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화두는 禪의 수단
공안(公案)을 화두라고도 한다. 이 화두는 번뇌와 망성을 걸러내는 체요, 사량(思量)과 분별을 가려내는 조리다.
화두는 빛깔(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닿질림(觸)과 요량(法)인 육적(六賊)의 침범을 막아내는 수단의 화살이면서 아울러 것(色) 느낌(愛) 새김(想) 거님(行)과 알이(識)인 오온의 활동을 무찌르는 방편의 창끝이기도하다. 생사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道닦는 학인에게 화두가 가장 훌륭한 수단이요, 방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千七百 공안인 화두가 다 제각기 대로의 뜻길이 다를지라도 필경에는 「이 뭣고」로 맺어지는 말귀로서 그 말귀 밖에는 만고의 비밀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눈앞에 비치는 한포기의 풀잎이나 귓가를 스치는 한가닥의 소리에도 태고(太古)의 소식이 잠들지 않음이 감돌지 않음이 아니지마는 그러나 화두는 의심을 일으켜서 망상을 제거하고 되돌아 이미 일으킨 의심처를 풀어 헤치기 위하는 말귀라 하겠으니 바로 허공을 찢어내는 소리라 하겠다. 까닭에 여기에 많은 견문(見聞)과 지식을 갖추어서 비록 의지가충천(沖天)하는 사람이 있다손치더라도이 화두인 「이 뭣고」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이것은 한푼어치의 값어치도 안되는 건(乾)지혜인지라 대사(大事)는 결정짓지 못하는 것이다. 참으로 삼계의 화택을 벗어나기 위한 공부를 짓는데는 염불(念佛) 간경(看經) 기도(祈禱) 주송(呪誦)이 방편이기는 하나 화두를 수단으로 삼는 선(禪)은 방편중의 방편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방편인 선은 수단인 화두를 일념(一念)으로 순일(純一)하게 지닌다는 그 사실이 지극히 엄숙하면서 지극히 분명하고 지극히 정묵적(靜默的)이면서 지극히 독선(獨善)적이다. 지극히 엄숙하기에 스승을 섬기고, 지극히 분명하기에 집을 뛰쳐나고, 지극히 정묵적이기에 은정(銀情)을 끊고 지극히 독선적이기에 세연(世然)을 등지는 것이니 내일의 대성(大成)을 위하여 돌진하는 승가풍(僧家風)의 모습이다. 속세(俗世)와는 동떨어진 승가풍이니 이를 가리켜 몰인간성(沒人間性)이요, 몰사회성(沒社會性)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은정을 끊음은 뒷날의 그 은정으로 하여금 한가지로 생리도를 증득하기 위한 우선의 끊음이요, 세연을 등짐은 뒷날에 그 세연으로 더불어 같이 열반계로 이끌기 위한 우선의 등짐이란 의취(義趣)를 모르기 때문이지마는 실로 화두를 순일하게 가지는 데는 혈연을 향하여 눈을 돌리고 세간을 향하여 귀를 기우릴 틈도 없거니와 또한 있어서도 안됨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거사풍(居士風)은 그렇지가 않다. 人間性이기 때문에 가정을 꾸미고 사회성이기 때문에 세간을 가꾼다. 가정을 꾸미기 때문에 오늘을 살면서 내일의 안정을 걱정하고 세간을 가꾸기 때문에 오늘을 엮으면서 내일의 번영을 꾀하기위해 시간을 쏟는다. 이러히 시간을 쏟기 때문에 아무리 생사의 뿌리를 캐어내는 좋은 수단이요 방편이라 할지라도 二十四시간 모두가 가정을 꾸미고 세간을 가꿔야만 하는 거사풍으로서는 화두를 순일하게 지닌다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기 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② 대치법을 세워라
이럴진댄 무엇보다도 시간적으로 용납이 안된다하여서 생사문제의 해결을 포기함이란 옳을까! 안될말이다. 생사문제의 해결을 포기함이란 바로 안될말이다. 생사문제의 해결을 포기함이란 바로 인생을 포기함이니 도대체가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존재인가. 天下의 양약(良藥)도 몸에 해로우면 독약이요, 천하의 독약도 몸에 이로우면 양약이니 화두도 이와 같아야 그 분수에 따른 복력(福力)과 신념(信念), 지혜(智慧), 용맹(勇猛), 의단(疑團)과의 알맞은 조화가 이루어 진다면 즐거운 열반락을 증득하는 양약이 되려니와 만약 분수대로인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평생을 그르치는 독약밖에 안될것이니 이에 독을 독으로 다스리듯이 운명적인 거사풍이라 한탄하지 말고 이 시점(時點)에서 거성의 혓바닥에서 뛰어나온 화두는 도로 거성의 혓바닥을 향하여 되돌려 보내되 이에 대치법(代治法)을 과감히 세워야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무슨 뜻이냐 사회문물의 발달에 따라 생활면의 각 분야에는 분주하다. 이 분주한 생활선상(生活線上)에서 얽고 얽히인 人生인지라 화두를 순일하게 가질 수 없는 그 책임은 뉘라서 져야 하는가. 중생이 져야 한다. 내가 져야 한다. 필경에는 내가 져야 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대치법을 세우는 것이다.
대치법이란 이렇다. 연(緣)에 따르는 바깥 경계를 굴리고 또한 경계에 굴리이는 것은 실로 나의 無相身이 그 심기(心幾)의 느낌대로 무정물(無情物)인 색상신(色像身)을 걷어 잡고 행동으로 나툰다는 도리를 깊이 인식하고 「모순을 잘 굴리자」라는 말귀를 세워서 나아가자는 뜻이다. 去聖의 화두가 말귀인데 대치법도 말귀일진댄 무엇이 다른가. 말귀는 말귀이나 말귀로서는 같지 않은 말귀이니 그 말귀를 굴리는데는 따른 수단의 좌표가 다르고 그 수단의 좌표가 다르기 때문에 방편의 초점도 다르게 마련이다.
무슨 까닭으로써이냐. 예를 들어서 만약 핸들을 돌리고 귀를 트는데도 잘 돌리고 잘 틀어야 할 것이니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말귀와는 통하여서 그 실을 거두울 수가 있겠으나 화두가 순일하여서는 역시 잘 안될것이오, 주판(珠盤을 놓고 기장(記帳을 하는데도 잘 놓고 잘하여야 할것이니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말귀와는 통하여서 그 실을 거둘수가 있겠으나 화두가 순일하여서는 또한 잘 안될것이다. 사리가 이러하니 학인들은 거사풍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서 아침에는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뜻으로 세간에 뛰어들고, 낮에는 「모습을 잘 굴린다」라는 뜻으로 희열(喜悅)을 느끼고, 시간을 얻어서 앉을 때에는 「나는 모습을 잘 굴리는 무상신(無相身)이로다」라는 뜻으로 삼매에 잠길줄을 알면 이에 따라 깨친뒤의 수행도 또한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③ 모습을 잘 굴리라
물론 이와 같이 마음을 도사려 가다듬음이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리를 따져서 알아 믿으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법은 본래로 쉽다는 생각이 생기기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요, 어렵다는 생각이 생기기 때문에 쉽다는 생각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여서 법을 굴리려 할진댄 쉬운것은 쉬운대로 어려운 것은 어려운 대로 되돌린다면 필경에는 쉽지도 않기 때문에 어렵지도 않을 것이요, 어렵지도 않기 때문에 쉽지도 않을것이니 쉽고 어려움을 어디에서 찾으랴. 애오라지 이법은 깨친 앞이라 하여서 쉬운 것이 아니니 깨친뒤라 하여서 어려운 것도 아니요, 깨친뒤라 하여서 쉬운 것이 아니니 깨친 앞이라 하여서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그만그대로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말귀로 하여금 오전수행(悟前修行) 곧 「앞닦음」과 오후수행(悟後修行) 곧 「뒤닦음」을 한가지로 굴러가자는 것이다. 되돌아 보건대 이 대치법은 자타의 공덕을 이루는 수단도 되겠지마는 사회의 풍조(風潮)를 다스리는 방편도 될것이니 어찌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냐!
어즈버야! 이 도리는 화두가 아니면서 곧 화두요, 화두이면서 곧 화두가 아닌 「새말귀」라 이르겠으니 바로 가리사(家理社)를 안놓치고 도중사를 굴리고 도중사(途中社)를 굴리되 가리사를 안 놓치는 소식이라 하겠다.
이렇듯이 하나인 목적을 향하여 하나인 사면을 다하는 데도 그 수단과 그 방편이 그 때와 그곳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그 이유로는 무엇인가 승가풍에서는 그 학인으로 하여금 슬기를 살피고 신념과 정진력을 참작하여서 화두를 주는 것이 상례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마는 거사풍으로서의 대치법은 첫째 설법을 통하여 일체만법인 상대성은 본래로 홀연독존(忽然獨尊)인 절대성의 굴림새라는 그 사실을 학인에게 이론적으로 깨우치고, 둘째 학인들은 반드시 무상법신(無相法身)이 유상생식(有相色身)을 굴린다는 그 사실은 실질적으로 파악한 다음에 화두를 지님이 규범적인 특징이라 하겠으니 저절로 그 수단과 그 방편은 동(動)과 정(靜)으로 승(僧)과 속(俗)으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동정의 앞소식이 하나요. 승속의 앞소식이 둘 아닌바에야 승가풍은 승가풍대로의 좋은 숭가풍이요, 거사풍은 거사풍대로의 좋은 거사풍일터이니 다만 그 때를 알맞게 맞아 들이고 그 곳을 알맞게 살피면 식(識)이 멸(滅)하고 정(情)이 절(絶)할새 진불(眞佛)이 현전(現前)할 것이어늘 무삼일로 고금(古今)의 수단과 방편을 정법인양 여겨서 권(權)과 실(實)을 맞세우고 진(眞과 가假()를 견주며 오늘의 불행을 탓하고 내일의 광명을 얻는데 인색하랴.
거사풍인 학인들이여!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일념으로 무상신임을 돈증(頓證)하면 만겁의 공덕장(功德藏)을 성취하리니 그 때를 기다려 동해수(洞海水)를 일구(一口)로 흡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