修行)이 가능한가?’, ‘아라한이 되면 고통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인간의 몸 상태에서는 고통을 극복할 수 없는가?’ 등을 물으며 남방 선지식에게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 귀를 쫑긋 세웠다. 파욱 스님은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호흡을 잘 관찰하고 집중하면 나중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했다.
파욱 스님은 저녁 7시부터 진행된 위빠사나 실참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했다. “들숨과 날숨일 때 콧구멍과 윗입술 주위의 느낌을 잘 알아차려야한다. 숨은 자연스럽게 쉰다. 몸의 감각이나 잡념에는 신경 쓰지 말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자세는 좌선자세가 가장 좋지만 어느 자세에서도 가능하다. 배에 집중하는 것은 사대수행이지 아나빠나 사띠가 아니다. 호흡은 들숨을 먼저하고 날숨을 나중에 하는 것이 좋다. 눈은 감는 것이 좋다.” 2시간 동안 다목적홀은 고요한 정적에 빠졌다.
절대 무한의 세계로 가는 지름길
둘째 날 법문에 나선 고우 스님은 “공식 석상에서 간화선과 위빠사나가 서로 소통하는 자리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어떤 법문도 대중들이 알아듣기 쉽게 한다는 소문(?)에 맞게 스님은 차근차근 불법을 전했다. “부처님 법은 시공을 초월해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진리”라고 말한 고우 스님은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선(禪)”이라고 밝혔다. 또 “‘나다, 너다’라고 구분 짓는 유한하고 상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절대 무한의 세계로 가야 한다.”며 “간화선은 바로 그 길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고우 스님은 간화선과 위빠사나를 ‘같은 내용물의 다른 보자기’라고 했다. 육조 혜능 스님 문손인 영가 스님이 『영가집』에서 위빠사나를 성성적적(惺惺寂寂), 사마타를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고 말했다며 화두를 성성적적하게 들어야 타파되듯 위빠사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스님은 “보자기 색깔만 다른 것인데 내용물도 다르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용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고우 스님은 특히 초기불교의 ‘아라한’과 대승불교의 ‘부처’는 같은 지위라고 밝혔다. 스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후 5비구에게 첫 법문을 설했는데 그 자리에서 부처님은 ‘여기에 6명의 아라한이 있다’고 말한바 있다.”며 같은 수준의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고우 스님은 “팔만대장경을 압축하면 공(空) 한글자다. 무아(無我)와 공의 존재원리를 알면 매일 매일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스스로 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화두가 완전하게 타파되지 않아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발전하는 것도 성과”라며 정진을 당부했다.
대중들은 고우 스님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한 순간이라도 중도(中道)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 ‘간화선과 조사선은 같은가, 다른가?’, ‘만물이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종교에서도 통하는 진리인가?’, ‘무아와 자비, 사랑은 차이가 있는 것인가?’ 등의 물음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특히 질의응답이 끝날 무렵에는 ‘자살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두고 고우 스님과 참석 대중스님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됐다. 고우 스님은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스님이든 재가자든 자살할 수 없다. 남의 생명을 존중하듯 스스로의 존재를 가꿔가는 것도 어느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고우 스님은 저녁에 계속된 실참 시간에 대중들에게 화두를 내려줬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놈은 누구인가?’ 즉 ‘이뭣고’ 화두다. “처음부터는 어렵겠지만 꾸준히 해 보라.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화두를 들 수 있으면 좋다. 조금씩 힘이 붙고 습관이 되면 복잡한 생활에서도 화두를 들 수 있다. 몸이 피곤하면 쉬듯이 마음이 힘들고 지치면 화두를 더 열심히 공부해 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스님은 “화두를 통해 주인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며 하루를 마쳤다.
연찬회 마지막 날 계속된 고우 스님과 파욱 스님의 대담도 뜨거웠다. 대담이라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왔다. 3일간의 일정을 마친 사람들은“진작 있어야 할 자리가 이제야 마련됐다.”며 만족과 아쉬움을 동시에 나타냈다. 간화선과 위빠사나 모두 최고의 수준으로 설명한 고우 스님과 달리 파욱 스님이 간화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소통에 다소 장애가 있긴 했지만, 170여 대중들은 넉넉한 웃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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