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佛光茶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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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다실(佛光茶室)
  • 관리자
  • 승인 2009.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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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방에서 소리없는 기지개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도,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도,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그리고 가벼운 날개를 윙하고 떨쳐 보이는 날버러지 날개에서도 모두 대지가 움트고 새 힘이 움직이고 호흡이 생생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겨울의 움츠림이 새로운 활기를 장만하고 있었던가. 한 해의 활기찬 전개가 이와 같이 하늘 땅 구석구석에서 막 시작하는 이 때다.
   식물이 자라는 걸 보아도 새싹이 나고 그 새싹에서 또 새싹을 내서 한마디 햇빛을 향하여 솟아 올라간다. 생명의 분출은 밝음을 향하여 항상 새로운 자세의 연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이 이른 봄날의 우리에게 그칠 줄 모르는 새로운 자세를 일깨워주고 대지의 성장의 조심에 우리의 생명의 싹을 키우게 해주는 것을 느낀다. 끊임없는 새로움을 향한 자기 위치의 반추가 자기를 퇴보와 나락에서 건져준다. 성장을 잊어버린 싹은 구지랑잎이오, 조만간 쓰러질 운명이다. 끊임없는 성장을 가져오고 끊임없는 성장은 자기 생명과 밝은 햇빛과 직선관계에서 끊임없이 바로 잡혀간다. 3월에 주는 생명성장의 교훈을 다시 생각하자.

   ♣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느끼고 손으로 만져서 차고 더움을 안다. 눈으로 보아서 사람이나 물체를 보고 귀로 들어서 소리를 분별한다. 입으로 말하고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 이것이 생각의 나타남인 것은 알고 있지만 생각과 그 나타남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도 우리는 경험하는 바다.
   그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거동으로 시늉하는 것으로써 확정적인 우리의 뜻은 나타나고 눈이나 귀나 그 밖의 감관으로 파악되지 아니하는 생각이나 마음의 상태는 우리의 현실과는 전연 별개의 것으로 아는 것이 보통이다.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생각의 표현인 것을 알면서 우리는 마음보다도 보고 듣고 만져지는 것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또한 거기에 가치를 둔다. 우리는 일찍이 부처님께서「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을 설파하신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누구이던 간에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분별하고 생각하며 기뻐하고 또는 슬퍼한다. 이웃을 도와주려 하기도 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도와줄 일을 구상하며 그것을 실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활동이 마음을 떠난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서 생각한 것은「생각한 것」 그것만으로 하나의 행동이 된다. 그 생각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또는 어떤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아도, 생각 자체로서 하나의 행위는 완성되고 결과도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먹은 것이 생리현상과 정신적 ∙ 육체적 상황 속에 나타나고 스스로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형성하며 나아가 상대가 있는 생각은 상대의 깊은 마음속에 전달되는 것이다. 마음이 생각한 것을 행위가 표현한다 하지만 행위는 또 하나의 첨가이고 생각 자체만으로써 족히 일체행위는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는 막힘이 없는 것이다. 서로 주고받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저주는 말이나 문서를 통하지 않아도 자신과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사랑과 축복도 또한 마찬가지다. 육체와 물질에만 사로잡혀서 물질과 육체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만을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범상생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모두가 고성능의 방송국과 같이 마음으로 자기의사를 방송하고 다른 사람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서로 가슴 터놓고 진정 사랑하고 행복을 기원해주는 따뜻한 우리 모두의 본래의 감성을 잘 다듬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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