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머리말
편집자로부터 참선하는데 필요한 교훈이 될 말을 청해왔다. 아마도 필자가 선방에서 늙었다는 점을 보아 집필이 배당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불행이도 천하대중에게 이렇게 참선해라. 또는 참선에는 이런 점을 경계하라는 등 큰 소리칠 형편이 못된다. 그저 묵묵히 화두와 더불어 늙어가는 것 뿐이다. 참선에 대한 교훈은 조사들의 말이 많다. 새로 내 말이 필요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하에 우리 선방에서 널리 의지하고 있는 조사어록 중에서 우선 박산무이(博山無異)선사의 선경어(禪警語)의 한토막을 초록하여 책임을 면해 보고자 한다.
② 박산선사 선경어 요출
(一) 공부를 짓되, 무엇보다 먼저 생사심을 파하도록 하여야 하니 모름지기 세계와 몸과 마음이 다 이것이 거짓이요 인연으로 엉긴 것이라 실로 주재성(主宰性)이 없는 것을 굳게 간파(看破)하여야 하느니라.
만일 본래 갖춘 바 큰 이치를 밝히지 못하면 생사심을 파하지 못할 것이요, 생사심을 파하지 못하였다면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생각생각마다 따라붙을 것이니 어떻게 이것을 쫓아버리랴. 오직 이러한 한 생각을 공부의 문을 두드리는 기와쪽으로 삼아야 하느니라. 그리하여 맹렬한 불꽃속에서 뛰어 나오고자 하는 것과 같이 한걸음도 헛되이 옮길 수 없고 한걸음도 멈출 수 없으며 한 생각도 딴 생각을 낼 수 없고 다른 사람이 구원하여 주기를 바랄 수도 없으니, 마땅히 이런 때를 당하여는 다못 맹렬한 불꽃도 돌아보지 않으며 신명도 돌아보지 않으며 사람이 와서 구원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다른 생각도 내지 않으며 잠깐동안도 머물러 있지 않고 곧바로 뛰어나와 불에서 뛰쳐나와야 이 사람이 참으로 살아나는 사람이니라.
(二) 공부를 짓되, 귀한 것은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 있나니 무엇을 의정이라고 할까? 저 나되(生)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니 알지 못하였으면 불가불 온 곳을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요, 죽되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 불가불 간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이와같이 생사 관문을 타파하지 못하였으면 문득 의정이 날 것이니 이 의정을 눈썹 위에 붙여두고 놓아도 떨어지지 않으며 쫓아도 또한 가지 않게 되면 홀연히 하루 아침에 이 의단(疑團)을 타파하게 되는 것이니 그때에 비로소 생 · 사 두글자가 이것이 허황한 것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니라.
(三) 공부를 짓되 고요한 경계를 탐착하는 것을 가장 삼가야 할지니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적(枯寂)한 데에서 더욱 곤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분주한 경계는 사람마다 싫어하고 고요한 경계는 사람들이 좋아하나, 수행하는 사람이 평소에 분주한 곳에 있다가 한번 고요한 경계에 들어가면 마치 한 곳에 있다가 한번 고요한 경계에 들어가면 마치 꿀이나 엿을 먹는 것과 같게 되어 곤하고 잠에 취하게 될 것이니 거기에 어떻게 도를 볼 수 있으랴.
(四) 공부를 짓되, 굳세고 곧은 줏대를 세워서 너무 인정에 끄달리지 말아야 하느리라. 인정에 치우치면 공부에 진취가 없을 것이니 다만 공부에 진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날이 가고 달이 가면 반드시 세속의 속물로 떨어지는 것이 틀림 없느니라.
공부를 짓는 사람은 머리를 들어도 하늘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을 보지 못하느니라.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요,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니라.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며 천사람 만사람 사이에 있더라도 한사람도 볼 수 없게 되어 온 몸 안팎이 다못 한 개 의단 뿐이니라. 이것이 공부하는데 긴요하니라.
(五) 공부를 짓되, 죽어서 살아나지 못할 것을 걱정하지 말고, 다만 살기만 하고 죽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여야 할지니 과연 의정을 한 곳에 매어 두었느냐가 요긴한 것이니라.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동하는 경계는 보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지고 망상심도 말기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맑아지리라. 육근문두(六根門頭)가 자연히 훤출히 비어 눈을 깜짝하면 곧 이르고 부르면 곧 대답할 것이니 어찌 살지 아니함을 근심하랴.
(六) 공부를 짓되 화두를 들거든 반드시 또렷하고 분명히 하여 마치 고양이가 쥐잡는 거와 같게 할지니라. 그렇지 아니한즉 마냥 귀신 굴 속에 들어앉아 혼혼침침(昏昏沈沈)하여 정신 없이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으랴.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는 두 눈을 부릅뜨고 네다리를 버티고서 다만 쥐를 잡아 입에 물고야 마나니 비록 곁에 닭이나 개가 있더라도 돌아보지 않느니라. 참선자도 다시 이와같아야 다만 분연히 이 이치를 밝혀내어야만 하나니 비록 팔풍(八風)이 닥쳐오더라도 결코 돌보지 않아야 하느리라. 만약 자칫 다른 생각이 있다면 다만 쥐 뿐만 아니라 고양이까지 잃어버리리라.
공부를 짓되, 고인의 공안에 망녕되어 해석을 붙이지 말아야 하니 만약 그렇게 하여 비록 그 모두를 알아버렸다 하더라도 자기 본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그 뿐만 아니라 고인의 말씀 하나하나는 큰 불무더기와 같아서 가까이 할 수도 없고 거느릴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하물며 어찌 그 가운데에 앉고 눕고 한다고 하랴. 다시 그 가운데에 이론을 세우고 분별한다면 신명을 잊어버리지 않는 자 거의 없느니라.
(七) 공부를 짓되, 기특한 문구나 좋은 글귀를 찾아 기억하고자 하지 말지니 이것은 다만 공부에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장애가 되어 도리어 망상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마음이 갈 곳을 끊고자 한들 어찌 이룰 수 있으랴.
(八) 공부를 짓되, 생각으로 짐작하는 것을 가장 피하여야 하니,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 머물러 따진다면 도(道)와는 더욱 멀어지니 설사 미륵불이 성불할 때까지 지어가더라도 아무 소용 없느니라. 만약 의정이 크게 일어난 사람이라면 은산철벽(銀山鐵壁)속에 앉아서 오직 살아나갈 길만을 찾아야 하나니 만약 살아서 길을 찾지 못하였다면 어찌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랴. 다만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가면 시절이 이르러 저절로 깨치게 되리라.
황벽(黃蘗)조사가 이르기를 「번뇌에서 벗어나는 일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니 마음고삐를 팽팽히 휘어잡고 한바탕 힘쓸지니라. 찬바람이 한차례 뼈 속에 사무치지 아니한들 어찌 매화가 코를 치는 향기를 얻으랴」하셨으니 이 말이 가장 친절한지라. 만약 이 게송을 가지고 시시로 경책하면 공부가 자연히 향상하리라.
공부를 짓되, 가장 요긴한 것은 「간절」이것이니라. 「간절」이 한마디가 가장 힘이 있으니 만약 간절하지 아니한즉 게으름이 생기고 게으름이 생긴즉 방종한 생각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되니라. 만약 참으로 간절하게 마음을 쓴다면 방일과 해태심이 무엇을 말미암아 생기랴. 마땅히 알라. 「간절절(切)」이 한자는 옛 도인이 이른 경계에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한 것 없게 하며 생사를 타파하지 못할 근심을 없게 하느니라.
(九) 공부를 짓되, 생각을 써서 시를 짓고 게송을 짓고 문장을 짓는 것을 가장 꺼리는 것이니, 말을 짓고 문장을 짓는 것을 가장 꺼리는 것이니, 만약 시를 지었다가 이것은 시승(詩僧)이라 할 것이요, 문장을 하였다면 이것은 문자승(文字僧)이라 할 것이니 마음공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느니라. 혹 역순(逆順)경계를 만나거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인연을 만나거든 곧 마땅히 깨달아 마음을 돌이켜 화두를 잡드려야 하니 경계와 인연에 끄달리지 않아야 하느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지니라. 마치 길가는 사람이 길 위에 앉아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린다면 마침내 집에는 이르지 못하나니 모름지기 앞으로 가야 집에 이르는 거와 같느니라.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린다면 마침내 깨닫지 못할 것이니 모름지기 몸부림치며 힘써서 깨닫도록 할 것이요 깨닫기를 기다려서 되지는 않느니라.
(一○) 공부를 짓되, 시끄러운 곳을 피하고 고요한 데를 찾아서 눈을 감고 마치 귀신굴 속에 주저앉아 살 궁리를 하는 거와 같이 하지 말지니라. 이것을 옛 도인들은 「검은 산 아래 죽은 물에 잠겼다고 한 것이니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으랴. 마땅히 경계와 인연 위에서 지어가야 비로소 힘을 얻게 되느니라. 화두를 잡드려 눈썹 위에 두고, 다닐 때나 앉을 때나 옷입고 밥먹을 때나 손님을 맞고 손님을 보낼 때나, 그 속에서 다만 이 일구(一句) 화두의 뜻을 밝혀 내도록 하여야만 하느니라. 하루 아침에 낮을 씻다가 코를 만지면 원래로 이 도리는 가장 가까운데 있음을 알리라.
공부를 짓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지니, 공부가 잘 안되거든 되도록 힘쓰면 이것이 바로 공부니라. 공부가 안된다 하여 퇴타하면 비록 백겁천생(百劫千生)을 지낸들 무엇이 될 것이 있으랴.
의정을 일으켜서 놓지 않는 것이 이것이 향상하는 길이니. 생. 사 두글자를 이마에 붙여두고 마치 호랑이에 쫓기는 거와 같이 달려갈지니, 만약 곧장 집으로 달음질쳐 오지 않으면 반드시 목숨을 잃을 것이니 어찌 잠깐인들 걸음을 멈추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