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머무는 곳에서 한 마음 쉬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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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머무는 곳에서 한 마음 쉬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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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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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영덕 운서산 장육사

▲ 효상 스님이 홍련암에 앉아 눈 쌓인 청산에 젖어 있다. 그 옆에 백구 한 마리도 같이 청산에 젖어 있다.

물 같고 바람 같은 삶의 안쪽
길은 길로써 인간의 넋을 깨운다. 650여 년 전, 한 폭풍의 사내가 길에서 길을 취했다. 길은 영덕으로 뻗었다. 개성에서 죽령을 넘어 낙동강을 지나 마침내 운서산에 가 닿았다. 구름 운(雲), 머물 서(棲). 사내는 구름이었다. 그리고 운서산 그늘에 토굴 한 채 일군 뒤 시 한 수를 읊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如水如風而終我)

이때 사내의 나이 겨우 35세. 1320년에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모곡에서 태어나고, 1355년 운서산에 ‘장엄한 불국토’를 뜻하는 장육사(裝陸寺)를 일구었으니 35세의 사내에게 삶은 벌써 불이 아니라 물이었던 것이다. 바람이었던 것이다.
장육사의 주춧돌은 바로 그렇게 해서 놓아졌다. 그리고 그 주춧돌을 처음 놓은 사람이 바로 35세의 나옹 선사였던 것이다. 35세의 나옹 선사는 이때 벌써 물 같고 바람 같은 삶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운서산 기슭에 삶의 토굴을 팠던 것이다.

삶의 엽록소 같은, 인간 냄새가 풍기는 절집
무릇 절집은 조금쯤 인간의 냄새를 풍겨야 진짜 절집답다. 인간의 냄새가 없이 무겁고 근엄하게 가라앉은 절집은 다가가기 어렵다. 장육사는 그렇게 사람의 냄새가 나는 절집이다. 누구나 허물없이 다가설 수 있는 절집이고, 누구나 찾아가서 따스한 차 한 잔 청해 마실 수 있는 절집이다.
흥원루는 장육사 본집으로 들어가는 목구멍이다. 장육사 본집과 대면하려면 누구나 흥원루 누마루를 끼어 들어와야 한다. 그 목구멍에 걸린 플래카드가 싱싱하다. 봄 흙처럼 여러 구멍으로 헐거워진 마음을 나란하게 눌러준다. ‘청산은 나를 보고 한 마음 쉬어 가는 곳’, 삶의 엽록소 같은 문구다.

길은 길로써 인간의 넋을 깨운다. 650여 년 전, 한 폭풍의 사내가 길에서 길을 취했다. 길은 영덕으로 뻗었다. 개성에서 죽령을 넘어 낙동강을 지나 마침내 운서산에 가 닿았다. 구름 운(雲), 머물 서(棲). 사내는 구름이었다. 그리고 운서산 그늘에 토굴 한 채 일군 뒤 시 한 수를 읊었다. 이때 사내의 나이 겨우 35세. 1320년에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모곡에서 태어나고, 1355년 운서산에 ‘장엄한 불국토’를 뜻하는 장육사(裝陸寺)를 일구었으니 35세의 사내에게 삶은 벌써 불이 아니라 물이었던 것이다. 바람이었던 것이다. 장육사의 주춧돌은 바로 그렇게 해서 놓아졌다. 그리고 그 주춧돌을 처음 놓은 사람이 바로 35세의 나옹 선사였던 것이다. 35세의 나옹 선사는 이때 벌써 물 같고 바람 같은 삶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운서산 기슭에 삶의 토굴을 팠던 것이다. 무릇 절집은 조금쯤 인간의 냄새를 풍겨야 진짜 절집답다. 인간의 냄새가 없이 무겁고 근엄하게 가라앉은 절집은 다가가기 어렵다. 장육사는 그렇게 사람의 냄새가 나는 절집이다. 누구나 허물없이 다가설 수 있는 절집이고, 누구나 찾아가서 따스한 차 한 잔 청해 마실 수 있는 절집이다. 흥원루는 장육사 본집으로 들어가는 목구멍이다. 장육사 본집과 대면하려면 누구나 흥원루 누마루를 끼어 들어와야 한다. 그 목구멍에 걸린 플래카드가 싱싱하다. 봄 흙처럼 여러 구멍으로 헐거워진 마음을 나란하게 눌러준다. ‘청산은 나를 보고 한 마음 쉬어 가는 곳’, 삶의 엽록소 같은 문구다.

▲ 장육사 주지 효상 스님

 

▲ 개에도 불성이 있는가. 장육사에는 두 마리의 진도개가 산다. 작은 녀석이 '마하'고 큰 녀석이 '반야'다.

 

흥원루 누마루로 들어서니 백구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든다. 마하와 반야다. 효상(曉象) 주지스님의 작품이다. 마하는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고 반야는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이 웬 역설인가. 몸집이 훨씬 작은 녀석이 마하이고 몸집이 두 배는 더 큰 놈이 반야다. 효상 스님의 설명이 재밌다.
“왜 작은 녀석을 마하라 하고 큰 녀석을 반야라고 했습니까?”
“작은 녀석이 수놈이고 큰 녀석이 암컷이라서 그랬습니다.”
그럴 듯하다. 자고로 더 섬세한 지혜는 여성성의 몫이고 근육은 남성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완전 개판이다. 나도 개띠이기 때문이다. 그 개판을 효상 스님이 보이차로 잡아주신다. 마하와 반야는 진돗개다.
운서산은 사람의 산이다.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산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스펙트럼을 호롱불처럼 밝혀주고 사기그릇처럼 씻어주는 세상 속의 산이다. 이 삶의 스펙트럼 속에 들어와 효상 스님이 장육사 살림을 맡은 건 지난 2002년부터다. 당시 태풍 ‘매미’로 폐허가 된 절간을 한 땀 한 땀 수놓듯 혼신의 힘으로 일으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이부처 -건칠관음보살좌상

▲ 관음전에 있는 건칠관음보살좌상. 우리나라 최초의 종이부처로 보물 제993호다.

▲ 대웅전에 있는 보현보살 벽화

 

관음전과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3호)은 장육사를 관음기도 도량의 낙원으로 만들었다. 효상 스님은 장육사만의 스펙트럼을 일구기 위해 관음전을 짓고 대웅전에 있던 건칠관음보살좌상을 독립된 공간으로 옮겨 모신 것이다.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내버리고 종이로 만든 관음보살상이다. 그래서 좀 투박하다. 그러나 부드럽고 포근하다. 동으로 만들어 개금한 여느 불상들보다 훨씬 인간 쪽으로 가깝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음전 건칠관음보살좌상을 찾아 관음기도를 올린다.
가피를 입은 사람도 많다. 민애옥(43. 여. 포항시 남구 지곡동) 씨는 관음기도의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이다. 80%까지 진행된 유방암을 3일간의 관음기도로 깨끗이 떨쳐낸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불자들이 관음기도를 하기 위해 장육사 관음전을 찾는다. 장육사는 현재 건칠관음보살좌상의 국보승격을 추진 중에 있다. 높이 86cm의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종이부처다.

▲ 깨진 기왓장을 이용해 '청산은 나를 보고'를 적어놓은 것이 시 내용처럼 물 같고 바람 같다.
절집에 가면 대부분 심검당이라는 요사채가 있다. 스님들이 머물면서 마음을 닦는다는 뜻에서 보통 ‘칼 가는 집(尋劍堂)’이라고 한다. 그런데 장육사에는 심검당 대신 미유암이 있다. 물 넓을 미(텙), 아름다울 옥 유(瑜)다. 심검당을 대신하는 미유암은 심검당이 지니고 있는 강함을 ‘물 깊은 곳에서 옥구슬이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스님들도 마음 깊은 곳에서 공부가 되어 옥구슬처럼 아름다운 불성의 자리가 드러나도록 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장육사를 가장 장육사답게 하는 것은 홍련암이다. 이 절을 처음 일으킨 나옹 선사가 토굴을 파고 마음의 칼을 간 곳이다. 홍련암 앞마당에 서서 먼발치로 내려다보면 ‘청산은 나를 보고’가 절로 나온다. 삶의 스펙트럼을 왜 ‘물같이 바람같이’ 흐르게 해야 하는지를 저절로 깨닫는다.
길은 길의 삼투압으로 인간의 삶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길을 도(道)라 했다. 도를 닦는다 했다. 우리 모두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도 위에서 도를 찾고 있다. 효상 스님은 그렇게 길 위에서 길을 취하던 나옹 선사의 후신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 칼이 어떻게 갈아지고 그 돌이 물 속에서 어떻게 다듬어질지 기다려볼 차례다. 그 심중을 꿰뚫었을까. 마하와 반야가 눈밭에서 뒹굴며 쫑긋한 귀로 효상 스님의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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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ː 1986년 서울신문에 시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수렵도』, 『퍽 환한 하늘』 ,『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 등과 동화책으로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발가락이 꼬물꼬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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