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더불어 승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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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더불어 승부할 것인가
  • 김재영
  • 승인 2009.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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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2]

—마라(Mara · 魔)의 정체~내 자신의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

☆불경~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처럼 악전고투하는 나에게, 너(Mara · 魔)는 어찌하여 생명의 보전을 묻는가? 힘써 정진하는 데서 일어나는 이 바람은 강물도 마르게 할 것이다. 오로지 수도에만 정진하는 내 몸의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숫타니파타 대품-정진-432 ∙ 433>

     ♣ 싯다르타와 마라의 승부

   싯다르타(Siddharta ∙ 悉達多)는 가야산(Gaya ∙ 伽倻山) 고행림(苦行林) 속에서 6년간에 걸친 격렬한 고행을 감행하였다. 이것은 수행이 아니라, 차라리 피를 뿌리는 악전고투라고나 할까.「손과 발은 풀잎의 마디와 같이 되고, 엉덩이는 발목과 같이 되고, 등뼈는 드러나 앙상하고 늑골은 드러나 마치 허물어진 집의 서까래와 같았다.」<중부경 권12 사자후대경>
   그러나 이러한 가혹한 고행이 추하고 아무 이익이 되지 못하는 것인 줄 깨달은 싯다르타는 미련 없이 고행을 버리고, 가야산을 내려왔다. 촌장의 딸 수자타(Sujata)로부터 우유죽을 공양받아 기운을 차리고, 붓다가야(Buddhagaya)의 핍팔라나무<성도년(年) 보리수라고 부름> 아래서, 싯다르타는 최후의 정진을 결행하였다.
   이때 마라(Mara ∙ 魔~악마)가 나타나,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당신은 야위었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망은 천의 하나입니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어야만 모든 착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마라가 이렇게 말하자, 싯다르타는 대답하였다. <앞 불경 참조>
   『몸의 피가 마르면 쓸개도 가래침도 마를 것이다. 살이 빠지면, 마음은 더욱더 밝아지리라. 내 생각과 지혜와 순결한 마음은 더욱더 평화로워지리라.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증오이며, 셋째 군대는 기갈, 넷째 군대는 애착이다. 내가 문자풀을 입에 물 것 같은가?<항복의 뜻> 이 세상의 생(生)은 반갑지 않다. 나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마라가 말하였다.
   『우리는 6년 동안이나 그를 한발 따라다녔다. 그러나 항상 조심하고 정신차리고 있는 수행자에게는 뛰어들 틈이 없다∙∙∙∙∙∙. 우리는 지쳐서 고타마를 떠나 간다.』 근심에 잠긴 마라의 옆구리에서 비파가 뚝 떨어졌다. <숫타니파타 대품-정진>

     ♣ 끝없는 악전고투의 생애

   부처님의 초기 경전에는 마라<악마>가 때때로 등장합니다. 성도(成道) 이전은 물론이고, 성도 이후에도 마라가 나타난다는 것은 참 흥미 있는 일입니다. 싯다르타가 출가할 때, 고행을 버릴 때 보리수 아래서 명상할 때 성도 후 성법을 생각할 때, 전도의 길을 떠날 때∙∙∙, 마지막 열반의 길을 가실 때, 부처님의 전 생애에 걸쳐 마라는 동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라의 존재를 신화적 서술이라던지, 비현실적 허구라던지 하는 정도로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부처님과 마라와의 대화<악마상응(相應)이라 부른다>를 통하여, 석가모니의 인간적 진실을 듣게 되고 근본 불교의 순수한 모습을 발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마라가 석가모니의 임종하는 순간에까지 등장한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전 생애가 악전고투(惡戰苦鬪)의 과정이었다고 하는 놀라운 진실을 시사해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후대의 대승불교론자들은 부처님의 절대적 완전성<불타(佛陀)의 덕성(德性)>을 강조하여「부처님에게는 티끌만한 오류<과오>도, 번뇌<고뇌>도 없다」고 주장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주로 초기 경전<상응부경전 — 악마 ∙ 상응 ∙ 숫타니파타 등>의 악마와의 대화를 보면, 부처님은 때때로 갈등과 고뇌를 체험하시기도 하고, 배고픔과 졸림과 아픔 때문에 고통을 느끼시기도 합니다.
   세존(世尊)께서 어느 때 밤중까지 사카족(Sakya 族) 사람들을 가르치고 격려하신 다음에 아난다(Ananda)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야, 너는 나를 대신해서 가필라성(Kapila-Vatthu)의 사카족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도(道)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법(法)을 설해주려무나.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겠다.』<잡아함경 43 ∙ 13>
   우리는 — 이 광경을 앞에 놓고, 한 사람이라도 더 인도하기 위하여 노심초사(勞心焦思) 악전고투하시는 부처님의 고뇌의 신음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처님께서는 끝끝내 참고 견디시고, 마침내 마라를 꺾어 이기십니다. 나와 당신이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아니 합니까?

     ♣ 누구와 승부할 것인가?

   부처의 길은 끝없는 수행의 길입니다. 이 수행은「피가 마르고 쓸개도 마르는」, 그러면서도「생명의 보전」을 돌보지 아니하는 마라와의 고투입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문제는 마라의 정체(正體)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 부처님은 명백한 답을 주십니다.
   「마라여,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증오이며 셋째 군대는 기갈, 넷째 군대는 애착」이라고 폭로하였습니다. 마라의 정체는 내 안의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三毒心)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결국 내 생애의 끝까지 승부해야 할 상대(마라)는「나 자신」이라는 진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나 자신의 무지(無知 ∙ 무명(無明))의 탐욕과 증오심을 버리고,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이 세상에는 또 없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자야 말로 참으로 영광스런 승자(勝者)인 것입니다.
   「전장에서 수천의 적과 혼자 싸워 이기기보다 하나의 자기를 이김이야 말로 참으로 으뜸가는 용사이니라.」<법구경 술천품 103>
   그런 까닭에 이 싸움은 참으로 이기기 어려운 승부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이겨야 할 승부가 아닙니까? 포기하고 물러설 수도 없고, 재판을 통해서도 결판을 낼 수 없지 아니합니까.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것이 나의 무기이고, 당신의 전력(戰力)입니다. 우리는 이 힘을 굳게 믿으면서, 지금 여기서, 다시, 진정한 승부를 향하여 정진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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