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지만 한4~5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부싸움을 잘 했다. 그 싸움은 말로만 옥신각신한 게 아니라 때로는 내켠에서 폭력을 행사해서 아주 험악한 지경에까지 몰고간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도무지 아내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모요, 창피라고 속단했고, 가장(家長)인 나는 종당엔 큰소리와 주먹을 써서라도 아내쯤은 기를 꺽어 놓고 사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 했었다.
그렇게 싸우다보면 때로는 내가 아내보다 쥐뿔이나 잘한 일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게되는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백기(白旗)를 든다는 일이 죽기보다 더 싫어서 별별 이론을 다 동원하고 터무니 없는 예를 들고, 심지어는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져서라도 아내를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독선이요 탐(貪), 진(瞋), 치(痴)를 고루 갖춘 무명(無明)의 속물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거듭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부부싸움 뿐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일년에 한 두번씩은 동료 직원과 맞서 핏대를 올리며 쌈박질을 하곤 했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장에 나온다고 성할 리가 없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는 요즘에 와서야 그런 일련의 싸움들이 얼마나 쓰잘데 없고 부끄러운 것인가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도대체 약하고 가난한 아내나 꺽어누르고 승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것이며, 피차 같이 고생하는 처지의 동료를 설사 이긴다고 한들 과연 그 보상이 무엇이겠는가? 생각할수록 그런짓을 저지른 나자신에게 화가 나고 정나미가 떨어졌다. 까짓 아내에게 백번 지면 어떻고 직장에서 가장 싸움 못하는 사람이 되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지는 것이나 이기는 것이 오십보 백보란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것은 가령 불혹(不惑)을 넘어선 나이 탓에 생겨난 자각이나 각성인지는 몰라도 조금은 철난 그리고 다행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어떤 의미에서나 싸움은 평화의 적이다.
세상에 큰 소리와 주먹다짐으로 이겨낼 수 있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 설사 큰소리와 주먹으로 당장은 찍어 눌렀다 치더라도 그것은 물리적인 시위이지 정신적인 승리는 아니다.
아마 그때의 내 아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내가 워낙 서둘고 큰소리로 설쳐대니까 그 위세에 눌러 혹은 이웃이 창피해서 남편에게 우선 져준것이지 아내 자신이 진심으로 내게 승복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내가 져준 것은 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긴 것인지도 모른다.
싸움은 자신의 마음의 바람을 자신이 걷잡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종의 광기(狂氣)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이를테면 아집(我執)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다. 때로는 지나친 정열일 수도 있고 맹신일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마음의 평정을 깨고 상대방을 향해 바람을 일으킬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의(戰意)의 노예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마음의 바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힘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본원적으로 우리의 영혼에 접하고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는 힘은 역시 종교의 힘이 가장 큰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종교를 잘 모른다
그러나 종교의 힘이 가령 문학이나 철학보다도 위대하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전쟁)을 최대한 막아내는데 공헌 했기 때문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인은 평화를 수호하는 순교자로서의 노력을 영원히 포기하지 말하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