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의 사상 : 선禪과 정신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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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선의 사상 : 선禪과 정신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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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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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의 思想

  一,

  정신치료란 넓은 의미로 본다면 정신적인 수단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신치료라고 말할 수 있다. 알란 왓쯔란 사람은 동양사상에 관한 저서(著書)가 십여권이나 되고 「禪의 길」이란 책도 쓴 사람이지만 「정신치료 동과 서」란 저서의 序頭에 동양의 종교는 서양의 개념으로 볼때 종교도 철학도 아니고 정신치료라고 갈파(喝破)하고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이도요병(以道療病)이란 대목에 정신치료의 실례(實例)를 기재하고 있다. 동양에서 道란 것은 서양의 개념으로서는 정신치료라고 볼 수 있다.

       二,

  동양의 도는 二五○○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마는 서양의 정신치료는 불과 七○여년의 역사밖에 안된다. 물론 원시적인 정신치료는 여기서는 문제를 삼지않으나, 가장 발달되고 깊은 정신치료는 정신분석치료이나 이것은 어느 사회 시대에나 있는 최면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의 최고형태의 정신치료인 정신분석은 첫째로 무의식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노이로제란 인격구조가 잘못되서 생기는 것이고 정신분석치료를 하면 치료자에게 어려서 부모형제나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전이(轉移)란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환자는 병을 고치겠다고 의식적으로는 노력하면서 무의식적으로는 진실,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병적인 습성을 고치지 않으려는 저항이란 현상이 있다는 것을 정신분석의 창조자인 프로이드는 발견했고 그는 전이와 저항을 다루는 정신치료는 정신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三,

  선과 정신치료를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볼 수가 있다. 선의 목표는 執着을 벗어나서 견성불이 목표라면 분석은 진정한 자기로 돌아간다. 자기 현실화 개인화 등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선에서 말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치료과정을 비교해보면 三六○度 도는 것이 같고 십우도(十牛圖)와 정신분석치료 과정의 記述이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치료자가 먼저 환자의 병의 원인이고 환자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支配하는 원인인 어려서 부모형제나 이의 대리자와의 관계에서는 풀리지 못한 핵심적감정을 이해해야되고 다음으로 이 감정을 환자자신에게 이해시키고 세 번째로 환자가 치료자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정신감정을 파악하고 다음으로 환자로 하여금 환자가 이러한 감정을 치료자에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다음으로는 환자로 하여금 이러한 감정을 이제는 억압을 하지않고 제어하고 치료자와 협력해서 이 감정을 감소시키는 말하자면 손지우손(損之又損)하는 것 만이 남는다. 이 분석치료 과정과 심우도(尋牛圖)를 비교하면 너무나 흡사하다.  尋年  見跡 見牛는 핵심적 감정의 이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고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騎牛), 귀가(歸家)는 핵심적 감정을 덮고 더는 과정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망우존인(芒牛存人), 인우구망(人牛具忘),  반본환원(返本還元)은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과정이고 입전전수는 치료자가 자기문제를 다른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 후에 환자치료에 나선다는 것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인연과 근기(根據)에 따라 치료하는 것도 공통이고 서양의 정신분석이나 선에서나, 가장 핵심적인 발견은 우리는 투사(投射)속에 살고 있고 수도나 정신분석의 궁극적 목표는 투사를 없애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불취외상(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라는 것이 핵심이고 공통이다.

  성숙된 치료자와 보살을 비교하면 상당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는 성숙된 분석자라도 정신병적인 동기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분석자 치료에 영향이 안가게한다. 선에서는 보살은 전식(傳識), 현식(現識), 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은 다 정화(淨化)가 되어 있지만은 업식(業識)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과 상통한다. 그리고 자각자라야만 覺他를 할 수 있다는 것과 분석자는 자신의 분석이 성숙되기 전에는 다른 환자를 분석할 수 없다는 것과 상통한다. 불자에서 불취중생상 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에 너는 중생이고 나는 보살이라는 생각을 않는다든지 내가 너를 치료해주고 있다는 용상(用相)을 내지 않는다는 점은 서양의 정신치료에서는 실존분석에서 가장 도에 강하다.

  정신치료의 궁극적인 목표가 선고 같다고 볼 수 있다. 막스 함마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정신치료가 최고 발달이 되면 동양의 명상(瞑想) 즉 도가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정신치료는 항상 치료자와 대면해서 치료자가 자상하게 지도를 해주지만은 선(禪)에서는 지도도 있지만은 자기자신이 혼자서 주로 해야한다. 선은 화두(話頭)를 들어 궁극적인 힘을 총동원하고 있으면 망상이 이힘에 부딪쳐서 녹아내리지만은 정신치료에서는 주로 망상자체를 분석한다. 정신치료는 이론 기술 말이 많지만 선은 이언절려(離言絶廬)를 강조한다. 정신치료는 신경증적인 병리적인 불안을 없앨수는 있지만 정상적인 실존적인 불안을 없앨수는 없으나 선은 생사지심(生死之心)을 타파함으로써 이 실존적 불안마저 없앤다. 정신분석은 주로 별업망견(別業妄見)을 없애는 것이고 약간 동분망견(同分妄見)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생사지심을 타파하는데 이르지 못한다. 선은 생사지심을 타파함으로서 眞如에 도달한다.

 

     四,

  정신치료자의 주장으로서 볼 때에는 오늘날 세계 정신분석 정신치료계를 볼것 같으면 정신치료자들이 극복해야될 문제는 이론과 실제에 관한 문제와 보살정신의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서양의 정신치료자나 서양의 정신치료를 빼는 동양의 정신치료자나 이론과 기술, 말로서 정신치료를 할려는 경향이 탈피 되어 있지 않다. 선에서 말하는 달과 손가락의 관계를 명확히 체득하고 있지 못하고 이언절려의 경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客年에 국제정신치료학회에서 「정신치료와 수도의 過程에 대한 워크샵을 하고 쮸리히의 융연구소(융학파의 정신분석연구소)에 들러서 소장과 두 번 만나서 대화한 가운데 그는 내 논문에서 보살정신이란 데 주목하고 융심리학에서는 그런 것은 없다. 타인은 모조리 지옥으로 가라는 것이 융심리학이라고 토로했다. 실존분석의 현존 최고 거두인 보스박사도 서양의 정신치료보다 도가 위에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보살정신이란 대단히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서양의 정신치료자가 보살정신에 가까운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참선을 지도하는 사람에도 보살정신이 희박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은 비교적 근기가 좋은 병이 가벼운 사람 건강한 사람에 통합하고 병이 있는 사람은 우선 정신치료를 잘 받아서 어느 정도 힘이 생긴뒤에 참선을 하거나 정신치료가 끝난뒤에 더 놓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하거나 비교적 건강한 사람은 병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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