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의 주인인지 모른다. 만약 그것을 안다면 나의 삶이나 고뇌의 양상은 훨씬 달라질 수 있었으리라.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아니니 나는 언제나 한낱 중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주인이라기 보다는 기실 언제나 그 무엇의 종(奴隸)이었다.
무엇의 종이었을까?
굳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허영(虛榮)의 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허영이었는가?
외관상으로 남보다 아름답고 싶고 예쁜 의상과 멋진 구두로 사치하고 싶은 허영은 물론 아니었다.
그런 허영도 조금은 가졌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지독하고 좀 더 교활한 허영을 가지고 살아왔다.
공부를 남보다 잘하여 일등하고 싶고 그리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존경받고 싶은 허영 그리고 남보다 좀 더 돈 많은 부자로 살면서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을 향해 보람 있는 일을 가장하여 베푸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허영의 복잡한 허영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좀 더 정직하게고백하자면 앞서 말한 허영들은 어쩜 부수적인 것에 해당할는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시(詩) 잘 쓰고 싶은 그리하여 유명(有名)해 지고 싶은 욕망이었다.
이런 것은 남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에게도 크게 해될 것 없는 허영이므로 한편 생각하면 좋은 허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순수한 창의의 즐거움을 넘어서 있을 때에는 문제가 아니 될 수 없다 하겠다.
시를 잘 짓는 즐거움에 그쳐서 혼자서 일기장 속에다 적어 놓고 혼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만인이 주시하는 공기(公器)에다 발표를 해야 하는 사태까지 와 버렸고 그것의 댓가로 돈을 받고 있으며 적당한 명예에 집착하여 허둥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드디어 허명(虛名)의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빠져서 허덕이고 있는 이곳이 허명(虛名)의 웅덩이라는 것은 얼마 안가서 쉽게 깨달을 수 있었지만 거기에서 빠져 나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남긴 몇 낱의 저서(著書). 그리고 몇 낱의 상찬(賞讚). 이런 허상(虛像)들에서 벗어나 내가 참 나를 찾고 나의 명실공한 주인이 되는 일은 멀고 먼 것이라.
감히 부처님이나 덕 높은 스님들의 흉내를 내는 것은 제쳐 놓고라도 세속적인 모든 것들 좀 멀리하고 이제 오롯히 앉아 시만 쓰다 죽고 싶다.
내가 가진 언어(言語)들, 그것조차도 한낱 헛된 망집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안간 냄새나는 그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 시가 있는지, 아니면 시속에 마음이 있는지, 시와 마음이 한 얼굴이 되는지 가려내고 싶지 않고 다만 나는 시의 주인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