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님은 대자대비를 근본으로 삼으니 마땅히 오탁악세에서 중생들을 구제하기를 서원할 것이어 늘 어찌하여 정토에 왕생하여 편히 지내려 하는가?
[답] 보살에 두 가지가 있다. 오래도록 보살도를 닦아서 무생법인을 얻은 이라면 이 책망이 마땅하지만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이와 초발심 범부는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않고 법인을 성취하고서야 삼계 오탁악세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탁악세에는 번뇌가 많으므로 참은 힘이 없으면 경계를 따라서 변하게 되며 환경에 얽매어 삼악도에 떨어지게 되니 어찌 능히 중생을 구언할 수 있으랴. 힘이 없는 범부는 아미타불을 전심으로 염하여 삼매를 성취해야 한다. 아미타불을 뵙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고 삼계에 돌아와서 중생을 제도하며 불사를 널리 지어 자재하게 되어야 한다.
제2의 문
모든 법이 공하여 적멸하거늘 이제 여기를 버리고 저기에 나기를 구하니 이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깨끗해지면 곧 불국토가 깨끗하다고 하셨던 것이다.
[답] 만일 서방정토에 나기를 구하는 것을 가리켜 여기를 버리고 저기를 구함이라 한다면 그대는 여기 있는 것에 집착하여 서방에 나기를 구하지 아니하니 그것은 거기에 버리고 여기에 집착함이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정토에 태어나기를 구하면서도 나는 자체를 얻을 수 없어 곧 무생임을 통달한다. 이것이 이른바 마음이 깨끗하면 곧 불토가 깨끗하다 함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나는데 얽매어서 난다는 말을 들으면 곧 난다는 견해를 내고 남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곧 남이 없다는 견해를 내어서 나는 것이 곧 남이 없음이요, 남이 없는 것이 곧 나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한다.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부질없이 다른 이가 정토에 나려 한다고 성을 내는 것은 잘못이다.
제3의 문
시방의 모든 정토가 법성이 평등하고 공덕도 평등하니 수행하는 이가 모든 공덕을 널리 닦아 모든 정토에 왕생할 것이어 늘 이제 치우쳐 아미타불정토만 구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답]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평등하지만 중생의 근성이 우둔하고 흐리고 잡란한 이가 많으므로 만일 마음을 한 경지에 얽매지 않으면 삼매를 이루기 어렵다. 아미타불만을 염함은 곧 일상삼매(一相三昧)이니 마음이 전일하므로 그 국토에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화엄경에 『모든 부처님의 몸이 곧 한 부처님의 몸이다.』 하였으니 한 부처님이 곧 한 부처님이니 법신은 둘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지극하게 한 부처님을 염할 때 곧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 된다.
제4의 문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서 한 국토를 염함을 따라 왕생할 수 있다면 하필 아미타불을 염하는가.
[답] 범부는 지혜가 없어 제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는 곳마다 말씀하시기를 『중생들이 아미타불을 염하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라』고 많은 경론에서 간절하게 가르쳤으므로 치우쳐 염하는 것이다. 아미타불은 대자대비하신 48원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제5의 문
범부가 악한 업이 두터워 번뇌를 끊지 못하였고 서방정토는 삼계를 초출하였는데 범부가 어찌하면 왕생할 수 있겠는가?
[답]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기의 힘이요, 다른 하나는 다른 이의 힘이다. 자기 힘으로는 도를 닦는 것만으로 왕생하기 어렵다. 처음 보리심을 발한 후 몇 만 겁을 닦아야 불퇴주(不退住)에 이르나니 자기 힘만으로 정토에 왕생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다른 이의 힘이라 하면 아미타불께서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염불하는 중생을 인도하심을 믿고 보리심을 발하여 염불삼매를 행하며 보시와 계행을 닦아 아미타불국에 왕생하기를 원하면 부처님의 원력을 의지하고 근기가 서로 응하여 왕생하게 된다.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여 왕생하는 것은 의심 없는 것이니 마치 바다에서 배를 타면 잠깐 동안에 천리라도 갈 수 있는 거와 같다.
제6의 문
범부가 극락정토에 왕생하더라도 삿된 소견과 삼독번뇌가 항상 일어나거늘 어떻게 거기서 물러나지 않겠는가?
[답] 다섯 가지 인연으로 물러가지 않는다. 첫째는 아미타불께서 대비 원력으로 붙들어 주심이요 둘째는 부처님의 광명이 항상 비추시는 까닭이요 셋째는 물과 새와 나무와 바람소리 까지도 법문의 말하여 듣는 이가 항상 3보를 염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까닭이요, 넷째는 저 국토에서는 순전히 보살만 있고 나쁜 인연이 없으며 마군도 삼독도 없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저 국토에 왕생하면 수명이 한량이 없어 불보살과 같으며 영원토록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수도하게 되니 어찌 무생법인을 얻지 못할까?
제7의 문
미륵보살은 일생보처이니 미륵보살은 따라서 닦으면 3회 설법에서 성과를 얻을 터인데 하필 서방정토에 왜 왕생하려 하는가?
[답] 도솔천에 왕생하려 함도 도를 얻고 부처님을 뵈온다 하니 형편이 같은듯하나 세밀하게 비교하면 대단히 못하다. 우선 도솔천에는 비록 10선을 지내더라도 왕생하지 못할까 저어되니 <미륵상생경>에 말하기를 여러 삼매에 깊이 들어가야 비로써 왕생할 수 있다 하였을 뿐 영접하고 인도한다는 뜻은 없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본원과 광명의 힘으로 염불중생을 붙들어주심과 같지 못하다.
둘째로는 도솔천궁은 욕계이므로 퇴타하는 이가 많고 또한 물과 새와 바람소리 등이 없어서 염불하여 번뇌를 굴복시키는 일이 없다. 그밖에 차이가 퍽 많다.
제8의 문
중생이 아득한 옛날부터 한량없는 업을 지었고 금생에도 선지식을 못 만났으며 항상 악을 짓는데 어떻게 임종시에 10념을 성취하고 왕생하게 되겠는가?
[답] 중생의 선업과 악업의 종류가 많고 적음과 강하고 약함을 모두 알 수 없거니와 다만 임종할 때에 선지식을 의존하여 10념을 성취하는 일은 전세의 선업이 강하므로 금생에 선지식을 만나서 10념을 성취한 것이다. 만약 악업만 많다면 선지식을 못 만났을 것이다.
『잠깐 동안 염불하여도 10억겁동안 지은 생사중죄를 멸한다』 하였으니 염불하는 때의 마음이 맹렬한 고로 나쁜 업을 멸하는 것이니 결정코 왕생할 것을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9의 문
서방정토가 여기서 10만억세계를 지나간다 하였는데 나약한 범부가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답] 범부의 육안과 생사심을 대하여 10만억 세계를 지나간다 하였거니와 다만 중생의 정토업을 이룬 이라면 임종할 때에 선정 중에 있는 마음이 곧 정토에 태어나는 마음이니 생각을 내는 것이 곧 정토에 나는 때이니라. 그래서 <관무량수경>에 말하기를 아미타불의 국토가 여기서 멀지 않다 하였으며 또 업의 힘이란 불가사의 한 것이어서 한 생각에 곧 저기 날 수 있나니 멀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니라.
제10의 문
결정코 서방정토에 왕생하려면 어떠한 행과 업을 지으며 무엇으로 종자를 살아야 저 세계에 날 수 있겠는가? 또 세속사람은 모두 처자가 있어서 음욕을 끊지 못하는 저 세계에 날 수 있겠는가?
[답] 서방정토에 왕생하려는 이는 반드시 두 가지 행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싫어서 여의려는 행이요, 둘째는 좋아서 원하는 행이다. 싫어서 여의려는 행이란 범부가 옛적부터 5욕락에 속박되어 윤회에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5욕락을 여의려는 마음을 내지 않았던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몸은 부정한 것이 엉긴 것인즉 남의 몸도 그러하고 사랑하는 대상이나 모두가 그렇게 부정한 것을 관찰하여야 한다. 이렇게 관찰하면 음욕번뇌가 점점 없어진다. 또 원을 세우기를 『세간의 5욕락을 탐하는 몸을 여의고, 법성신(法性身)을 얻어 지이다.』할 것이니 이것이 싫어서 여의려는 행이다.
좋아서 원하는 행에는 첫째 왕생하려는 뜻을 밝혀야 하고 정토에 훌륭하게 장엄할 일을 관찰하고 기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다
왕생하려는 뜻을 밝힌다는 뜻은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함은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나는 아무 힘도 없으니 만일 나쁜 나라에 가서 번뇌는 강성하고 이 몸이 업에 얽혀 나쁜 길에 빠져 오랫동안 고통 속을 헤매어 왔으니 어느 때에 고통 받는 중생을 구호하랴. 그래서 정토에 태어나서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려 함이니 만일 무생법인을 증득하면 그 때에 나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건지고자 한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