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사는 동물 이야기]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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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사는 동물 이야기]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고양이
  • 조혜영
  • 승인 2019.07.2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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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신안사 맥산 스님과 반려묘 심안(心眼)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고양이가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고양이는 주변 지형지물을 훤히 알고 있다. 어디서 뛰어다닐 수 있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마치 눈으로 보듯 움직인다. 충남 금산 신안사에 살고 있는 고양이 이야기다. 신안사 주지 맥산 스님은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으로 고양이에게
‘심안(心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신안사의 마스코트 심안이와의 인연
“우리 심안이는 굉장히 순하고 똑똑해요. 절 잔디밭에서는 마음껏 뛰어다니다가도 탑 있는 근처까지 가면 벌써 다 알고 천천히 걸음을 멈춥니다. 절 근처 숲에서 매 한 마리가 떨어졌는데, 눈이 보이는 길고양이보다 심안이가 먼저 매를 찾았어요.”
맥산 스님은 만나자마자 심안이 자랑부터 하신다. 커피를 내려주시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심안이는 스님 등 뒤에 살을 바짝 붙이고 낮잠을 자고 있다. 스님이 금강경 독경을 하실 때나 예불을 볼 때도 심안이는 스님 뒤에서 늘 함께한단다. 심지어 평소 스님의 슬리퍼 위에 앉아 있길 좋아한다고 하니 심안이의 스님 사랑 또한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심안이와 맥산 스님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니 그보다 먼저, 최초의 만남은 절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미소보살로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미소보살의 집 대문 앞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고 한다. 어른 주먹보다도 작은크기의 미숙한 고양이였는데, 자세히 보니 눈에 고름이 껴서 눈동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대전에서 제일 큰 동물병원에 보름간 입원을해 치료를 받은 후에야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그 이후로 어미 고양이가 미소보살의 집 앞에 생선 대가리와 쥐를 물어다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 보이는 새끼를 키울 자신이 없었던 어미 고양이는 미소보살의 집에 새끼를 맡겨 놓고 고마움의 표시로 생선 대가리와 쥐를 잡아다 놓았던 모양이다. 그야말로 ‘고양이의 보은’이 따로 없다.
고양이가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동물병원 원장님의 조언에 따라 미소보살은 다시 찾아온 어미 고양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 새끼 건강히 잘살고 있으니 이제 안 갖다 놓아도 된다.” 놀랍게도 그날 이후 어미 고양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미소보살에게서 이런이야기를 전해 들은 맥산 스님은 눈이 안 보이는 새끼 고양이를 절에서키우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심안이는 신안사로 오게 되었고, 이제는 어엿한 신안사 마스코트로 절을 찾는 이들이 심안이의 간식비를 주고 갈 정도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맥산 스님에게 심안이와의 인연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신안사로 내려온 이후 천일기도를 시작했는데, 천일기도를 마치고 나서 얼마 있다가 심안이를 만나게 됐습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이 오고 가는 인연도 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심안이 덕분에 부처 바위도 발견하게 되었지요.” 부처 바위라니…. 그 사연이 궁금해 스님께 여쭈니 같이 가볼 데가 있다며 앞장을 서신다.
“사찰 뒤쪽으로 계곡이 있는데, 사시마지 공양 때 올리려고 물을 뜨러 가면 심안이가 따라와서는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매번 우는 거예요. 처음엔 얼른 가자고 재촉하며 우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굴착기로 파보니까 심안이가 앉아 있던 곳이 작은 바위가 아니라 큰 부처의 끝자락이었던 거죠. 아무래도 심안이가 여기에 부처 바위가 숨겨져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눈도 안 보이는 고양이가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자기 이름대로 마음으로 보았나 봅니다.”
스님과 함께 계곡으로 가보니 물 위에 커다란 부처 모양의 석상이 서있다. 누워 있던 석상을 일으켜 물 위에 세워놓았다고 한다. 사람이 조각한 불상이라기보다는 자연적인 형태로 생긴 것인데 부처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신비롭다.
“계곡을 수없이 가도 제 눈에는 그저 평범한 바위로만 보였을 뿐인데, 심안이가 저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져 질문을 드리니 스님께서 답을 주신다.
“탐심이 다 떨어져 나간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닐까요?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으로 사물을 보면 욕심에 가려져서 사물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을 테니까요. 예쁜 걸 보면 그냥 예쁘구나 하면 되는데, 그걸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들어가는 순간 심안은 닫히게 됩니다. 저도 ‘심안이’라는 이름만 붙여준 것이지 심안을 뜨려면 아직 멀었어요. 심안이를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작은 생명 하나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신안사에는 심안이 외에도 개 4마리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때문이지 반려동물에 대한 맥산 스님의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 스님은 ‘반려동물’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한 때라고 말씀하신다. “반려동물은 자신이 필요할 땐 옆에 두다가 필요 없어지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늙고 병들어도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며 보살펴주어야 하는 식구와 마찬가지죠. 얼마 전, 신안사 앞에서 유기견 두 마리가 발견되었어요. 유기견인지 아닌지는 집배원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아요. 이 동네 개들은 집배원 아저씨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주인이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생겨 절 앞에 두고 간 모양이더라고요. 우리 절에서도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어 농장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보낸 적이 있습니다. 소식을 들으니 농장에서 건강하게 뛰어다니며 잘 지내고 있답니다.” 스님은 즉흥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말기를, 한번 키우기로 선택
했다면 끝까지 책임지고 잘 길러달라고 당부한다. 가족처럼 함께하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슬퍼하는 신도들을 위해 스님은 작게나마 천도재를 지내주기도 한단다.
“법당 밖 작은 단 위에 반려동물 사진, 음식을 올려놓고 염불을 해줍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나 마음의 아픔은 다르지않아요. 죽은 동물이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며 슬픈 마음을 놓아버리는 이별 의식이죠. 일본 사찰을 가보면 반려동물 장례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어요. 따라 할 필요까진 없지만 함께 살던 반려동물을 폐기물 버리듯이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만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극락전 앞마당 잔디밭에서 뛰놀고 있는 심안이를 보니 눈이 보이지 않는 고양이라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 스님이 장난감 막대를 흔드니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달려든다.
“우리 심안이 눈 좀 보세요. 이래 봬도 쌍꺼풀 수술한 눈이랍니다.” 스님 말씀에 심안이 눈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역시나 쌍꺼풀이 보인다.

“고양이가 무슨 쌍꺼풀 수술을 했냐 하겠지만, 눈썹이 안으로 찔려서 염증이 생긴다고 해서…. 쌍꺼풀 수술을 하니 눈곱도 안 끼고 더 예뻐졌어요.” 신안사는 전각이 많지 않아 정갈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찰이다. 푸른 잔디 위에 세워져 있는 탑 또한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으로 빛을 더하는 듯하다.
“우리 불자들은 반려동물은 물론이고, 작은 생물 하나까지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모든 생명은 다 불성이 있으니까요. 티베트에서는 공사 중에 지렁이가 나오면 한 마리 한 마리 다른 곳으로 옮겨놓느라 공사 기간이 두세 배 더 걸린다고 해요. 여기 잔디밭에도 농약 한번 안 주고 손으로 직접 잡초를 뽑고 있어요. 잔디에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을 텐데 잔디 보호하겠다고 다른 생명을 죽일 순없잖아요. 생명 지닌 것들을 서로 귀하게 여기며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잔디밭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을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이 또 한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 테다. 심안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 나오며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심안이가 바라보는 마음의 눈으로 함께 세상을 느껴보고 싶어서…. 계곡에서 불어오는 여름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매월 <절에 사는 동물 이야기>에 소개되는 이야기를 불광미디어 유튜브 채널(‘불광미디어’ 검색)과
불광미디어 공식 사이트(www.bulkwang.co.kr)에서 생생한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조혜영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추계예술대 대학원 영상시나리오 석사,
BBS불교방송 및 KBS 라디오드라마 작가로 일했으며, 대학에서 영화, 창의성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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