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곱 살박이 송이는 아침 8시가 되면 출근하시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집에서 걸으면 송이의 걸음으로 15분 걸리는 석왕사에서 운영하는 '룸비니 어린이집' 에 가기 위해서다. 송이가 이곳에 다니게 된 것은 올해 2년째이다.
절 일주문을 지나 법당에 들어간 송이는 부처님께 삼배를 드린다. 법당에서 나온 송이는 절마당을 가로 질러 룸비니 어린이집에 간다. 그곳에 가면 자기 또래의 친구들이 많이 있다. 재미나는 장난감도 많고 하루 종일 자신을 보살펴 주시는 좋은 선생님들도 계신다.
놀이기구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고 선생님께서는 재미있는 동화도 들려 주시고 신나는 공작시간도 마련해주신다.
점심을 먹고 뛰어놀다가 두시간쯤 낮잠을 잔다. 낮잠을 자고나면 선생님께서 가나다라... 문자공부를 시켜주신다.
점심시간과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번 맛있는 간식시간에는 합장하고 감사기도를 드린다.
"한방울의 물에도 부처님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알의 곡식에도 많은 사람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몸과 마음을 바로 하여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음식을 먹겠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선생님이 합장하고 외우는대로 송이도 이젠 졸졸졸 따라 할 수 있다. 절에서 만나는 스님께 합장하고 인사하는 것도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루종일 친구들과 선생님과 즐거운 하루를 보낸 송이는 저녁 6시가 되면 집으로 간다. 집에 돌아온 송이는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엄마 아빠께 얘기한다.
엄마가 맛있게 차려주신 저녁밥상에 온가족이 둘러 앉으면 송이는 제일 먼저 합장하고 공양발원문을 외운다. 그러면 엄마 아빠도 합장을 하고 따라 하신다.
송이가 룸비니 어린이집에 다니는 덕에 엄마도 아빠도 옛날에는 쑥스럽게 느꼈던 법당참배를 이젠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부천시 원미동에 있는 석왕사 (주지:영담)에서 운영하고 있는 룸비니 어린이집은 부천시의 위탁을 받아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지역의 맞벌이 부부들의 자녀들을 돌보아 주는 탁아시설이다.
요즈음들어 핵가족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 맞벌이 부부의 고민중 가장 커다란 고민중에 하나인 자녀양육의 고민을 덜어 주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잘 갖추어진 시설이 아니라도 아파트단지나 동네 곳곳에 가정탁아나 놀이방 형식으로 소규모로 운영되는 곳이 늘고 있고, 특히 곳곳에 밀집되어 있는 교회 선교원에서 선교목적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이 많이 있다. 주로 개척교회들이 1~2년 전부터 예배를 보지 않는 평일의 교회시설을 이용 소규모 놀이방을 운영하는 곳이 늘고 있어 맞벌이 부부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자들의 경우 자신의 아이를 마땅히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부득이 선교원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자신의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룸비니 어린이집의 경우는 현재 만 2세에서 6세 어린이 4학급 (영아반. 유아반. 유치반 2학급)을 일곱분의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고 지역사회로부터도 좋은 호응을 받고 있어 다행스럽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심어주고 지역사회에 봉사할 뿐만 아니라 불자가정 만드는데에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어 앞으로 특히 도심지에 있는 사찰이나 뜻있는 불자들에 의해 육성되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어린이들의 신상명세서 난에 기입된 종교를 보면 무종교가 대부분 입니다. 그러나 한 1년 정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자가 되지요. 게다가 그 부모님도 절에 자연스럽게 드나들게 되고 또 불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 룸비니 어린이집 주임교사를 맡고 있는 한유지(34세) 선생님의 말이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소록도 근처 유치원 교사로 3년간 일했던 한유지 선생님은 결혼 휴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고 한다.
현재 국민학교 3학년, 1학년의 자녀를 둔 어머니로 마침 석왕사에 다니던 차에 1991년 3월부터 주지 스님의 좋은 뜻으로 운영하게 된 어린이집에서 자신의 일을 계속하게 되어 기쁘다고.
"사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저도 두 아이를 집에서 길러 봤지만 이런 시설에서 만큼 자녀들을 돌보지는 못했어요. 대부분의 가정에서의 엄마의 역할은 밥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 것이 전부예요.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시설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이나 인지발달면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자기 밖에 모르던 아이들도 먹을 것을 남에게 나눠줄 줄 알게 되지요."
어린이의 신상명세서에는 어린이의 특기. 좋아하는 음식. 성격. 취미. 싫어하는 음식. 나쁜 버릇. 가족상황. 보육상의 희망을 적는다. 지도 교사가 이러한 사항에 유의, 특히 편식이나 비뚜러진 성격교정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출근하는 길에 데리고 오고 또 퇴근 길에 데리러 오기 때문에 교사와 어머니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마련되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상담과 집안 얘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 때로는 상담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고 한다.
절에 선뜻 들어오기를 꺼려하던 어머니도 자녀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나들다보니 스님들께도 스스럼 없이 합장하게 되고 법당에 가서 절하는 것도 두려움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석왕사 룸비니 어린이 집의 경우 교육비는 생활수준이나 아동의 연령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고 월5만원에서 10만원 가량을 받고 있다. 일반 사설 놀이방이 월 15만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부모들의 부담도 상당히 덜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보통의 사찰에서 이만한 규모와 시설과 교사들을 채용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는 않다. 또 적은 보수를 받고 이렇게 자신의 자녀를 키우듯 소신껏 일하는 교사를 구하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뜻있는 스님과 불자들의 관심으로 이러한 시설들이 차츰 늘었으면 한다. 현재 국가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장려하고 있는 터라 일반 가정에서도 소방시설과 어린이가 쉴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관할 구청 신고제 형식으로 인가해주고 있어 사찰이나 기관 단위가 아니라 개인도 뜻을 내면 '보육교사 양성교육' 과정을 거쳐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불교계에서는 중앙승가대학에서 '중앙승가대학 부설 보육교사교육원(TEL929-5004)'을 운영하여 1992년도 부터 1년 과정으로 보육교사를 양성해내고 있다. 기혼 미혼에 상관없이 최종학력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아동심리학과 유아교육, 사회복지 전반에 대해서 공부하고 4주간의 실습을 통해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시설 어린이집에 취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영 놀이방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180명이 수료, 150여명이 취업하고 있고 현재 제 3기 양성과정에는 140여명이 공부하고 있다. 연령은 20~50대로 다양하며, 결혼한 여성들도 반 이상이 된다고 한다.
요즈음 사회전반의 추세로 볼 때 이러한 보육교사의 역할은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특히 사회교육과 평생교육, 불교포교에 뜻있는 기혼 여성불자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