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직장 기풍 조성의 주역
어느 직장에서든 불자(拂子)는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여야 한다.
직장에는 공식적 조직이 있다. 거기에는 각급 책임자가 배치되어 있고 하위자는 상급자의 지휘 감독 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장에서의 지도력은 조직표상의 상위자가 발휘하는 것이며, 하급자는 어느 때이고 그 지도력을 행사할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기가 쉽다.
그러나 실지로는 그렇지 아니하다. 직장에는 공식적 조직 말고 비공식적 조직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지역적 인연이나 학벌적 관념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조직도 물론 있기는 있지만, 이러한 것은 비공식적 조직이면서도 눈에 띄는 조직인 까닭에 어느 면에서 보면 사실상의 공식화된 조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눈에 띄지 아니함은 물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되지 아니 하는 세력이 있으니 그것은 분위기의 조성자이다. 어느 직장에고 가보면 제3자에게 느껴지는 어떤 기풍이 있게 마련이다. 「앤더스」이라는 경영학자의 지적처럼 경영관리는 기법이라기보다는 경영자의 태도이고 더 나아가서는 철학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경영자의 인생 철학이 그대도 나타난 것이 그 기업의 기풍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직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이는 최고 경영자이라는 말에 아무도 다투려 하지 아니 할 것이다.
그러나 최고 경영자는 결코 고립되어서 존재하거나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기업의 기풍이야말로 그 기업 최고 경영자의 얼굴이므로 기풍의 좋고 나쁨이 그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인간은 모두가 인과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영자가 그 직장을 좌우하듯이 그 직장의 모든 사람은 경영자를 좌우한다. 경영자의 심리 현상은 경영자 개인의 것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실은 그로 하여금 그러한 심리 작용을 일으키게 한 동기는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모든 조직원들이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기업의 기둥이 경영 책임자의 얼굴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경영 책임자의 정신적 상항은 곧 모든 종업원들의 얼굴인 것이다. 직장은 이와 같이 서로가 원인을 조성하면서 서로가 함께 그 결과 속에서 지내게 되는 공업(共業)의 현장인 것이다
②拂子(불자)는 직장의 지도자
불자가 직장에 있을 때 그의 지위가 조직표상의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그가 바로 직장의 지도자인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불법(佛法)을 모르는 사람의 생활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생활이다. 불법을 배우지 아니한 모든 사람의 언동(言動)은 그의 생활 조건 또는 객관 정세가 마련하는 제반 사항들에 의한 반사적 작용에 지나지 아니 한 것이다. 일차 방정식과 같은 인과 관계가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다.
「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니, 이것이 없는」, 가장 원시적 의미의 인연과 결과 속에서 우리 동포들은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념에 의하면 행복한 생활의 보장은 반드시 그의 생활, 환경의 지배 하에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사는 삶, 이것이 불법(佛法) 문중(門中)에 들어오지 아니 한 우리 형제들의 현상이다. 그러한 까닭에 그들은 무슨 일이고 안 된 일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남에게 있다는 착각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불화(不和)를 낳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불화의 해결은 물리적 방법밖에 없다. 그러므로 힘 강한 쪽이 힘 약한 자들을 극도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한 속에서 평화가 있는 듯 보이는 것은 평화를 가장한 굴종일 뿐이다. 이 위장된 굴종은 잠재된 반격의 위험속에 있는 것인 까닭에 불신(不信)이 가득한, 적의에 찬 동거(同居)가 결코 단합일 수 없고, 단합이 이룩되지 아니한 가운데서 경제적 의미의 능률을 결과 짓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능률은 화합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합은 책임 전가(傳家)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합은 상호 존중 속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상호 존중은 적대감정을 결코 용납하지 아니 하는 까닭이다.
상호(相互) 존중이라는 말은 사실은 자기 존중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기 존중은 환경에 의한 예속으로부터의 자주 독립이 바로 그것이다. 객관 세계가 나의 행(幸)·불행(不幸)을 지배할 권능을 가졌다고 보는 착각을 과감하게 부정하여야 한다. 객관은 곧 나의 마음의 반영일지언정 나에게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되지 아니한 사람끼리의 만남은 상대방에 대한 살의(殺意)를 숨긴 채로 웃음을 띠고 있는 위선적 행위밖에 안 된다.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또는 종업원들 서로 서로가 이와 같은 마음 자세로 한 직장에서 일하며 살아갈 때, 그곳이 바로 지옥일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
③직장을 불국토로
이러한 지옥을 기쁨의 세계로 바꾸어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대답은 명확하다.
이 성스러운 일의 사명은 직장의 불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 완수의 방법은 「바라밀」행(行)이다. 어느 직장에 참다운 신심으로 불타고 있는 불자가 하나라도 있을 때에는 그는 바로 직장을 지옥으로부터 구해내는 지도자이다. 법화경 보문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백천만억 중생이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 등 보배를 구하고자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가령 폭풍이 불어 그들이 탄 배가 나찰들의 나라로 표착했더라도 그중에 혹 한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일컫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다 나찰의 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나니, 이런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이라 하느니라.」
직장에 있는 불자의 직위가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그가 있는 그 자리는 바로 관세음 보살이 일체 중생을 지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계신 성스러운 현장이다. 우리 불자는 五관(官)에 비추어진 현상에 끄달려서 그것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면서 一희(喜)一비(悲)할 것이 아니라 불(佛)보살이 중생을 섭수하시는 무한 자비의 거룩한 바라밀의 현장을 관(觀)하여야 한다.
내 마음이 바뀔 때 세계가 바뀐다는 진리를 터럭만큼도 의심치 말고 자기가 소속된 직장의 불국토화(佛國土花)의 성스러운 사명 완수가 곧 자기의 생명 가치 실현이라고 믿자. 불자가 광명에 찬 근무를 하는 곳에 모든 동료들의 괴로움이 쉬게 되고 불자에게 창조를 위한 신념이 가득할 때, 그 직장은 확신에 찬 경영 풍토가 나타날 것이고, 불자가 자애 넘친 얼굴 빛을 띠우고 사랑에 찬 말을 하고 남들을 따뜻이 대하여주는 몸가짐을 가질 때 그 직장에는 명랑하고 활기에 찬 분위기가 넘쳐 흘러 경제적 능률은 스스로 향상된다.
직장의 불자들은 지도자로서의사명, 즉 보살의 행원(行願)을 게을리 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