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예술의 향취로 가득한 도시, 영화가 탄생한 도시, 그리고 거리마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도시. 낭만과 품위, 역사와 자유가 느껴지는 단어들로 온갖 찬사를 받는 매력적인 도시 프랑스 파리는 그곳에 가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환상을 준다. 일찍이 오스망화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도심개발을 통해 파리는 대도시가 상징하는 모더니티를 획득했었고, 만국박람회를 통해 볼거리 있는 도시로서의 면모를 다져왔다. 파리는 이미 세계의 중심이었고 문화적으로 크나큰 충만함을 누려온 것이다.
2008년의 파리는 여전히 과거의 시간을 품고 있는 수많은 건물과 유적들, 그리고 그 안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시선을 주고 받는 중이다.
역사의 격변을 온몸으로 받다 - 루브르 박물관
한편에서는 문화를 상품으로 보는 것을 저급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예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문화재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들을 펼치는 파리는 문화를 팔아 먹고 사는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와 유산의 규모를 차치하고서라도 보는 행위로 점철된 박물관은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일 수밖에 없다. 무수히 많은 박물관 중에서도 프랑스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 그리고 퐁피두 센터는 소장품 리스트는 물론 미술관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역사와 에피소드들을 품고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자 소설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루브르 박물관은 건물의 크기는 물론 소장품의 규모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전시된 작품들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일주일은 소요해야 할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13세기 초 파리의 수호 성곽 바깥에 지어진 이후 장장 800년간 역사의 격변을 고스란히 체화한 루브르는 1793년 국민의회의 결정에 따라 박물관으로 변신하였다.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주도한 ‘그랑 루브르’ 계획은 다시 한번 루브르 박물관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리슐리외관 개관과 1983년에 시작해 1989년 완공된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를 완벽한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빡빡한 일정 속에서 알려진 작품들만이라도 제대로 감상하려면 아무래도 철저한 예습이 필요하다. 공간에 대한 탁월한 지각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작품을 감상하다가 방대한 크기의 박물관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전시관은 크게 드농, 쉴리, 리슐리외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다.
드농관에는 고전기 이전의 그리스 유물, 고대 에트루리아 고미술, 11~19세기 이태리 및 스페인 조각, 17~19세기 북유럽 조각, 프랑스 회화 대작과 스페인·이태리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2층의 프랑스 회화 대작 전시관은 어마어마한 그림의 크기만으로도 압도감을 느낄 수 있으며 한 편 한 편 감상을 하다보면 하나의 그림이 아닌 거대한 우주를 목격하는 기분이 든다. 드농관의 최고 인기 코너인 다빈치의 모나리자 역시 결코 빼놓아서는 안될 코스! 단, 생각보다 너무 작은 그림의 크기에 놀라지 말고 방탄 유리로도 모자라 일정 간격 이상으로 접근을 차단한 바리케이드 앞에 포진한 방문자들의 수에 미리 관람을 포기하지 마시길.
고대 이란과 근동 제국, 이집트 테마별 관람코스가 있는 쉴리관에서는 중세의 루브르 역사를 직접 볼 수 있는 중세의 루브르 전시 섹션을 추천하며, 3층에 전시되어 있는 앵그르의 ‘터키탕’, 코로의 ‘모르트퐁텐느의 추억’, 뒤러의 ‘자화상’ 등의 작품은 미리 체크해서 관람하길 권한다.
이슬람 미술, 15~16세기 네덜란드 및 독일 회화, 17세기 플랑드르 회화, 14~17세기 프랑스 회화, 15~18세기 프랑스 조각, 메소포타미아 시대 유물, 17세기 공예품, 나폴레옹 3세 아파트 등이 전시된 리슐리외관에서는 단연 루벤스 전시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의 일생을 주제로 한 24점의 그림은 리슐리외관이 개관하면서 온전히 모든 작품이 한 공간에서 전시될 수 있었다. 그림이 그려지게 된 파란만장한 역사적 배경만큼이나 루벤스가 그린 작품들 역시 수차례의 부침을 겪어야 했는데,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작품에 더해져 관객을 끄는 묘한 매력이 되었다.
뚫어져라 그림을 감상했건 안 했건 이 넓디 넓은 루브르 박물관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손으로 다리를 두드릴 만큼 근육통이 스멀스멀 찾아올 것이다. 사실 그림을 잘 모르거나 그림에 큰 흥미가 없다면 이 귀중한 회화들은 모두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루브르는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이곳에 새겨진 역사와 시간을 되새겨 보면 그저 여기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예술의 향취와 사색을 좀 더 느끼고 싶다면 피라미드 앞 광장으로 이어진 길을 거닐어 보자.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밀로의 비너스도 없지만 조그만 돌멩이가 깔린 그 길 역시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공간이며, 여전히 자본의 힘이 문화의 가치에 우선하는 한심스러운 회색 도시에 살고 있는 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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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균민 _ 동국대학교 영화과 대학원 수료, 영화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The DVD, K-bench, 무비위크 등에 영화칼럼을 기고했으며, 현재 전주국제영화제 해외영화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