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산(經山) 보인(寶印) 선사
효종(孝宗) 황제가 경산(經山)의 보인(寶印)선가를 선덕전(選德殿)으로 청하여 대담하였다. 황제가 말하였다.
「유'불'선 삼교(三敎)의 성인이 이르시는 도리가 본대로 같은 것이 아니겠소이까?」
보인선가가 말하였다.
「그것은 비유하면 허공의 동서남북이 처음부터 둘이 없는 거와 같습니다.」
「다만 여러 성인이 세우시는 바 가르침의 문호가 각각 다른 것 뿐이지요. 공자는 중용(中庸)으로서 교를 널리 펴실려고 하셨습니다. 중용의 가르침이 아닌들 어떻게 세간을 바로 세우리까? 그러므로 화엄경에 이르기를 『세간의 상(相)을 허물지 아니하고 출세간의 법을 성취한다』하였으며 법화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다스리는 말이나 생활을 돕는 산업들이 모두 다 실상(實相)과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오늘날에 공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대개 문자만에 힘쓰고 공자의 도를 보지 않으니 어찌 공자의 마음을 알겠소이까?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문자로서 사람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곧바로 마음의 근원을 가르쳐 중생에게 열어 보이어 모두를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수승하옵니다.」
「그점은 한갖 오늘의 학자들이 공자의 도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자 당시의 십철(十哲)이라는 분들이 다 그러하였습니다. 안자(顔子)와 같이 공자의 도의 본체를 알았다고 이르는 사람도 그의 평생의 역량을 다하여서도 다만 『이것을 보고저 하니 앞에 있는가 하면 홀연히 뒤에 있으니 서는 바가 훤출히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었을 뿐 마침내 그 도리를 분명하게 잡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자가 분명하게 모든 제자 앞에 털어놓기를 『그대들은 내가 숨기고서 말하지 않은 듯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숨긴 것이 없다. 내가 행하는 것으로써 하나도 그대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으로써 보건대 공자는 일찌기 한번도 그 제자들을 회피한 바가 없건만 제자들이 스스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 옛날 장상영(張商英)승상이 말하기를 『내가 불법을 배우고 나서 비로소 능히 유교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짐의 뜻도 그와 같습니다. 선사여, 노자나 장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노장(老莊)은 다만 불교 중의 소승(小乘) 성문(聲聞)이 된 사람입니다. 소승은 몸을 싫어하기를 질곡(桎梏)과 같이 여기며 지혜를 멀리하기를 잡독(雜毒)과 같이 하며 불로 몸을 사루고 함이 없는 경계에 들어갑니다. 장자가 말하는 바 형상은 바로 마른 나무와 같이 하여야 하며 마음은 참으로 탄 재와 같이 한 거와 같습니다.」
이에 황제도 기뻐하였다.
2. 현사(玄沙) 비(備) 선사
현사 비선사는 복주(福州) 사람이다. 성은 사(謝)씨다. 젊어서는 남대강(南臺江)에서 낚시질하기를 좋아하였다. 하루는 문득 생각하는 바 있어 배를 버리고 출가하였다. 낡은 미투리에 흰 누더기, 그리고 먹는 것이란 근근히 목숨을 이을 정도로 하고 매일 참선으로 밤낮을 이어갔다. 그래서 설봉(雪峯) 선사가 이를 보고 말하기를 「비두타(備頭陀)는 전생에 수행하던 재래인(再來人)이요. 어째서 널리 선지식을 찾지 않고 앉아만 있소 」하였다. 선사는 말하기를 「일찌기 달마가 동토에 오지 않았으며 이조(二組)가 서천으로 가지 않았습니다」하니 설봉선사도 그 말을 옳다 하였다.
뒤에 비선사는 현사에 머물었다. 많은 대중들이 모여들어 드디어 큰 총림을 이루었다. 선사의 설법은 부처님의 경과 다 일치하였다. 그래서 제방에 공부하는 이가 그 뜻을 분명히 밝히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 와서 물었다.
대중에게 이르셨다.
「불도는 넓고 넓어서 한계가 없다. 삼제(三際-과거'현재'미래)에 있지 않으니 어찌 흥망이 있을까 보냐. 불법을 크게 일으킨다거나 어긴다거나 그런 조각에 속하지 않느니라. 동(動) 한다는 것은 곧 번뇌의 경계에 빠지는 것이며 정(靜)은 이것이 혼혼이 취한 경계에 빠져드는 것이고 동(動)도 정(靜)도 다 없이한 것은 공망(空亡)에 떨어진 것이고 동(動) 정(靜)을 함께 거두는 것은 곧 불성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찌하여 번뇌경계에 대하여 마른나무나 탄재와 같이 하랴. 다못 때를 다하여 마땅하게 응용하면 마치 거울에 모양을 비쳤을 때 그 빛이 어지럽지 않은 거와 같고 하늘에 새가 날라도 하늘빛이 어지럽지 않은 거와 같고 하늘에 새가 날라도 하늘빛이 어지럽지 않은 거와 같다. 그 까닭에 이르기를 「시방(十方)에 영상(影像)이 없고 삼계(三界)가 자취가 끊어졌으니 왕래의 기틀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또한 중간상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비유컨대 장사가 팔을 펴는데 남의 힘을 빌리지 않는거와 같다.
사자가 거닐으매 어찌 짝을 구하랴. 일단의 광명이 일찌기 어둡지 않으니 여기에 이르러서 본체는 적적하고 항상 환히 밝으며 불꽃같이 활활 타올라 그 갓이 없다. 원각광명 속에 동요하지 않으며 하늘 땅을 다 삼키고서 도리어 빛난다 하는 것이다.』
3. 문로공(文潞公)
문로공은 낙양(落陽)에 있을 때 한번은 용안사(龍安寺)에 가서 재를 올리고 부처님 성상을 예배하였다. 한번은 불전에 나아가 예배하려 하는데 성상이 허물어져 버렸다. 공은 이것을 보고 놀라 예경을 하지 않고 다만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침 곁에 한 스님이 공에게 말하였다.
「어찌해서 절을 하지 않습니까?」
「성상이 깨어졌는데 무엇을 향하여 절을 하겠습니까?」
「옛 성인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비유를 들면 마치 관인(官人)이 가는 길의 흙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몰래 그 길의 흙을 파서 형상을 만들었을 때 지혜있는 사람은 그 형상이 길의 흙인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범부들은 그런 줄 모르고 형상이 하나 생겼다고 합니다. 좀 있다가 관원(官員)이 길을 가고자 하여 앞서 만든 형상을 가져다 길을 메웠읍니다. 이에서 보니 형상은 본래로 난 바도 없고 없어진 바도 없으며 길도 또한 새 것도 묵은 것도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이 깨달았다. 그리고서 도를 사모하기 간절하였으며 힘써서 닦았다. 나이 90이 지나도록 아침 일찍 불전에 예배하고 밤 늦도록 좌선하기를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매일 발원하기를 「바라건대 내가 항상 정진하여 일체 선(善)을 힘써 닦아지이다. 바라건대 내가 심종(心宗)을 요달하여 널리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지이다」하였다.
4. 우(愚)법사
우법사는 가화(嘉禾) 사람이다. 유학을 버리고 출가하여 힘써 정진하기를 30년. 공부는 날로 진취가 있었으니 한번도 정진을 쉰적이 없었다.
일찌기 도잠(道潛) 칙장(則章)의 두 스님과 벗을 삼고 지냈는데 그중 도잠스님은 시를 잘 하였으며 세상명리에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칙장스님과 우법사 두 분은 스스로의 공부를 숨기고 이름을 감추며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런 중에 칙장스님이 먼저 죽었다. 우법사도 임종에 다달아 대중을 불러 말하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었소. 한 신인(神人)이 와서 말하기를 『당신과 함께 공부하던 칙장스님은 보현보살의 원행삼매(願行三昧)를 성취하여 이미 정토에 태어났소. 저분이 스님을 기다린지 오래되오. 어째서 늦장을 부리시요.』 하였는데 그때에 극락정토의 여러 거룩한 형상과 장엄이 모두 나타나 보이더라.」하고서 게송을 짓고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