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의실] 22.보현행원품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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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강의실] 22.보현행원품강의
  • 광덕 스님
  • 승인 2007.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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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강의실

 15. 거두는 말

  수순중생장을 거두면서 한말만 더하겠다.

  중생이 원래로 나 밖에 있는 중생이 아니요 내 자성의 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거듭 명념하여야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은 자성분별이라고 해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을 받들고 수순하며 공양한다는 것은 남을 받들고 공양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실로는 자기공양이며 자기성숙이며 자기성장이다. 수순하다는 것은 원래로 저의 이익을 내가 이룩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자타가 둘이 아니며, 참자기에 있어서는 자타가 원융하며 그 사이를 분별할 수 없는 청정한 자성 만이 있는 것이다. 자타가 없고 모두가 한 생명 속에 화합하고 기뻐하고 협동하고 성장하는 것이 이것이 수순인 것이니 앞서부터 [수순은 자성청정의 실현]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보살이 이와같이 중생을 알고 이와같이 수순을 배우는데서 중생은 성숙되고 보살을 최상공양을 행하는 것이 되고 우리의 주위환경 내지 세계와 진리가 원만히 실현된 청정불국이 되는 것이다.

  보살이 수순을 배우므로써 이 세상 천지만물과 더불어 화합하고 협동하며 기쁨을 함께 한다. 보살이 수순을 배우므로 온 세상 누구와도 결코 대립하거나 불화불목하거나 투쟁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궁핍에서 벗어나 평화하고 풍요하고 청정한 생활과 국가사회를 이룩하자면 이점에서 특별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능력을 개발하고 투쟁력을 강화한다고 사회의 발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투쟁은 마찰이고 개인적 사회적 손실이다. 서로 돕고 상대를 위해주는 것으로 자기성취를 삼는 수순의 정신이 인간을 무한대로 확대시키고 숨은 능력을 발휘하며 평화 번영의 국토가 이룩되는 것이다. 경쟁은 대립적 경쟁이 아니라 이웃과 대중을 받들고 수순하여 최대의 자비 봉사를 하는 것으로 표적을 삼아야 한다. 여기에 어찌 투쟁이 있을 것인가? 오직 우애, 협동, 번영, 환희 만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참된 자기를 배반하고 자기와 사회를 불행으로 몰고가는 이기주의적 경쟁 대립 투쟁의식을 없애야 하겠다. 우리 모두는 수순을 배우는 보살이 되어 이땅에 보살도의 성취와 보살국의 영광을 구현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제十一 회향(回向)장

  [대문]

  선남자여, 또한 지은 공덕을 널리 회향한다는 것은, 처음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으로부터 중생을 수순하는 것까지의 모든 공덕을 진법계 허공계 일체중생에게 남김없이 회향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항상 안락하고 일체병고는 영영 없기를 원하며 악한 일을 하고자 하면 하나도 됨이 없고 착한업을 닦고자 하면 다 속히 성취하여 일체 악취의 문은 닫아버리고 인간에나 천상에나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을 열어 보이며 모든 중생이 그 지어 쌓은 모든 악업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일체의 극중한 고보는 내가 다 대신 받아서 저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해탈케 하여 마침내 무상보리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와같이 그 닦은 공덕을 회향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나의 이 회향은 다하지 아니하여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이 없되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1. 회향이 무엇인가

  위에서 모든 부처님을 예경하는 것으로부터 많은 청정행원을 보아왔다. 예경하고 찬탙하고 공양하고 참회하며 내지 순수에 이르는 행들은 보살이 영원한 생명의 행임을 말했다. 그런데 이와같은 광대한 행원이 비록 순수 무잡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 행이 자기중심의 판단이기 쉽고 또한 행원의 목적을 장차 얻을 공덕에 관심하기 쉽다. 따라서 행원의 행 하나하나를 성실히 행하면서도 그것이 자기수행을 위해서 한다거나 커다란 공덕을 바라고 한다거나 자기 견해에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도 행원은 청정 본연의 자성을 운전하는 것이며 그것을 구체적 현실 위에 구현하는 것이므로 그 성격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의 행이 이와같은 구극 완전 무한의 실현으로 보장하는데는 하나의 필수적인 장치가 있으니 바로 회향이다.

  회향은 미소를 극대로 토하게 한다. 유한을 무한으로 통하게 한다. 유위(有爲)를 실성(實性)으로 바꾸게 한다. 상대적 공덕을 무한공덕으로 바꾸게 한다. 말하자면 적은 것을 큰 것으로, 한정된 것을 무한의 것으로, 속성적인 것을 전성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회향이 있으므로 해서 보살의 모든 행은 행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회향은 지극히 지혜로운 보살도 성취의 미묘한 장치인 것이니 우리는 이 회향의 의미를 깊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2. 회향하는 방법

  경에는 보살이 지은 바 모든 공덕을 [진법계 허공계 일체중생에게 남김 없이 회향]한다 하였다. 피를 빼고 뼈를 부수며 고행하여 무한검토록 닦아 이룩한 큰 공덕을 그 모두를 자기라 하는 한계 속에 묶어두지 않는 것이다. 일체중생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내가 지은 공덕을 불보살님의 영광에 돌릴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기를 위하는 부모나 형제나 스승이나 이웃에게 돌리며 자기를 어기고 세간까지 어지럽힌 모든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다. 목숨바쳐 이룩한 공덕의 그 모두를 돌려주되 자기를 해코자하고 자기를 고통속으로 몰아 넣은 사람에게까지 평등하게 돌린다는 것은 이 어찌 그 숭고함을 말로 다 하랴. 이 회향에는 무차별 무조건 평등의 회향이지만 다시 중생성숙 국토성취의 지극한 원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은 공덕을 남김없이 회향하되 그 공덕으로 일체중생이 항상 안락하기를 원한다. 나아가 저 중생들이 무상보리를 향한 길은 활짝 열리고 깨달음에 어긋난 길을 가고자하면 그 길이 끊어지고 깨달음에 순한 착한 일을 하고자 하면 그 모두를 성취하기를 원한다. 저들중생이 나아가는 앞길에 악한 일은 영영 없어지고 오직 인간에나 혹은 천상에나 열반에 이르는 길을 활짝 열리기를 구원하는 것이다. 진정 내가 지은 이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지혜와 안락의 바른 길에 이르도록 원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만약 중생 가운데 그가 지은 악업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과보를 받게 될 때 그 과보를 내가 대신 받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저 중생으로 하여금 고통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하고 깨달음이 바른 길을 만나 마침내 무상보리를 성취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회향이요 보살의 길이다. 오직 중생 만을 위하여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난과 어둠에서 건져줄 뿐만 아니라 완성된 국토 위에 그를 성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회향이다. 고된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고귀한 공덕에 애착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일체 중생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그 모두를 바치는 이것이 회향이다.

   3. 회향의 현대적 의미

  첫째는 이기주의의 추방이다. 개아가 독립한 개인이 아니라 일체세계 일체 중생과 더불어 한 몸이며 일체세계 일체중생을 떠나서 개아는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행원과 같은 큰 수행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위주가 될 때 행원일 수 없고 참 수행일 수 없는 것일진대 그밖에 이 끝을 노리는 사업들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콩 한 톨이라도 나누어 먹고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행복을 서로 돕는 이것 참된 인간의 길임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둘째는 부의 사용과 그 가치다. 아무리 자기의 근검절약과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재화라 하더라도 그것을 독점하여 자기위주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하고 공익을 위하고 온 인류를 위하는 차원에서 이용되고 사용될 때 개인의 참된 영광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자기가 번 돈이라 하여 제멋대로 사용한다고 보자. 오늘날의 우리 사회 一각의 어둠은 이런 데서 싹트고 있는 것을 보지 않는가. 부는 그것이 설사 자기의 창조적 활동의 결과라 하더라도 자기와 활동하는 사회와 결과를 가져오는 과정과 결과가 있는 오늘의 현실이 함께 그 결과를 붙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보호에 대한 배반이며 사회적 협동의 성과에 대한 폭력이다. 더우기 부라는 성과를 행사하는데 있어서 직접 이웃과 사회에 피해를 줌이라.

  세째는 중생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사회와 이웃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참되게 자기를 사는 길이라는 점이다. 이기적 자기충족을 먼저하고 그 여력으로 사회적 공적 부담을 한다는 것은 자기 개인 중심의 욕구충족으로 만족을 삼는 것 보다는 열걸음 자기 충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아주 입장을 바꿀 것을 우리는 행원에서 배우는 것이다. 거듭 말해서 국가 민족과 인류와 사회에 봉사하고 자기활동의 모든 성과를 국가와 사회에 환원시키는 정신자세일때 참된 개아의 부와 행복과 존경과 찬탄과 생의 보람이 있다는 점이다. 자기를 먼저 앞세울 것이 아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현상이 그런 것이다. 모두와 함께 하는 생명은 모두에게서 힘을 얻고 모두 속에서 성취하고 그 성과는 모두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모든 성과로 모두에 봉사할 때 참된 개아의 행복도 영광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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