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에 관한 48장] 자아강화법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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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에 관한 48장] 자아강화법 17
  • 김종해
  • 승인 2008.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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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神健康에 관한 48章(17

第46品 佛淨土. 佛菩薩

정신건강을 위한 48手〔技法〕을 말하매, 꾀 많은 것들이 이미 2중 아닌 다중으로 겹치고 되풀이 됨을 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떤한 명제에 접근함에 있어서 무문관(無門關‥Gateless) 이고 일념 삼천(一念三千)이니 말이다.

더구나 기법(技法)이 진행 될수록 중첩(重疊)의 도(度)가 가속화(加速化)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마치 나선형 진행의 정점(頂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다 나타나는 것인가 한다.

이 점 중요하고 아직 잘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것은 그 자체로도 미급할뿐더러 더욱이 저자의 능력의 미흡으로 그럴 것이 더 많을테니 현명한 독자들의 많은 깨우침을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지금 이 제 46품만 하더라도 제목이 다르지,아니 제목에 달 부제(副題)도 저자의 생각에는 바로 앞 장에 나온 원효대사의 Rhetoric(수석)인 무량장엄(無量莊嚴). 무량보(無量報)인데 다시 또 달기가 민망해서 안 달았을 따름이다.

따라서 앞 부분의 보충, 보완일 수도 있고 그의 중복일 수도 있다. 단 미해결의 문제로, 유성기 소리처럼 되풀이해서 그대로 또는 변장(Disguise)해서 되풀이, 되풀이 나오는 Streotypy이니 이 점 저자의 미해결의 문제 말하자면 무명(無明)을 현명(賢明)한 독자께서 살펴주시기바란다.

우리가 뭔가와 만날 때, 곧잘 대립의식을 가진다. 분별식(分別識)이다. 그래서 너는 너고나는 나다 하여 곧 공격 아니면 방어적으로 되기 쉽다. 그래서 하염 없는 악순환 윤회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이 때 이러한 악순환 윤회를 끊는 불보살은다름 아니라 다가오는 대립자를 결코 남이 아니라고 여겨져서 라는 것이다.

아니, 자기가 아닌데, 자기와 아무런 관계가없는 것이 내게 보일 리도 없고, 틀릴 리도 없고 또한 맡히고 맛히고 그리고 스칠 일이 없는것이다. 또한 알음알이 될 리도 없고, 다시 느끼고 생각키고 그리고 단행킬 이가 없는 것이다.

이미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에 맡히고혀에 맛히고 그리고 살갗에 닿이면 그것은 바로나의 문제, 나이고 지각(知覺) 알음알이스러워지고, 느껴지고, 생각해지고 분석케 되면 그것은 바로 나의 문제, 나의 것, 그리고 나인 것이다. 그래 해후(邂逅)란 바로 자기 해후에서 그클라이맥스를 이룬다고 하지 않았다.여기 불보살에게는 그가 사는 곳 지역 환경이바로 나이고 그가 만나는 모든 대인관계가 자기의 몸뚱아리 살갗과 같이 바로 자기인 것이다.

어쩌다 떨어졌다가 만난 것이다.

자기 환경 속에 제 아무리 언잖은 것이 있더라고 그것은 바로 나의 그림자이고, 자기의 몸뚱아리나 다가오는 대인 관계 속에 제 아무리보기 싫은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바로 나라는것이다.

『오-라, 네가 바로 나로구나.』일 때, 지독한 분별이나 대립감으로 시달리던고생 중생의 구원되는 것이다.너, 나의 대립감이나 분별식이 떨어지고 나면뭔가 새로 지경(地境)이 열리어 한 단계 더 높은 데서 문제는 저절로 풀리어 인생은 한걸음더 나투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는 그에 다가오는 모든 대경(對境)이불정토(佛淨土)이고, 불정토에는 반드시 그곳의불보살이 계시는 것이다. 여기 만다라 장엄(莊嚴)과 보신불보살(報身佛菩薩)은 하나이자,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로 해서 내가 있는 공생(共生‥Symbiosis)의 관계이니, 바로 너, 나 할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자기에게 다가오는, 맞서는 모든 것이 자기이다.

 

第四十七品 佛眼·法界體性智

그래서 자기의 대경(對境)을 너, 나 않고 조용히 관조하면서 무분별(無分別)의 경지에서 쳐다보는 눈이 우리의 마지막 안목인 불안(佛眼)이고 그러한 무분별의 불안에서야 비로소 인간사리(事理)와 세상물정이 다 보이며 그로서 얻어지는 지혜가 인생의 진리, 우주의 법도인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인 것 불안(佛眼)과 법계성지로 생. 노. 병. 사(生老病死)하는 사람은이미 생. 노. 병. 사를 윤회하는 악순환으로 여겨지지 않고 생. 노. 병. 사 그대로 초탈(超脫‥Transcendency)이다. 한번 더 이야기하면 생로병사가 그대로 무애대자유(無碍大自由)인 것이다. 정말로 이 때 생노병사가, 고생(苦生)이 그대로 해탈 열반이니 이보다 더 위대한 독존(獨尊) 주존(主尊)은 없는 것이다. 이 불안(佛眼)·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에서 비로소 여타(餘他)의 4안(眼) · 4지(智)도 모두 나누어 제각기 안목(眼目)과 지혜의 구실을 다 하는 것이다.

오안(眼) · 오지(智)가 두루 사사무애(事事無碍)로 약동할 때 세상에 더 할 일이 있다.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오안. 오지가 제각기 다투기하면 육안은 지각운동의 成所作智 지혜를 획득하겠금 날카로워있고 천안(天眼)은 알음알이 지각(知覺) 묘관찰지(妙觀察智) 지혜를 획득하겠금『있는 그대로』로 비추어 보게 되고, 혜안감정(慧眼感情)은 직관 평등성지(直觀平等性智) 지혜를 얻겠금 『참신하고 공명(共鳴) 되겠금 무색투명 내지 허공장(虛空藏)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思考)법안(法眼)은 대목경지사고지(大目鏡智思考智)가 획득하겠금 「심. 려. 사. 찰(深慮査察)」하고마지막 불안(佛眼) 단행(斷行)은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 우주의 진리가 획득하겠금 「확고신속(確固迅速)」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안(眼). 五지(智)로 서로 사사무애(事事無碍)하여 한 안목(眼目), 지혜 속에 여타의 네 가지 안목 지혜(眼目智慧)가 다와서 스며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불교(佛敎)는 1지(一智)가 2덕(二德‥지혜〈智慧〉). 3학(三學‥계 · 정 · 혜〈戒定. 慧〉). 4제(四諦). 5력(五力). 6파라밀(六波羅密). 8정도(八正道). 12인연(十二因緣)으로 전개되되, 그 근원은 불안(佛眼).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의 일지(一智)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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