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체류기
ꊱ 인도의 성지 「베나레스」
인도에는 성지가 여러 곳에 있다. 그 중에서도 베나레스는 오늘날에도 힌두교 순례자가 가장 많이 찾아오는 성지다.
이 베나레스의 교외에 부처님이 초전법륜(初轉法輪)을 하신 녹야원이 위치한다. 그러므로 우리 불교도의 성지이기도 하다. 새벽 갠지스 강에 나가면 지금도 갠지스의 성수(聖水)에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시면서 태양을 향하여 예배드리는 수천 명의 힌두교 순례자들의 경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베나레스에는 갠지스 강 말고도 많은 절이 있다. 쉬바 신을 모시는 절의 수가 만개도 넘는다고 한다. 그 많은 절 가운데 특이한 절이 하나 있다. 마아타아 ·부하라트야· 만딜>란 절이다. 번역하면 <어머니이신 인도를 위한 절>. 인도 전체를 어머니로 보고 그것을 모셔놓고 예배하는 절이다. 절에는 오직 인도 전체의 지형도가 모셔있다. 흰 대리석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거대한 지형도다. 만질(절)이기 때문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고 맨발이 되어야 한다. 인도에는 기이한 것도 많은데 인도의 거대한 지형도를 모셔놓은 이 절도 그 기이에 속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찌하여 이와 같은 길이 창건되었는가.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현대사를 말해주는 단편(短篇)이며 영국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인도를 독립시키려던 인도 자유 투사들의 피맺힌 숨은 이야기다. 이 만딜의 창건과 함께 베나레스에 그들은 영국 관료에서 충실히 봉사하는 하급관리를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한 영국 대학이 아니고 인도 민족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하여 인도의 민족자본으로 힌두대학을 건립했다. 베나레스는 영국치하에서 인도적 민족주의가 싹튼 요람이기도 했다. 인도적 민족주의를 싹트게 한 요람으로 마아타아·부하라트아, 만딜은 상당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 보자
ꊲ 인도의 다양성
익살을 좋아하는 어느 외국기자가 인도를 방문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닌 후 귀국하여 써낸 기행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첫 머리에서 <자기는 벨갈 아우드 구쟈라트 다말 등 여러 곳에는 간 일이 있지만 인도라는 나라에는 간 일이 없다>고. 그는 벵골어를 말하여 벵골식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타밀어를 사용하며 다말식 생확을 하는 삶들은 만났으나 <인도>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나라는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의 다양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말한 것이다. 여기서 인도는 <다양(多樣)하다>고 했으나 다양함은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서단일 민족을 지닌 단일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다양의를 넘어선다. 우선 인도의 총면적을 보아도 우리 한반도 전역의 20배는 넘는다. 그래서 거리감각부터가 우리와는 다르다. 도로 사정이 나쁘기 때문에 100km쯤 가려면 자동차로 줄잡아 3시간은 달려야하는데도 인도사람들은 태연하게 <바로 전기>라고 말한다. 한국적 거리감각으로 다녔다가는 봉변당하기 알맞다. 인도사람들의 기차여행광경을 지켜보노라면 인도의 땅덩어리가 얼마나 넓은가를 짐작할 수 있다. 가경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남쪽 마드라스까지 기차로 달린다고 하자. 초특급으로 38시간, 특급으로 48시간 만 이틀이 걸리는 셈이다. 그래서 델리의 학생이 고향 마드라스 가려면 적어도 침대차표를 보름 전에 예약해야 하고 일주인 전에 다시 확인한 다음 여행준비를 서두른다.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을 부산에서 먹는 간단한 여행이 아니고 만 이틀을 기차 속에서 생활해야 하므로 침구는 물론 식기 등 일상용품까지 준비해야 한다. 여행이 아니고 <생활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역 플랫폼에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이불 보따리가 사람이 설자리도 없이 가득 차 있다. 인도 사람들은 이틀쯤의 기차이동생활에는 익숙하여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를 알고 이해하려면 반드시 기차로 여행해야 한다는 이상론을 고집하던 나는 기차여행 하루 만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즐거운 답사여행이 못되고 여독 때문에 사흘씩 누워 앓은 고역을 치렀다. 그래서 고집하던 이상론을 수정하고 될 수 있으면 비행기 편을 이용하는 답사를 계속했다.
이 같이 지리적 광대에다 역사적 장구가 겹치게 되므로 지역적 다양성은 더욱 심해진다. 게다가 인도 전역을 통합지배한 통일국가가 없었다는 사실이 지역사이의 이질성(異質性)을 더욱 조장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언어가 발생했고 따라서 다양한 전통과 풍습을 낳게 했다. 타밀어만 하더라도 아리아 인종이 전에 살았던 원주민 드리비다어 계통으로 그 언어역사가 1000년은 넘는다. 따라서 타밀어로 기록된 막대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타밀사람들은 이 문화유산에 대하여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타밀어뿐 아니라 그 이웃 텔구어도 타밀어에 못지않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분리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 같은 다양한 조건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국식민통치에서 자주독립운동을 전개할 때 인도 지도층들이 부딪쳤던 난제는 인도민중에게 어떻게 소위 인도적 민족주의를 일깨워 주는가 하는데 있었다.
또 뉴델리의 번잡한 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인도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하는 일도 재미있다. 한결같이 납작코에 두툼한 입술을 한 한국 사람들의 얼굴은 한 두 사람만 구경하여도 세 사람 째부터는 벌써 싫증이 나는데 인도사람들은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의 모습이 다다르기 때문에 심심치 않다. 희랍 로마인을 연상케 하는 흰 피부의 곱슬머리에 우뚝 솟은 코가 있는가 하며 페르샤풍의 파란 눈이 있고 원주민을 닮은 검은 피부가 있는가 하면 몽고계의 얼굴도 있다. 탐스런 수염에 타반을 쓴 근엄한 시크교도가 있는가 하면, 로만칼라에 검은 승복(僧服)을 한 인도인 신부도 있다. 한마디로 언어보다는 더 다양하다. 마치 세계인종전시회를 구경하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도 청바지스타일의 현대여성이 활발히 지나가는가 하면 아직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진 모슬렘교의 부인이 조용히 지나간다.
ꊳ 인도적 민주주의의 특색
위에서 <인도적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도대체 <인도적>이란 개념이 인도민중들의 의식에는 자리 잡고 있지 않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풍습을 가진 벵골, 타밀은 있지만 전체를 가리키는 <인도>가 그들의 머리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인도라는 낱말이 생소하기만 한 그들의 생각 속에 인도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싹틀 수 있겠는가. 더구나 영국통치하에서 인도민중을 계몽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있다. 그래서 인도의 지도적 지식인들은 <하나의 인도>를 의식시키고 거기에 민심을 집약시키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그리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마아타아부하라트아 ·만딜 즉 어머니 인도를 위한 절이다. 마하트마 간디, 타고르 등 거물급 지도자들이 이 만딜 안(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타고르는 모든 강이 큰 바다로 흘러가듯이 인도는 다양한 가운데서 통일을 구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인도에는 성지가 여러 곳에 있다. 그 중에서도 베나레스는 오늘날에도 힌두교 순례자가 가장 많이 찾아오는 성지다.
이 베나레스의 교외에 부처님이 초전법륜(初轉法輪)을 하신 녹야원이 위치한다. 그러므로 우리 불교도의 성지이기도 하다. 새벽 갠지스 강에 나가면 지금도 갠지스의 성수(聖水)에 목욕하고 그 물을 마시면서 태양을 향하여 예배드리는 수천 명의 힌두교 순례자들의 경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베나레스에는 갠지스 강 말고도 많은 절이 있다. 쉬바 신을 모시는 절의 수가 만개도 넘는다고 한다. 그 많은 절 가운데 특이한 절이 하나 있다. 마아타아 ·부하라트야· 만딜>란 절이다. 번역하면 <어머니이신 인도를 위한 절>. 인도 전체를 어머니로 보고 그것을 모셔놓고 예배하는 절이다. 절에는 오직 인도 전체의 지형도가 모셔있다. 흰 대리석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거대한 지형도다. 만질(절)이기 때문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고 맨발이 되어야 한다. 인도에는 기이한 것도 많은데 인도의 거대한 지형도를 모셔놓은 이 절도 그 기이에 속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찌하여 이와 같은 길이 창건되었는가.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현대사를 말해주는 단편(短篇)이며 영국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인도를 독립시키려던 인도 자유 투사들의 피맺힌 숨은 이야기다. 이 만딜의 창건과 함께 베나레스에 그들은 영국 관료에서 충실히 봉사하는 하급관리를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한 영국 대학이 아니고 인도 민족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하여 인도의 민족자본으로 힌두대학을 건립했다. 베나레스는 영국치하에서 인도적 민족주의가 싹튼 요람이기도 했다. 인도적 민족주의를 싹트게 한 요람으로 마아타아·부하라트아, 만딜은 상당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 보자
ꊲ 인도의 다양성
익살을 좋아하는 어느 외국기자가 인도를 방문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닌 후 귀국하여 써낸 기행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첫 머리에서 <자기는 벨갈 아우드 구쟈라트 다말 등 여러 곳에는 간 일이 있지만 인도라는 나라에는 간 일이 없다>고. 그는 벵골어를 말하여 벵골식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타밀어를 사용하며 다말식 생확을 하는 삶들은 만났으나 <인도>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나라는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의 다양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말한 것이다. 여기서 인도는 <다양(多樣)하다>고 했으나 다양함은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서단일 민족을 지닌 단일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다양의를 넘어선다. 우선 인도의 총면적을 보아도 우리 한반도 전역의 20배는 넘는다. 그래서 거리감각부터가 우리와는 다르다. 도로 사정이 나쁘기 때문에 100km쯤 가려면 자동차로 줄잡아 3시간은 달려야하는데도 인도사람들은 태연하게 <바로 전기>라고 말한다. 한국적 거리감각으로 다녔다가는 봉변당하기 알맞다. 인도사람들의 기차여행광경을 지켜보노라면 인도의 땅덩어리가 얼마나 넓은가를 짐작할 수 있다. 가경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남쪽 마드라스까지 기차로 달린다고 하자. 초특급으로 38시간, 특급으로 48시간 만 이틀이 걸리는 셈이다. 그래서 델리의 학생이 고향 마드라스 가려면 적어도 침대차표를 보름 전에 예약해야 하고 일주인 전에 다시 확인한 다음 여행준비를 서두른다.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을 부산에서 먹는 간단한 여행이 아니고 만 이틀을 기차 속에서 생활해야 하므로 침구는 물론 식기 등 일상용품까지 준비해야 한다. 여행이 아니고 <생활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역 플랫폼에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이불 보따리가 사람이 설자리도 없이 가득 차 있다. 인도 사람들은 이틀쯤의 기차이동생활에는 익숙하여 별로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를 알고 이해하려면 반드시 기차로 여행해야 한다는 이상론을 고집하던 나는 기차여행 하루 만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즐거운 답사여행이 못되고 여독 때문에 사흘씩 누워 앓은 고역을 치렀다. 그래서 고집하던 이상론을 수정하고 될 수 있으면 비행기 편을 이용하는 답사를 계속했다.
이 같이 지리적 광대에다 역사적 장구가 겹치게 되므로 지역적 다양성은 더욱 심해진다. 게다가 인도 전역을 통합지배한 통일국가가 없었다는 사실이 지역사이의 이질성(異質性)을 더욱 조장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언어가 발생했고 따라서 다양한 전통과 풍습을 낳게 했다. 타밀어만 하더라도 아리아 인종이 전에 살았던 원주민 드리비다어 계통으로 그 언어역사가 1000년은 넘는다. 따라서 타밀어로 기록된 막대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타밀사람들은 이 문화유산에 대하여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타밀어뿐 아니라 그 이웃 텔구어도 타밀어에 못지않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분리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 같은 다양한 조건 때문이었다. 그래서 영국식민통치에서 자주독립운동을 전개할 때 인도 지도층들이 부딪쳤던 난제는 인도민중에게 어떻게 소위 인도적 민족주의를 일깨워 주는가 하는데 있었다.
또 뉴델리의 번잡한 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인도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하는 일도 재미있다. 한결같이 납작코에 두툼한 입술을 한 한국 사람들의 얼굴은 한 두 사람만 구경하여도 세 사람 째부터는 벌써 싫증이 나는데 인도사람들은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의 모습이 다다르기 때문에 심심치 않다. 희랍 로마인을 연상케 하는 흰 피부의 곱슬머리에 우뚝 솟은 코가 있는가 하며 페르샤풍의 파란 눈이 있고 원주민을 닮은 검은 피부가 있는가 하면 몽고계의 얼굴도 있다. 탐스런 수염에 타반을 쓴 근엄한 시크교도가 있는가 하면, 로만칼라에 검은 승복(僧服)을 한 인도인 신부도 있다. 한마디로 언어보다는 더 다양하다. 마치 세계인종전시회를 구경하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도 청바지스타일의 현대여성이 활발히 지나가는가 하면 아직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진 모슬렘교의 부인이 조용히 지나간다.
ꊳ 인도적 민주주의의 특색
위에서 <인도적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도대체 <인도적>이란 개념이 인도민중들의 의식에는 자리 잡고 있지 않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풍습을 가진 벵골, 타밀은 있지만 전체를 가리키는 <인도>가 그들의 머리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인도라는 낱말이 생소하기만 한 그들의 생각 속에 인도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싹틀 수 있겠는가. 더구나 영국통치하에서 인도민중을 계몽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있다. 그래서 인도의 지도적 지식인들은 <하나의 인도>를 의식시키고 거기에 민심을 집약시키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그리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마아타아부하라트아 ·만딜 즉 어머니 인도를 위한 절이다. 마하트마 간디, 타고르 등 거물급 지도자들이 이 만딜 안(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타고르는 모든 강이 큰 바다로 흘러가듯이 인도는 다양한 가운데서 통일을 구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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