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가사의한 위신력
보현보살의 위신력이 어떠하며, 지혜와 자비가 어떠한가는 화엄경에 자세하다. 또 보현보살의 신상(身相)에 대하여도 관보현행법경(觀普賢行法經)에 상세하니 그 위덕상과 광명장엄을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보현보살이 이와 같은데 그 어느 때가 보현의 중생교화가 없는 날일까? 시시각각 처처에 보현보살의 교화망은 열려 있으며 중생제도의 설법은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을 오로지 할 때 그 설법을 듣고 그 자비하신 위덕을 입는 것이다. 그러하거늘 어찌 보현보살의 영험을 기록할 수 있으랴. 보현보살이 머무는 곳은 법 그 자체이다. 결코 한정된 청정국토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법에 매이지 아니하고 중생을 성숙하기 위하여 저들 중생의 가지가지 욕망 속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 중생의 욕망을 따라 백천방편을 베풀어서 교화에 알맞은 몸을 나투시는 것이다. 이와같음을 생각할 때 보현보살의 영험에 대하여 감히 붓을 들 수 없다. 여기서는 다만 옛 수행인의 신앙으로 체험한 두 영험기를 소개하는데 그친다. 물론 이것이 보현보살 위신력의 백천만억 분의 일도 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 규중법사가 인도에 가다
규중(窺仲) 법사는 송나라 교주(交州) 사람이다. 부처님이 나시고 부처님께서 직접 교화하시며 많은 법을 설해 주신 인도에 가기가 소원이었다. 거시 가서 법을 배우고 부처님의 성스러운 유적을 친히 참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 갈 원을 발하고 보현보살 존상을 조성하여 모셨다. 그리고 항상 보현보살을 우러러 보고 기도하였는데 기도문 한구절에 이런 말이 있었다. [보현보살께서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시는 원이 계시니 어찌 이 작은 제자의 정성스러운 뜻을 저버리이까....] 그러는 중에 날이 가고 달이 갔다. 어느날 염불 중에 홀연이 꿈에 나타났다. 흰 코끼리를 타시고 장엄하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보현행법경 그대로의 상호이시며 장엄이었다. 그리고 규중법사 앞에 가까이 오시더니 규중의 머리를 만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지성이 진실하니 인도로 떠나가도록 하라. 만약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내가 모두 구해 주리라" 꿈을 깨고나서 규중법사는 환희를 이길 수 없었다. 지체 하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명원(明遠)법사와 함께 바다길을 택하여 떠나기로 하였다. 배는 순풍을 타고 잘 달려갔다. 그러던 중 남해에 이르러 갑자기 폭풍을 만났다. 파도가 순식간에 거칠어지고 배는 곧 엎어질 지경이었다. 하늘에서는 검은 구름과 뇌성번개와 폭우가 장대처럼 부어댔다. 규중법사는 당황하지 않고 보현보살을 일심으로 염했다. 그랬더니 배위에 별안간 밝은 빛이 비치는 듯 하더니 한 성인이 나타났는데 살펴보니 바로 보현보살이었다. 흰 코끼리를 타고 소리없이 배 위에 나타난 것이다. 어느듯 바람과 파도는 잔잔해졌다. 비도 멎었다. 배는 계속 남을 향하여 마침내 인도양에 접어들었다. 먼저 사자국에 가고자한 것이다. 사자국은 지금의 스리랑카다. 이번에는 도중에 큰 상어떼를 만났다. 상어떼는 몰려들어 배위의 사람을 치려하였고 뱃머리를 쳐서 진퇴유곡이 되었다. 규중법사는 또 다시 보현보살을 일심으로 염불하였더니 또 배 위에 보현보살이 나타났다. 동시에 고기떼들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사자국에 도착한 규중 법사는 보현보살을 지극히 염하면서 뱃머리를 서인도로 돌렸다. 현조(玄照)법사를 뵙기 위해서다. 이윽고 기나긴 항해는 무사히 끝났다. 현조법사를 찾아 뵙고 함께 중인도로 향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성지를 두루 찾았다. 보리수를 참배하고 다시 인도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3. 중죄를 면하다
송나라 진안의(秦安義)는 고륙사람이었다. 젊어서부터 매를 놓아 사냥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왔다.
달이 가고 해를 거듭하니 생살한 수는 생각할수조차 없게 되었다. 세간 사람은 말하기를 [안의는 살생은 하지만 몸에 병은 없다.]고들 하더니 그의 나이 58세가 되자 홀연히 온 몸에 부스럼이 났다. 피고름이 흐르고 냄새가 흉하며 가족들도 차마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부스럼 속에 작은 꿩의 부리같은 것이 나 있었는데 그것이 온 몸에 퍼져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도 또한 같았다. 그때야 뉘우치는 생각이 났다. 평생을 산 목숨을 죽여온 것을 생각한 것이다. 곧 도준(道俊)법사를 청하여 그 뜻을 말하였다. 도준법사가 말하기를 "이사람은 매 사냥을 한 죄보가 쌓여서 현신으로 과보를 받는 것이니 스스로 참회하지 않으면 고치기 어렵다"하고 안의에게 묻기를 "지금 신심이 어떠한가?" "몸을 마치 방아에 놓고 찧는 것 같습니다. 눈을 감으면 수많은 새와 짐승들이 내 몸을 쪼고 내 뼈를 물어 뜯는 것 같습니다. 스님이시어 나를 건져 주옵소서"
"현세의 고통이 이러하거니 다시 내세의 고통이야 어떠할까? 당신은 죄를 참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요" "참회하겠습니다" "그러면 잘들으시오, 먼저 보현보살 존상을 모시고 이제까지의 허물을 참회하도록 하십시요"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안의는 괴로워 하다가 기절하였다. 친속들은 급히 보현보살 존상을 모시고 보현참을 시작하였다. 안의는 보현참을 시작한지 3일만에 소생하였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내 앞에 말머리를 한 사람 소머리를 한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밀어닥치더니 <이 어리석은 놈아, 네가 죽인 꿩과 짐승들이 네 몸을 파먹는 고통이 어떠하냐. 양과 사슴 등이 지금 염라청에 몰려와서 너에게 억울하게 죽었다고 호소해왔다. 대왕의 명이시다. 어길 수 없다하며 나의 사지를 결박하고 문밖으로 끌어내니 대기하였던 불차 속에 집어 넣었다. 도중 한 스님을 만났는데 그 스님이 내 몸을 만져 주시니 뜨거운 고통을 잠시 쉴 수 있었다. 나찰들에게 끌려 염라청에 이르니 수없이 많은 형틀에 죄인들이 결박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 보다 앞서서 스님이 들어가시니 왕이 자리에서 합장하고 스님이 자리에 앉고 나니 다음에 왕이 앉았다. 스님이 말하였다. <이사람은 나의 단월이요. 이 사람의 친속들이 나에게 공양하고 이 사람의 죄를 참회하였오. 그러니 놓아 보내주도록 하시요.> 왕이 말하였다. <스님의 말씀을 어찌 어기오리까. 그리하오나 이 사람에게 죽은 자들의 호소가 있으므로 불러들인 것이온데 이일은 어쩌하올지 살펴 부십시요.> <비록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의 친속이나 벗이나 그를 아는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 참회법을 닦았고 그 참회한 공덕을 그들에게 죽은 자들에게 회향하여 원결을 맺은 자들이 다 원한을 풀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됐소. 마땅히 놓아 보내오리다>하고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에게 절하고 나서 나에게 하는 말이 <스님과 함께 돌아 가시요> 하였다. 그때 나는 스님을 따라 염라청에서 나왔는데 금방 내 집에 도착 하였다. 문앞에서 스님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한번 흔들었는데 내가 집에 돌아오자 스님은 볼 수 없었다. 그때에 친속들이 안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정신을 잃자 법사님의 말씀대로 보현보살님 존상을 모시고 기도 하였었소. 당신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보현보살님이시요" 안의가 이 말을 듣고 몸을 살펴보니 부스럼은 깨끗이 나아 있었다. 안의는 그후 기력이 회복되자 자기 재산을 보현보살께 공양하고 머리를 깍고 출가하면서 자손들에게 말하기를 "이 몸은 번갯불 같고 이슬과도 같다. 부디 죄를 짓지 마라. 한 생명을 죽이면 그재앙은 여러 겁에 미친다. 죽어서는 과보를 다시 받을 것이니 결코 벗어날 길은 없다. 안의는 이말만 남기고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