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만원짜리 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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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만원짜리 술상
  • 관리자
  • 승인 2009.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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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그는 신경을 곤두세워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백밀러에 우중충한 사장의 얼굴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간에 기별도 안가는 하품 나오는 월급 받아가며 죽자고 핸들 돌려대는 것만도 더러운데 그것도 모자라서 사장 화풀이 받이 노릇까지 할 수 없다. 그래서 사상의 아마빡이 우중충하게 구겨졌다 하면 손끝 발끝에 온 신경을 모아 운전을 했다. 돈 좀 있다는 작가들의 폼 쓰는 것이 다 그 모양인지 아니면 사장이 좀 별난지는 모르지만 그 성깔머리 한번 지랄이었다. 지가 화가 나 있을 때 차가 조금만 뛰거나 급정거를 하면 여지없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씨이트 등받이를 팍팍 갈겨대는 것이었다. 핸들 돌려 먹고 사는 놈치고 실경 돋우는 것 좋아하는 꼴 보았는가. 이런 때는 쌍 그냥 아무데나 들이박아 버리고 싶은 벌떡증이 치솟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처음 얼마동안의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사장의 기분이 구겨졌다 싶으면 아예 똥장군 모시듯 차를 조심조심 몰았다. 패인 곳이 일단 정치를 해서 통과하고 신호등 통과가 아슬아슬하면 아예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하는 식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딱 보니 이마빡에 비구름이 충충하게 끼여 있었다. 어라차 재수 없으면 옴 붙겠구나 싶어 차를 유리그릇 다루듯 했다. 그런데 어찌된 놈의 것이 퇴근시간까지 날이 갤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일이 꼬여도 된통 꼬인 모양이었다. 아침에는 그저, 또 뚱보 여편네한테 뒷다리 잡힐 일을 저질러 박박 긁힌 모양이구나 했었다. 사장은 더러 아침에 저기압이라도 저녁때면 말끔히 가셔지곤 했던 것이다. 사장은 크게 배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런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오늘을 영 풀리질 않았다. 용코로 부도가 나서 더디 큰 구멍이 하나 뻥 뚫린 건 아닐까. 애새끼들 중에 누가 죽을 병에라도 걸린 건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크 뜨거라 생각을 탈탈 털어냈다. 잘못 하다간 씨이트 등받이가 아니라 대갈통을 얻어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루종일 찌푸려 있는 판인데 대갈통인들 쥐어갈기지 말란 법이 어디 있으며 때리면 맞었지 별 뾰족한 수 있는가, 맞때리길 할 건가. 고소를 할 건가. 기껏 한다면 네놈 밥 안 먹어 하고 걷어차는 것이 고작인데 뛰어봐야 벼룩이라고 남 운전수 노릇 해먹기는 매 마찬가지 아닌가.
  그는 무사히 집에까지 도착했다. 일체의 반동 없이 정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재빨리 내려 뒷문을 열었다.
  사장이 드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에 이르렀을 즈음이었다.
「이이씨이, 이이씨이 ---.」
  그는 조심스럽게 낮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엌쪽에서 순자년이 몸을 들까불며 손으로 불러대고 있었다. 어찌나 방정맞게 손을 흔들어대는지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그런 순자년의 오두방정을 묵살한 채 천천히 발을 옮겼다. 또 무슨 덜떨어진 수작을 걸지 모를 일이었다. 이 순자년은 싸가지 없이 시건방졌다. 고작 식순이 신세에 덕지덕지 쳐 바른 화장은 뭐며 청바지를 입고 설치는 꼬락서니는 가관이었다. 이건 또 여자부스러기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영 기가 콱 막히는 것은 저를 한사고 「미스 최」라고 부르라는 것이었다. 운전수와 식순이가 같은 급인 줄 알고 겁 없이 꼬리치며 설쳐대는 꼬락서니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팅팅 부풀어 오른 젖가슴이나 바라질 대는 바라진 엉덩짝에 눈이 가면 그는 그만 마음이 꿈틀해지곤 했다. 순자년은 명절이거나 무슨 잔치가 있는 날이면 으레 그를 불러서는 뻐근하게 한상 차려 내놓고는 그걸 남김없이 다 먹을 것을 강요하곤 했다. 그가 음식을 먹는 동안에 순자년은 줄곧 조잘대는 것이었다. 아는 것도 우라지게 많다고 그는 혀를 찰 뿐이었다.
「잘 있었어, 미스 최?」
  그가 빈정거리며 말했고
「히히히히...」
  순자년은 손가락을 입 끝에 물고 몸을 비비 틀며 요상하게 웃었다. 저런 저런.... 그는 전신이 스물거리는 걸 느끼며 외면을 했다.
「미이스터 리이, 술 한 잔 드시겠어요?」
  그는 고개를 돌렸다. 순자년은 눈자위에 발그레한 웃음을 담뿍 담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순자년은 남이 듣는데 서는 「이씨」로 부르다가도 단순이 있게 되면 한사코 「미스터 리」였다.
「술은 무슨 술!」
「양주! 그보다 안주가 아주 기똥차요」
「무슨 안준데?」
「이리 들어와요. 먹어보면 알거 아니에요」
  순자년이 끄는 대로 그는 따라 들어갔다.
  순자년이 기세 좋게 상보를 확 걷히는 순간 그의 눈은 휘둥굴해졌다.
「놀랬죠?」
  순자년이 먼저 으스대며 물었고
「아니, 웬 잉어 사태야?」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순자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순자년을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그의 옆으로 바싹 다가앉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이거 두 마리는요, 갖은 양념 해서 구운 거구요. 또 이거 두 마리는요, 고추장 얼큰하게 풀어서 찌개를 한거라구요, 자아, 어서 한 잔 쭈욱 하세요.」
  잉어 한 마리는 거의 팔뚝 둘을 합해 놓은 것만 한 크기였다. 그런 것들이 네 마리나 번듯하게 나자빠져 있었다. 그래서 꽤 큰 상 위에는 온통 잉어로 뒤덮혀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여섯 쌍둥이 난 여자도 아닌데 이렇게 잉어를 퍼 먹일려고 하니 말야.」
  그의 퉁명스러운 말에 순자년은 한참을 킥킥대고 웃었다.
「이게 글쎄 보통 잉언줄 아세요? 미스터 리도 알죠? 우리 집에 있던 춤추는 잉어, 이게 바로 그놈 들 이구요.」
「아니, 그놈들이 왜 이 꼴이 됐어?」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딱 한번 본 일이 있었다. 사장댁의 거실은 보통집의 마당만한 넓이였는데 그 가운데가 유리로 되어 있었다. 사장댁의 거실은 보통집의 마당만한 넓이였는데 그 가운데가 유리도 되어 있었다. 그 두 평짜리 유리는 삼륜차가 지나가도 까딱없을 정도로 강한 유리 비슷한 것이라 했다. 그 환히 내려다보이는 아래는 연못이었고 거기서는 잉어가 퍼득이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잉어는 예사 잉어가 아니라 노래를 틀어 놓으면 거기에 맞춰 춤을 춘다는 것이었다. 폴카, 탱고, 차차차 못 추는 춤이 없다고 했다. 멍해있는 그의 앞에서 사장은 자랑을 늘어놓으며 턱없이 즐거워했었다.
「근데 글쎄 그 잉어가 오늘 아침에 싹 죽어서 둥둥 떴지 뭐예요. 연못을 수리하고 나서 세멘독(毒)을 다 빼내고 잉얼 넣어야 되는데 그만 정원사 박씨가 실술했대지 뭐예요. 사장님이나 사모님이 얼마나 속상해 했는지 몰라요. 자식처럼 사랑했었다구요.」
  그는 바로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근데 사모님이 징징 울며 이 일어들을 저쪽 등나무 옆에다 묻어주라고 하잖겠어요? 내가 미쳤어요? 번득 미스터 리 생각이 나대요. 이 잉언 먹이부터 달라거든요. 아무거나 먹는 게 아니라 미제만 먹었다구요. 그러니 얼마나 더 맛 있겠어요. 그래서 지지고 굽고 한거라구요.」
과연 내 성의가 어떠냐는 듯 순자년은 그를 말끔히 쳐다보았다.
「그래, 박씨는 어떻게 됐어?」
  그가 맥빠진 소리를 물었고
「보나마나지 뭐예요. 오늘 아침에 당장 싹뚝했죠.」
  순자년은 손바닥을 빳빳하게 펴서 목을 싹둑 자르는 시늉은 해보였다.
「허참, 너무 했군」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고
「엄머머 너무 하긴요. 그런 당연한 거라구요. 그게 한마디에 얼만 줄이나 아세요. 자그만치 칠십만원씩이라구요. 내 월급 삼년 하구두 반년 치예요. 그런 큰일을 저질렀는데두 목이 성하게 붙어 있겠어요?」
순자년은 잘도 떠들어댔다.
「사 칠에 이십 팔이라. 그럼 이게 이백 팔십만원짜리 술상 아닌가.」
  그가 한숨처럼 말했고
「그래요. 그렇군요. 어서 한 잔 쭈욱하세요.」
  순자년이 좋아죽겠다는 듯 죠니 워카 병을 들고 그에게로 달겨들었다. 

☆무용한 것은 망하게 마련이다. 유용한 사람이 되다.

                      <佛光聖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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