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의 三대 정신
[보현보살]은 문수보살, 관세음보살과 함께 대승불교의 3대 정신을 대표한 대보살이다.
대승불교의 三대 정신이라 함은 [지혜, 자비, 원력]이 그것이다.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은 지혜와 자비와 원력이라는 세가지 정신을 골자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3대 정신을 뽑아버리면 마치 뼈를 뽑은 코끼리와 같이 죽은 고기덩어리만이 남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수보살은 지혜문을 대표한 것이며 관음보살은 그 자비문을 대표하였는데 보현보살은 원력 또는 행원문을 대표한 것이다. 소승불교는 [아라한]이 되는 것을 그 목표로 하기 때문에 [나한도]라고 하는데 대승 불교는 성불을 그 이상으로 하는데 부처가 되는 길은 바로 [보살도]이다. 그러므로 대승을 보살도라고 한다.
대승에서는 수 없는 보살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 대표되는 보살은 문수. 보현. 관음. 세지. 미륵. 지장. 금강장. 제장애의 여덟 분을 八대 보살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세지. 금강장. 제장애 세 보살을 제하고 5대 보살이라 하며 또 미륵. 지장 두분을 제하고 문수보현. 관음 三대 보살을 모든 보살을 대표하여 내세우게 된다. 만일 두 보살만 내세울 적엔[문수. 보현] 두 분만을 들게 된다. 그리고 보면 대승보살도 핵은 문수. 보현 두분이라고 하여도 틀림없는 것이다. 그런데 구색을 맞추자면 관음보살을 곁드리지 않으면 아니된다.
왜 그런가 하면 지혜와 자비와 행원 三대 정신을 빼고는 대승불교란 뼈 뽑은 코끼리와 같은데 문수보살은 그 지혜의 문을 맡아 스스로 우주, 인생의 근본 진리를 가장 철저히 깨달았으므로 그 지혜의 눈을 3세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중생에게 [보리심] 곧 근본진리를 깨달아 최상 도안을 열어주는 것을 그 근본 사명으로 한 분이다. 그 근본 지혜의 눈을 열어 준다 하여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음보살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낳아서 길러내듯이 중생을 사랑하고 어여삐 여기는 지극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감싸 안아주며 법유로서 길러내어 보디의 싹을 육성시키는 것을 그 근본사명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대성자모]니 [백의성모]니하게 되었다.
그런데 보현보살은 무변중생을 다 교화하고 제도하여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번뇌와 업이 다 할지라도 보현의 행원은 다할이 없다고 하는 무진원. 무상원을 그 체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보살도의 궁극적인 정신은 이 보현행원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계의 원앙이라고 부르게 된다. 대승사상의 극치를 자랑하는 화엄경은 이 보현행원 사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보현행원 사상
위에서 대승보살도의 三대 정신인 [지혜. 자비. 행원]의 3대사상 가운데 행원문을 대표한 분이 보형보살임을 제시하였다. 좀 구체적으로 보현보살의 존재성을 찾아보자. [보현보살]은법명으로 [사만다바드라: 비스바바드라(Samandababhadra:Visvabhadra)]라고 하는데 [보현], 또는 [변질]이라고 번역했다.
화엄경소초를 지은 징관(澄觀) 법사는 [체성이 법계에 두루한 것을 보(普)라 하고 인연 따라 덕을 이루는 것을 현(賢)이라 하며 중생을 다 구제하여 거침없는 것을 보라하고 아성의 위에 극한 것을 현이라 하며 덕이 법계에 두루하며 일체중생을 수순하는 것을 보현이라 한다]라는 해석을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가장 보변한 체와 덕과 끝없는 행원을 곧, 그 체와 덕은 법계에 보변하고 그행과 원은 길이 중생계를 다 덮어서 남김이 없는 것을 [보현]이라고 하면 틀림 없으리라.
그러자 대승 궁극의 이상을 구현시킨 화엄경에 나타난 보현보살은 그냥 하나의 인격적인 보살을 보기에 앞서서 대우주 전체적이 무진한 생명력의 발로로서 그 생명력 자체의 영원한 자기 구현. 자기 완성을 위한 끊임없는 진동력(震動力)이라는 결론을 먼저 내려보자.
그러므로 화엄경 제三 [보현삼매품]에서 보현보살이 여래가 증득한 불사의 해탈경계와 보살의 무신행원에 대한 법문을 설하기 위하여 먼저 [비로자나장신삼매]에 들었다고 하였다. [비로자나장신]이라 함은 곧 [법계장신]이라는 말과 같이 법계의 본원실상을 가리킴이니 [비로자나불]의 본체가 곧 법계의 본체니 그대로 대우주적이 본원실상이면 그것이 바로 보현의 체성이다. [비로자나불]이나 보현이 둘이 아닌 경지를 말함이나 그 [볍계장신삼매]가 아니고는 비만유의 본체로서 무한생명 전체의 구현자인 [비로자나불]의 경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로자나장신삼매]에 들었다고 하였다. 화엄경 게송에
[보현의 몸 모양이 허공과 같아서 진(眞)에 의하여 머무는 것이고 국토가 아니로다]한 것이 그것을 함이다.
다시 말하면 화엄경에 말하는 [비로자나불]은 오히려 추상적인 상징이고 실제로는 보현보살의 체와 용을 드러낸 것이다.
문수보살이 때로 나타나서 초발심보살을 위하여 이지(理智)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을 책임졌으나 그 보살들이 무진한 행원을 쌓아 무진공덕을 성취하여 비로자나불의 불사의한 해탈경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모두가 보현보살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10방 모든 부처님이 보현의 발로부터 나온다고함이 그것이다. 요컨대 대승사상은 지혜와 자비도 소중하지만 그 결정적인 것이 행원이다. 온 법계. 중생계를 다 교화하여다 불신의 해탈경계를 성취시킨다는 것이 보현행원이다. 다시 말하면 대우주적 전일(全一) 생명의 자체 구현을 위한 끊임없는 활동이 곧 보현행원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까닭을 한마디 하자면 소승불교와 대숭불교의 차이는 곧 우주관, 인생관이 근본적으로 다른 때문이다. 소승은 자기 개체와 우주 전체를 둘로 본다.
그러므로 자기 개체적 존재의 구제에 치중하여 번뇌를 끊고 생사를 초월하여 [아라한]이 되는 것을 그 지상의 목표로 한다.
그런데 대승에서는 우주만유의 전체가 그대로 자기의 신분이요, 온 중생이 자기의 생명과 둘이 아니라는 우주관. 인생관을 깨닫게 되었다. 그 전우주가 자기의 체성이요 온 중생이 자기 생명의 한 신분이라는 것은 우주 만유가 근본 하나의 진여실상이며 하나의 법신인 때문이다. 그 하나의 법신은 [비로자나]라 하였고 [법계장신]이라고 하였다.
모든 부처나 중생이 다같이 자기의 분신이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그 원리 원칙에서 보현행원 사상이 전개된 것이다. 보현보살 털구멍 속에 미진수(微塵數)의 세계가 다 들어 있다거나 미진수 중생과 보살과 또는 부처가 다 나타난다는 말은 보현 자체가 바로 법계 전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계와 중생, 불, 보살이 보현의 털구멍 속에 들어있다고 하였다. 보현보살은 그대로 대우주 전체를 인격화한 것이며 불세계 중생세계를 자기와 한 몸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업이 다할 때까지 대우주적인 전일 생명의 구현,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고 활용한다는 것이 바로 보현행원이다. 그것이 대승사상의 극치로서 특히 보현보살이라는 인격적 존재를 통하여 그 엄엄무비한 사상을 구현시킨 것이다. 좀더 철학적인 이론이 있으나 지면관계로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