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은 선문에 들고자 하는 자의 보물이다. 이를 지니는 자 반드시 선문의 귀자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 한국불교가 선을 핵심으로 하여 모든 교학을 뚜렷이 섭하고 모든 전법교화
의 근간을 선에 두고 있다.
1. 일러두기
선림보훈은 선문보훈집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중국 대혜, 보각선사와 죽암, 사계 두 선사가 중국 강서 운문사에서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것은 동오의 정선화상의 중집으로 되어 있다. 전성화상이 재편집한 경위에 대하여는 선림보훈서에 자세히 보인다. 서에 의하면
"보훈은 내가 순희 년간(서기 1174 - 1179년. 중국 남송 효종 때)에 운거산에서 조안 노사에게서 받았다. 그런데 아깝게도 책이 오래되어 책장이 버러지 먹고 낙장되어 온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후 10년간을 조사어록과 전기를 보면서 50여편을 얻어 모두 300편을 모으게 되었다. 여기에는 대개 공부하는 이가 범부성을 벗어나 도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 뿐이다. 글도 부드럽고 쉬우며 까다로운 자취도 없다. 이만하면 도에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지금 판각하여 널리 펴고자 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어 한번 보아 마음이 허락한다면 내가 산골에서 늙어 죽어도 그것으로 소망은 다한다....."하고 있다.
중집자의 말과 같이 선림보훈은 참으로 선문에 들고자 하는 자의 보물이다. 이를 지니는 자 반드시 선문의 귀자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우리 한국 불교가 선을 핵심으로 하여 모든 교학을 뚜렷이 섭하고 모든 전법교화의 근간을 선에 두고 있음을 볼 때 가히 선림보훈은 온 불자의 보훈이라 생각한다.
다음에 보훈중 요점을 소개하고 간략한 주를 시도하고자 하는데 대본은 대정신수대장경이다
2. 가장 높은 것
명교 숭화상이 말하였다.
"높은 것은 도보다 더한 것이 없고 아름다운 것은 덕보다 더한 것이 없다. 도덕이 있다면 비록 필부라 하더라도 막힐 것이 없으나 도덕이 없다면 비록 천하의 왕이라 하더라도 통하지 않는다. 백이와 숙제는 옛날에 산중에서 굶어죽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으로써 비교하면 사람들이 다 기뻐한다. 또 걸주와 유려는 옛날의 인군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을 그에 견준다면 모두가 성을 낸다. 이 까닭에 학자들은 모름지기 도덕이 자기에게 가득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요 세력이나 벼슬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주) 명교숭.... 불일계숭 선사다. 선문정조도. 정조시등을 지었다. 명교는 송 인종이 내린 호다.
백이 숙제.... 형제가 서로 인군을 사양하고 나라를 떠났는데 후에 무왕이 포악한 주왕을 치자 형제가 그를 말렸다.
그러나 마침내 무왕이 천하를 얻게 되니 주에 곡식을 먹지 않는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꺽어먹다 죽었다. 이래서 세상에서는 백이 숙제 형제를 의리와 절개의 표본으로 삼는다.
걸주 우려.... 걸왕 주왕 중국 고대의 포악한 왕의 대표이고 유왕 여왕은 다 함께 어리석은 인군의 대명사쯤 된다.
3. 물어 밝히는 것이 학
"성현의 학은 하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날이 모자라면 밤으로 한다. 이렇게 하여 세월을 쌓아가면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르기를 [배우는 것은 모아 쌓는 것이고 물어서 그것을 밝히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은 학이란 물어서 밝히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학자들이 어디를 가나 바르게 묻고 밝히는 것을 보기 드물으니 알지 못하더라. 무엇을 가져 성품과 땅을 돕고 나날이 새로워질 힘을 이룰 수 있을 것인다."
4. 절에서 내쫓길 자
"대각연 화상이 육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한번은 두 사람이 재물을 가지고 다투어 끊이질 않았다. 살림을 맡은 주사승도 그를 진정시키지 못하였다. 그래서 대각화상이 그들을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옛날에 포공이 개봉의 태수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마침 한 백성이 와서 청원을 해왔다. 내용인 즉 백금 백량을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은 죽고 없어서 그의 집에 백금 백량을 갚았더니 그 아들이 받지 않으니 바라건대 공께서 그 아들을 불러서 돈을 받게 하여 주소서]하였다 한다. 공이 놀라고 기특이 생각하여 그의 아들을 불러서 그 말을 하니 그의 아들도 역시 사양하여 말하기를[선고께서 생전에 백금을 남에게 맡긴 일이 없읍니다.]한다. 두사람이 굳이 사양하는데 공도 그것을 어찌할 줄 몰랐다. 마침내 서울에 있는 절에 올려서 망인의 명복을 기원하도록 하였다." 이 사실은 내가 잘아는 일이다. 세간에 사는 세속하람도 이렇게 재물에 담박하고 의리를 중히 여기기를 이와 같다. 너희들 불제자가 되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기를 다시 이와 같으니 그냥 둘 수 없다. 총림법에 의하여 절 밖으로 내어 쫓는다.
5. 주지를 사양한 사유
인조 황우년 초에 내관을 시켜 칙서를 가지고 원통 눌화상을 효자 대가람의 주지가 되게 하였다. 그런데 눌화상은 병이 있다하고 응하지 않고 도리어 대각화상을 임명하도록 상소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어떤 사람이 눌화상에게 말하였다.
"천자가 어지시어 도덕을 숭상하여 은혜를 내려 화상을 큰 절에 머물게 하셨는데 화상은 어찌하여 굳이 사양합니까?" 눌화상이 대답하였다. "나는 외람되게 승문에 들어와 듣고 보는 것이 밝지 못합니다. 다행히 숲 아래에 머물게 되어 채소를 먹고 물 마시니 이것으로도 과합니다. 불자라 하더라도 이러하였거늘 하물며 나로서 그 밖의 것을 생각하리까. 옛 성인이 이르기를 [큰 이름 밑에는 오래 있기 어렵다]하였소. 내가 평생족한 것을 아는 법을 행하여 명성이나 이익으로 스스로를 번거롭게 하지 않았소. 만약 이것이 싫다면 언제가서 족한 것을 알리오. 그러므로 소동파가 말하기를 [편안한 것을 알 때는 번영하고 족한 것을 알 때에 부자가 된다]라 하셨소. 명리를 피하고 절개를 온전히 하며 처음이 선하고 끝을 선히 할 것을 나는 원통에 있으면서 이것을 얻었소."
주) 원통 눌선사.... 거눌조인 선사다. 강주 원통사에 있었기 때문에 원통눌이라고 한다.
인조. 황우.... 송 제 4세가 되는 인조다. 황우는 서기 1049년인데 고려 문종 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