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무전제(絶對無前提)의 참사람
모든 중생은 의지처가 있어야 생활이 가능합니다. 육지나 바다 또는 바위틈이라도 둥지를 틀고 몸을 의탁할 공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단지 공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나 아닌 모든 다른 존재자에 의해서만 생존이 가능합니다. 당신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은 아무것에도 의탁하지 않고 늘 그렇게 계시는군요. 당신은 부모에게도, 유일신에게도, 자신에게도 몸을 의탁함이 없이 송두리째 당신을 드러내놓고 그렇게 홀로 서 계시는군요. 그러기에「바라문」이「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때「나는 하늘에도 땅에도 의존하지 않고 홀로 이렇게 섰다.」고 답하셨습니다.
삶에는 원리가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하며 도덕도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자연의 법칙과 질서를 말씀하셨고 도덕적 생활에 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은 아무 원리도 가진 바 없고 법칙이나 도덕에 구속된 바가 없이 늘 자재(自在)하시는군요. 그래서 당신은 말씀하시기를「정해진 법이 없다.」고 하셨고「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곧 불법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존재자들은 궁극적 존재 또는 실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제1원인에 전혀 마음쓰지 않고 목마르게 찾지도 않고 그렇게 웃고 서 계시는군요. 목마름이 다하셨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당신 스스로가 제1원인이 되셨기 때문입니까? 당신은 아마도 답하실 것입니다.「네가 지어낸 생각에 스스로 갇히지 말라.」고.
중생은 죄에 괴로워하고 불안에 괴로워하고 죽음과 전쟁에 괴로워합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괴로움에 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 속에서는 괴로움을 전혀 볼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모든 중생이 앓고 있는「괴로움의 병」을 못 본체 하시기 때문일까요. 아니겠지요. 당신은 모든 중생의 근원적 병을 끝까지 알아서 더 이상 앓을 병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만이 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완전한 건강을 되찾은 분임을 나는 믿습니다. 슬픈 자에게는 같이 슬퍼하는 자가 위로가 되며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같이 괴로워하는 자가 의지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인 위안이며 의지입니다. 똑같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완전한 건강이기에 당신만이 나의 희망이며 환희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 합니다. 인간의 삶은 마침내 심연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끝없는 심연에 나의 약한 심장은 떨리고 두렵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깊고 깊은 심연을 꿰뚫고 지나 그렇게 웃고 계시는군요.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만 나는 두렵지 아니합니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 할수록 더욱 깊이 빠지듯이 나는 줄곧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보자마자 나는 두렵지 아니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마자 심연에 서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배웠습니다.
물을 두려워하지 않자마자 저의 몸이 가볍게 떠서 물 위를 헤엄칠 수 있었고 숨쉴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면서 물 위를 몇 번인가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동안에 어느새 나의 발이 땅 위에 내려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거기 그렇게 서서 웃고 있는 것을 고마워합니다. 당신의 서두르지 않는 부동의 모습이 참 좋습니다. 밧줄을 나에게 던지지 않은 것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배를 저어 나에게 달려오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두려움과 허덕임 속에서 구원되는 것보다는 두려움 없이 죽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바라보자마자 두려움이 없어짐은 물론 죽을 수도 없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참으로 좋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거기 그렇게 웃고 서 계십시오. 당신이 거기 계시므로 저는 그곳을 향해서 가려는 의욕이 샘솟고 기쁨과 희망이 용솟음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산이 구름을 쫓아다닐 수야 없는 일이지요. 구름이 태산을 맴돌므로 풍취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열 가지 거룩한 이름을 중생으로부터 받았지만 그까짓 이름이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제나 힘이 약한 자가 이름만이라도 크게 가지려고 하는 것이지 온전한 능력을 갖춘 자는 아무 이름이라도 좋은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이 아름다워서 당신에게 귀의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은 아무 것에도 규정된 자가 아니며 만들어진 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존재」라는 말도「진리」라는 말도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당신은「있고」「없음」에 상관이 없고「진리」에 구속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 그렇게 완전히 건강한 인간으로 웃고 있을 뿐입니다.
창조라는 허울좋은 말속에 한없는 고뇌를 지어나가는 그런 일이 당신에게는 없습니다. 모든 움직임은 구속의 원인이 되는데 당신의 행위만이 자유가 됩니다. 당신은 천사를 만들지 않았으므로 악마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에는 아무도 다툴 수 없고 고집 피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존재에 앞선 자이며 시간에 앞선 자입니다. 아니 앞서지도 않았고 뒤서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그 무엇」에 제약된 자가 아니며「그 무엇」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존재가 아니므로 비(非)존재도 아닙니다. 당신은 진리가 아니므로 비(非)진리도 아닙니다. 당신은 긍정이 아니므로 부정도 아닙니다.
당신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당신 그대로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이지 못하고 늘 퇴색하고 변형하며 변질하는데 당신은 늘 그대로입니다. 당신은 주체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주체로서 삽니다. 아직 주체성을 찾고 있는 동안은 주체로서 살고 있지 못합니다. 당신은「내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당신 자신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며, 해탈이며, 해탈지견(解脫知見)입니다. 당신이 진리인 것은 아무 진리도 소유한 바가 없기 때문이고 당신이 길인 것은 아무 길도 새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며 당신이 생명인 것은 아무것도 전제하지 않은 절대무전제(絶對無前提) 무의존(無依存)의「참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 그대로인 것은 당신을 당신이라고 내세울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인 것은 당신이 천상천하 절대무아(絶對無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생명을 바쳐 귀의(歸依)할 건덕지나 자취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래시여! 여래시여! 불가사의한 참사람이시여! 당신만이 당신을 위하여 변호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나로 하여금 당신의 뜻대로 말하고 노래하며 환희 하면서 춤추게 하소서.
당신의 말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 육도사생(六道四生)의 모든 중생에게 울려 퍼집니다. 아무리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양심을 깊이 잠재우려 해도 당신의 음성을 피할 수가 없군요. 당신의 노래는 곡조도 없고 박자도 없고 장단도 없는데도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기쁘게 합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어떻게 당신의 말과 노래가 흘러 나오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몰라도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들려오는 당신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음을 점차 느끼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못 본체할 수가 없고, 못 들은 체 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데도 나는 당신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도 당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선택된 자가 아니요, 단지 당신이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당신의 노래에 맞추어 춤추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도 어리고 무력합니다. 손과 발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그저 마음만이 간절합니다. 이제 차츰 자라서 어른이 된 다음이라도 부디 마음만은 어리디 어리게 지닐 수 있게 하소서.
(南無大慈大悲無碍自在 不可思議解脫法王 釋迦牟尼佛)
여래시여 불가사의한 참사람이시여
- 관리자
- 승인 2009.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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