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용운론(論) 서설(序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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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용운론(論) 서설(序說)
  • 고은
  • 승인 2009.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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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용운사상의 원천

-한용운이 우리에게 주는 것-

1879~1944년의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의 삶은 우리에게 있어서 참다운 삶은 혁명적인 삶이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그가 참가하는 곳마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의 권리가 행사된다. 그는 불교와 만난다. 그는 이어서 민족과 만난다. 그런 것과 함께 그는 시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다채로우며 파란 많은 삶의 장식이 아니라 종교 ∙ 민족 ∙ 시가 하나의 삶의 실체로서 통일되어진다.

따라서 그의 종교는 누적된 불교사회의 부패, 침체에 대한 혁명이며 그가 만난 민족은 민족의 심각한 위기에 대한 혁명적 근본인 것이다. 그의 시는 문학지상주의나 피상적인 계몽주의가 아니라 민족, 민중의 철학적 각성의 노래들인 것이다. 이 모든 한용운의 당위들은 혁명이야말로 창조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한 시인이 고난의 시대에 혁명가가 되는 진실이나 한 민족지도자가 멸망의 시대로부터 부활을 실현하려는 정의의 혁명가가 되는 일이나 집 없는 한 승려가 그의 종교의 모순현상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혁신 ∙ 유신의 열정들이야말로 바로 그것이 창조적인 삶임을 알려준다.

우리의 이 같은 혁명의 삶을 근대사에 잔재하고 있는 여러 삶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까지 관철된 사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만큼 험난한 것이다. 한용운의 사나운 혁명의 삶이 바로 거기에서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그는 특별히 혁명의 논리나 혁명전선의 직업적 체험이 없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그가 만난 충동으로서의 혁명을 그의 불가피성에 의해서 발생시킨 것이다. 불타는 삶, 뜨거운 삶, 질풍노도의 삶 자체가 혁명화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 근대민족사가 그의 혁명사상을 요청하고 있다. 한용운은 만약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얼마나 비겁한 시대를 남겼을까 하는 그런 곳에서 그의 불길이 댕겨진 것이다.

아마도 이 같은 한용운의 혁명사상이 집약된 이론적 전개는 1910년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이며 1919년의 감옥에서 쓴 <조선독립(朝鮮獨立)의 서(書)>이리라. <조선불교유신론>은 훨씬 뒤에 그가 <님의 침묵>을 탈고한 내설악 백담사에서 탈고한 글이다. 그는 이 글을 통해서 아마도 근대 한국민족사의 주제인 자유와 평등을 최초로 발굴한 성부르다. 그것이 불교 이론과 그의 서구 철학 또는 중국의 근대 사상들의 섭렵으로 삶의 적극적 원리를 이룬다. 그는 이미 이 글을 쓰기 전에 일본여행을 마친 뒤 조선불교의 고식적인 적폐와 쇠퇴를 진단하고 불교로 하여금 참다운 민족종교 또는 민족자결의 가치를 지향케 하려는 실천적 입장에 나섰던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불교유신론>의 깊은 의도는 유신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불교적 측면의 일반적 개혁에 두지 않고 제반 반봉건의 민족적 혁명운동을 불교사회의 혁명과 동시적인 기반 위에 두자는 것이다. 또한 그의 불교유신은 올바른 대승불교의 새로운 능력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조선불교유신론>의 사상은 그의 비여성적 선관(禪觀)과 함께 여러 가지의 불교논술로 전개되다가 이윽고 조선불교청년회의 불교유신회 결성으로 나타나며 그 행동강령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같은 것들의 온갖 진보적이며 급진적이기까지 한 유신이론은 결국 민족혁명의 궁극에서 일체화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유신은 민족 사회 내부나 세계가 혁명적 유신을 진행하거나 주장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하는 문화의 전칭적(全稱的)인 불교의 실천규범이 된다. <조선불교유신론>의 <논불교지유신(論佛敎之維新)이 의선파괴(宜先破壞)>에서 한용운은 대담한 파괴의 이론을 내세운다. <조선불교유신론>의 국역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요.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 그러나 파괴라 하여 모든 것을 무너뜨려 없애자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구습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을 고쳐서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 뿐이다∙∙∙∙∙∙ 무릇 불교의 유신에 뜻을 둔 이라면 유신하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파괴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하리라.」

   이런 혁명정신에 의해서 그는 <불교의 성질> <불교의 주의(主義)> <유신은 파괴로부터> <승려의 교육> <참선> <염불당을 없애라> <포교> <사원의 위치> <불가에서 섬기는 소회(塑繪)> <불교의 의식> <승려의 인권과 생산> <승려의 결혼문제> <주지(住持)의 선거> <승려와 단체> <사원의 통활> 등의 총론 각론과 함께 서론과 결론을 망라하는 것이다. 그 당시의 사회에서 전근대적인 현상을 뛰어넘는 이러한 인간해방의 이론을 형성한 사실은 그의 민족적 열정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기울어지는 국운에 대하여 이미 그는 절망한다.

이 같은 절망으로부터 민족을 건져내려는 한 양태가 그가 속해 있는 불교사회 재건이라는 이념으로 심화될 때 거기에 불교혁명의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필요성은 불교의 기본이론의 근대적 해석으로부터 강조되어서 불교사회의 정밀한 분석과 함께 그것의 유신에 도달한다. <조선불교유신론>은 한용운사상이 만들어낸 행동의 주저(主著)다. 이와 함께 <조선독립의 서>는 그가 불교 지도자일 뿐 아니라 민족지도자의 실상(實像)이라는 증거를 확대시켜주고 있다.

 1919년 11월 4일자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부록은 한용운의 <조선독립 이유서>—<조선독립의 서>를 특별게재하고 있다. 이것은 1919년 7월 10일 일본 검사의 검사취조에 대한 그의 답변서였는데 그때 제출된 진술의 표제는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感想)의 서>다.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던 한용운은 이것을 입찰지에 따로 베껴서 면회하러 온 그의 상좌 이춘성(李春城)한테 비밀리에 전했다.

그것이 국내는 몰론 국외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다. <조선독립의 서>는 개론에서 자유와 평화의 본질적 해석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조선독립선언의 동기에서 조선민족의 역사적 능력과 세계 각처의 보편적인 연방(聯邦), 공화(共和)의 정세, 민족자결의 조건이 말해진다. 조선독립선언의 이유에서 민족자존과 자유주의를 천명하고, 조선총독정책의 부당성이 제기되며 그것은 조선독립의 완벽한 확신에까지 이르러 단원을 이루고 있다.「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그러므로 자유 없는 사람은 송장과 같고 평화가 없는 자는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자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한 이 글은 한용운의 민족 독립투쟁의 한복판에서 일제에 대한 준열한 규탄과 함께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민족자존성 ∙ 조국사상 ∙ 자유 그리고 다른 민족들의 독립에 대한 광범위한 의무까지 열거하면서 그의 혁명사상의 행동화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사대주의 보수세력에 의해서 조선민족의 예속화나 현실타협 따위에 침윤된 식민지 지식인이나 지도자들의 독립상조론(尙早論)을 맹렬히 부정하고 민족의 독립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이러한 확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불교의 <진아(眞我)>에서 향유되어지는 자유권(自由權)을 제시하고 그것은 인간의 본성, 민족의 자존성에 연결시켜서 자유의 발전이야말로 조선민족의 독립을 성취하리라고 감동적으로 진술한다. 그는 이런 섬광적(閃光的)인 혁명이론을 변호사선임 거부, 사식(私食) 거부, 보석(保釋) 거부라는 옥중투쟁과 변절 ∙ 비겁에 넘어지는 다른 동지들을 질타하면서 옥 밖의 민족사회에 전달한 것이다.

「아 일본인은 기억하라. 청일전쟁 뒤의 마관조약(馬關條約)과 노일전쟁 뒤의 포츠머드조약 가운데서 조선독립을 보장한 것은 무슨 의협이며 그 두 조약의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곧 절개를 바꾸고 지조를 꺾어 궤변과 폭력으로 조선의 독립을 유린함은 또 그 무슨 배신인가」하고 절규한 이 글은 이미 한용운의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것이다. 이런 민족 전체의 것으로서 또한 그의 시집「님의 침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이렇게 책을 열고 있는 님의 개념은 이미 사랑하는 이, 그리워하는 이로서의 연애적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통틀어 가리키는 크나큰 사랑의 창조적 개시(開示)의 대상이 된다. 아마도 님의 개념을 이렇게 무한대적으로 확대시키고 절대적으로 심화시킨 시인이나 사상가를 우리는 근대문학을 통해서 처음으로 만난다.

사실 시집「님의 침묵」의 시 90편(「군말」까지도 포함)을 분석적으로 파악할 때는 사랑의 서정시, 민족회복의 시, 불교 형이상학의 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세 갈래의 어느 한쪽으로 경사되기를 거절하고 있는 보편 가치로서의 넓이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의 시를 가치부여적으로 한번 더 이해할 의무가 따르는 성부르다. 

아마도 그는 이 시집의 이러한 이해를 요청할 목적으로 유명한「군말」을 앞세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한 민족사 상실에 의한 민족의 명분이나 삶의 총체적 내용이 침략자에 의해서 침묵 당한 상태인가, 그런 일본 제국주의가 요구하는 침묵이 아니라 참으로 위기의 시대에 발휘되는 민족의 실상이란 침묵에 값한다는 그런 자강론적(自彊論的)인 의미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반드시 이론 민족적 규범에만 국한된 것으로서 님이나 침묵의 개념이 통용되는 사실을 지양할 때 우리는 그의 침묵은 아마도 불교의 원인적인 절경(絶景)이 되고 있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침묵 정신사와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님의 침묵」이라는 주제의 의미자체가 어떤 단정을 뛰어 넘어서 존재하는 대승화(大乘化)된 불교철학의 정신 전체를 표상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된다.

만해 한용운은 시집 이름 하나에 있어도 이 같은 의미의 해방자가 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민족이 민족만이 아니며 불교라는 이름이 불교만이 아니며 시가 시만이 아니라는 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선경(禪竟)에서만 이해되는 것이다.

 「님의 침묵」은 님과 나와의 끊임없는 존재론적 관계에서 생기는 절망, 슬픔 그리고 환희들이 나타난다. 또한 님과 나와의 반분석주의적 일체화로서 끝내 나 속의 너, 너 속의 나를 통한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의 바탕을 아함경의 세계로 서술하면서도 그 시가 지향하고 있는 최고의 정신적 형태는 대승주의의 공관(空觀)에 그 뜻을 두고 있다. 이런 점에는 그의 서정을 윤리적으로 불구화(不具化)하는 흠을 보이며 그의 시가 덜 세련된 예를 만들고 있다. 이런 그의 결함이 그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게 경어법을 연속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시를 평안한 일관성으로 지속시키고 있다. 이렇게 기법상의 언어 자체가 그의 주제인 님에 대한 무궁경한 외경과 사랑을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님이란 아무나 마구 불러대는 것이 아니라 님이라는 절대명제에 대한 완벽한 귀의의 넋을 가질 때의 절실한 의식(儀式)으로서 높여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면 어떤 사랑하는 대상의 존엄성도 타락해 버린다는 무서운 위기의식이 여기에서 발견된다.

다만 그의 시는 너무 많은 말을 하려 하는 폭발력이 그가 설정한 침묵을 와해할 염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님의 침묵」은 한용운이 민족 또는 보살의 명제를 민족정서로 승화시켰다는 위대성을 허물어뜨릴 수 없다. 한용운은 한없이 존경하고 싶고 한없이 싫어하고 싶은 그런 묘유(妙有)의 애매모호성을 오늘의 우리에게 공급하고 있다. 만해! 내가 연꽃 한 가지 들었다. 달조각이나 돌팔매로 던져 내 앞에 부숴라!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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