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근무할 때에 항상 깨끗한 옷에, 쾌적한 사무실에서, 돌아다닐 일 없고, 필요없이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거나 굽신거리지도 않고, 게다가 돈도 잘 벌고, 상대하는 사람들마다 자기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부모나 부인이나 자식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심지어 처가식구들이나 사돈에 팔촌까지 기꺼워하는 직업이라면 누구나 그 직업을 택하려 할 것이다. 자기나 자기 남편이 못하면 하다못해 형제나 자식이라도 그런 직업을 갖기 원할 것이다. 그런 직업 중의 하나가 ‘의사’라는 직업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좋고 의사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하긴 요즘은 꼭 그렇지는 않지만 좀 전만 하더라도) 젊은 의사라면 중매 서는데 최고의 상품이라고 자타가 공인하였다고 하던가?
이런 의사가 되는 길은 간단하다. 다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면 누구나 쉽게 의사가 될 수 있다. 돌팔이 의사가 아니라 보사부장관이 증명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무론 그 후의 과정이 있으나 그 과정들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하든지 말든지 의사는 의사이므로 환자를 진료하고 경험을 쌓아 명의가 될 수도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돈을 벌수도 있고 주변에 명성과 칭찬이 자자한 의사가 될 수도 있다. 한세대 전만 하더라도 많은 의사들은 그렇게 하여왔고 일부 의학자만이 의학박사학위를 연구를 통하여 취득하였다. 실제로 미국식 의료-의학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있던 이러한 제도는 아직도 유럽과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의학박사 제도가 아직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식 제도가 도입되면서 따라 들어온 제도가 요즘 널리 알려진 전문의 제도이며 합리적이라는 미국식 방식을 따라 우리나라에도 이 제도가 사용되는데 전에 있던 의학박사 제도를 그대로 존속시킨 채 전문의 제도를 덧붙인 꼴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일본 등에는 예를 들어 소아과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나 의학박사는 있으나 소아과 전문의는 없고 미국에는 소아과 전문의는 있으나 소아과를 전공한 의학박사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소아과 전문의 이면서 동시에 소아과를 전공한 의학박사가 계시니 우리의 의료 수준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년간의 인턴을 마치면 과에 따라 3년 혹은 4년 동안 원하는 과에서 전공의(레지던트)를 하면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룰 수 있는 자격이 생기며 이 시험에 합격하면 그 과의 전문의가 되며 이와는 별개로 의과대학 졸업하고(의학사) 석사과정 대학원 졸업하고(의학석사) 박사과정 대학원 졸업하면 의학박사가 된다. 의사가 되어 전공 분야의 환자를 잘 보려면 전문의가 되면 되고, 의학의 한 분야에 대해 앞으로 연구를 계속하려면 의학박사가 되면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기필코 두 가지 모두를 가진 의사가 진짜 실력 있는 의사인줄만 알고 있어 의과대학 졸업생들도 둘 다 취득하려하니 남들이 알아주는 의사가 되기는 더욱 힘들고 낭비도 보통이 아니다. 더하자면 환자로서 진료를 받으려면 의학박사의 칭호보다는 해당 분야의 전문의를 찾는 것이 더 합당하다.
어쨌든 의사가 전문의 자격에다 의학박사 학위까지 갖고 있으면서 단골환자가 하나도 없다면 무슨 일일까?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는 의사는 일반인이 생각하기보다는 훨씬 많다. 종합병원에 가면 방사선과, 마취과, 해부병리과, 임상병리과 등에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들은 비록 전문의이나 환자를 직접 보지 않으며,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생태학, 병리학, 조직학, 생리학, 생화학, 병리학, 미생물학, 약리학, 예방의학, 기생충학, 법의학, 면역학, 종양학 등의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문교부장관이 증명하는 의학박사이나 감기 환자 하나 볼 줄 모른다. 이들은 엄연한 의사이면서도 환자 진료에는 ‘영점’ 짜리들이다. 진료를 못하니 으레 의사를 생각할 때 부정적인 면으로 연관 짓는 돈과는 애당초 ‘강 건넌 배’ 다. 고쳐준 환자가 없으니 고맙다고 인사할 사람도 없고 널리 알려져 텔레비전, 라디오나 잡지에 건강 상담하는 유명인사 되기도 틀렸고, 하다못해 가까운 가족 친척들의 건강에 관한 문제에도 멍텅구리(일반 사람들보다는 잘 알겠으나 무언가 문제 해결을 절실히 원했던 사람에게는)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젊은 의사가 장가들려고 선보러 갔다가 의사라니 무슨 과를 전공하는 의사냐는 질문에 병리학 전공한다고 대답했다가 여자 측에서 의사 사칭한다고 대노하여 돌아갔다는 얘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남들 들어가기 어렵다는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남들보다 길고 힘들다는 공부하고 나서 멀쩡한 의사가 되어 가지고는 하필 그런 일을 할까? 의과대학 학생 때 놀기만 하고 지지리 공부를 못해서는 아니다. 왜나면 공부를 안 하면 의과대학을 졸업시켜 주지 않기도 하지만 공부를 잘한 우등생들도 많이 (어쩌면 더 많이) 이런 직업을 택하며 학생 때 열등생도 후에 명의가 되기도 하니까. 아니면 나중에 조그만 의원이라도 개원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집안에 그럴 재력이 없어서인가? 그도 아닐 것이 개원할 때 돈이 생각보다는 훨씬 적게 드는 전문 과목도 있고 막말로 요즘 의대 졸업하면 열쇠 세 개쯤은 준비해올 여자도 있다니까. 물론 개중에 드물기는 하지만 명예에 집착하거나 환자 보기를 무서워하고 사람 대하기가 싫어 연구만 하려는 의사도 있기는 하지만, 멀쩡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 분야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의학 발전에 기여할 업적을 이루겠다는 성취욕(부처님은 세간의 욕심을 버리라고 하셨지만 이런 욕심은 괜찮으리라) 과 후배 육성에 대한 사명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가 되어 슈바이처처럼 가난하고 몽매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인술을 베푸는 것도 사명감이며, 알아주는 이 없고 금방 눈에 띨 화려한 업적이 생기는 것도 아닌 일을 묵묵히 하는 것도 사명감이다.
다시 말하면 환자를 진료하는 것 (임상의학)이 의사가 하여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일이라 할 수 있으나 의사가 하여야 할 일 중에는 환자를 직접 대하지 않는 일들도 많다. 의사가 환자에게 행하는 진료 행위 중에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의학이라는 커다란 지식과 경험의 전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의학 분야에서도 오랜 세월 전하여 온 것에 비하여 최근의 수십 년(길게 잡아도 약 백여 년)에 이루어진 의학의 발전은 정말 대단하다. 이러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 중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분야를 기초 의학이라고 한다. 훌륭한 건물이라도 1층 없이 2층을 지을 수 없고, 배가 밑바닥도 없이 떠 있을 수는 없다. 기초의학에서는 사람이(엄밀히 말하자면 육체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태중에서 그리고 태어난 후에 발달하고, 어떤 형태로 생겼으며, 어떻게 움직이며 살아가는지, 심리나 정신 상태는 어떠하며 주변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또 병이 나면 육체나 정신은 어떻게 변하고 병의 증상은 왜 나타나며,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나 기생충은 어떠하며, 약은 어떻게 체내에서 작용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들을 포함한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이러한 인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한 연후에야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을 배운다. 그러므로 의사가 환자를 좀 더 잘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기초의학이 발달하여야 하는데도 기초의학은 곧 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음으로 눈에 띠지 않는 것이다. 좋은 건물이 되려면 조경이나 외장만이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님은 다 알지면서도.
의사가 할 일 중에 나머지 남은 것이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에 필요한 의학적 적용이라는 면(사회의학)이다. 의사가 환자 개개인을 상대해서 질병의 치료나 건강 증진을 도모할 수도 있으나 사회의학의 대상은 환자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이에 속하는 분야가 사회적인 면에서 산업재해를 연구하여 이를 예방하거나 인구 전반이 알게 모르게 조금씩 노출되는 유해 인자를 연구하는 환경의학이나 예방의학, 의료 정책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질병 또는 건강상태에 대한 통계 등을 연구하는 역학, 국민들이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 체계 및 병원관리를 연구하는 의료관리학, 그리고 형법이든 민법이든 법을 적용하는데 필요한 의학적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억울한 판결이 없도록 하여 인권 옹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의학 등이다.
최근에 이런 기초의학이나 사회의학에 대한 관심이 의료인뿐 아니라 일반인들과 의과대학 학생들 간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내심 기뻐하면 단골 환자 하나 없는 내 연구실 창 밖에 떨어지는 오동잎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