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 비친 산사(山寺) / 정호승 시인의「그리운 부석사」
한 편의 시가 내게로 왔다. 그 세계는 지독한 사랑과 그리움, 눈물로 점철돼 있었다.
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痲旨(마지)를 올리는 쇠 종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마지 :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어둠속에 몰래 떠오르는 비밀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살을 에는 공기가 얼굴을 때리고,
손과 발을 시리게 맴돌더니 이내 나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마침내 떠오른 아침햇살,
안양루 지붕 위로 솟은 한 점 바위 곁으로 나란히 가 선다.
‘그 옛적 돌이 되어 내려앉았다던 선묘의 넋이 타오르는 것인가
그 애달픔을 달래기 위한 의상(義湘)의 남모를 어루만짐인가.’
무던히도 빛나며 상승하는 춤사위,
한껏 움츠렸던 마음에 한줄기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
멍하니 현실 속을 헤매는 나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를 사랑하며 기다리며
죽어버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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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철 : 1988년 서울 경인미술관 <타인의 땅>, 2002년 금호미술관 <충돌과 반동>, 한미사진미술관 <이갑철 전> 등 국내 다수 전시와 더불어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 2000>, 프랑스 몽펠리에 <한국 현대사진가 초대전> 등에도 참여했다. 현재 프랑스 뷰(Vu) 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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