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선생이 이끄셨던 만당(卍黨)의 일원이었으며 한용운 선생의 제자이신 최범술 선생을 제헌회관으로 찾아 뵈었다. 여러 가지 자세한 말씀이 많으셨으나 사상에 대한 부분만 요약해 싣는다.
<문책기자>
한용운 선생은 사상과 생활이 일치되는 점에서 아주 철저하신 분이었다. 세숫물을 아끼는 것이라든가 신발을 벗어놓는 것 하나까지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추호도 없으셨다. 옛 조사(祖師) 스님들의 가르침을 완전히 체득한 듯이 보였다. 이런 점이 한용운 선생 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머리로만 생각한 이론적인 사상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한용운 선생의 사상을 알려면「님」이라는 말을 앎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님」이라는 말이 결국은 한용운 선생의 사상을 대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말하는「대승」이란 얘기가「님」에 대한 사상의 근원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대승」은 대승과 소승 할 때의 대승과는 다르다. 대승기신론에서 얘기하는「대승」이란 현대말로 하면「근본원리」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대승기신론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이름 붙이기 어려우니까 이것을 굳이「대승」이라고 한 것인데 한용운 선생은 그 자리를「님」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그 자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실상(久遠實相)의 본각(本覺) 자리 또는 자성(自性)을 의미한다 하겠다. 다시 말하면 한용운 선생은「내가 사람이다」라는 것을 확실히 체득한 분이라 하겠다. 내가 사람이니까 사람의 노릇을 해야겠다는 의식이 투철했던 것 같다. 이것을 요새말로「민족혼」이라 하던지「국가의식」이라 하던지 여하튼 그것을「님」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내가 사람이라는 자리에 서면 각행(覺行)도 하고 각타(覺他)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성을 완전히 체득한 자리로서 여래의식(如來意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용운 선생의 이러한 정신은 그를 대자유인으로서 생활하게 하였으니 3 ∙ 1운동 후 재판을 받던 때의 통쾌한 자세도 바로 그것이다. 재판을 받으면서도「내 물건을 내가 찾으려 하고 우리나라 주권을 우리가 찾으려 하는데, 그것을 가져간 사람이 나쁘지 찾으려는 사람이 왜 나쁠까 보냐?」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주 쉽고 제일 가까운 소리지만 실지론 어려운 말이다. 그리하여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독립운동의 자세를 가지셨던 것이다.
한용운 선생은 일본 사람이던지 법률이던지 일체 세간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았던 자유인이었다. 사실은 한용운을 묶을 어떠한 속박도 없었고 또 속박에서 벗어날 한용운도 없었다. 묶일 것도 얽매일 것도 없는 대자유인이었다.
이러한 한용운 선생의 사상은「님」이 가리키는 사람의 자리에서 사람의 노릇을 함으로써 오늘의 역사에 다시 비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