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해 발행되는 책은 총 8만 종입니다. 하루에도 200권이 넘는 새 책이 서점으로 쏟아집니다. 하지만 예상하신 대로 책들의 8할은 대개 서너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서점의 매대에서 사라집니다. 매대에서 사라진 책들은 출판사 창고에 고스란히 쟁여졌다가 4~5년이 지나면 소각됩니다. 창고비도 건질 수 없기 때문이죠. 표지만 뜯어내 강냉이 바꿔 먹는다는 자조 섞인 소리도 듣긴 했지만 확인한 바는 없습니다.
대개는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책들 얘깁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났거나 출판사를 잘못 만난 경우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출판계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복간’입니다. 이제는 독자의 사랑을 받을 준비를 마친 책들을 다시 선별해 출간하는 겁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표지를 바꿔 내는 경우도 있고 출판사를 옮겨 새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역시 불광에서 몇 권의 ‘복간’ 경험이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데, 그 중에 두 권이 기억에 납니다. 『선방일기』와 『존 카밧진의 왜 마음챙김 명상인가?』입니다. 『선방일기』는 출판사가 폐업해 절판됐던 책이고, 『왜 마음챙김 명상인가?』는 시대를 잘못 만났던 책입니다. 처음 책이 나왔ᅌᅳᆯ 때만 해도 마음챙김 명상이라는 용어는 독자에게 낯설었습니다.
복간의 기준은 ‘지금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입니다. 그런데 이건 기획서를 쓰기 위한 ‘명분’이고 대개는 본인이 너무 재밌게 읽었던 책, 그러니깐 ‘사심(私心)’이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앞의 두 책 모두 그랬습니다.
이번에 또 한 권을 복간했습니다. 『텐진 빠모의 서양인을 위한 불교 강의』입니다. 2004년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텐진 빠모의 마음공부』이라는 제목이었고, 열림원이라는 꽤 규모가 큰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읽은 불교 책 몇 권을 꼽으라면 꼭 집어넣는 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복간을 망설였으나 영문 원서를 보고 나서 바로 기획서를 썼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 처음 나왔을 때는 원서의 내용이 꽤 많이 삭제된 채였던 겁니다. 총 열네 개 장 중 두 개는 아예 누락했고 본문도 출판사 입맛에 맞게 대거 삭제한 채였습니다. 완역판으로 낸다면 충분히 복간의 의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20세기 말 ‘서양인’들에게 들려준 얘기는 21세기 초입 한국에서 수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내용이라는 판단도 들었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있는 건 보통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20여 년 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은 편집하는 내내 여전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