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라파엘 로자노 - 헤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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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라파엘 로자노 - 헤머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18.08.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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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나’들이 함께하는 기쁨 : : DECISION FOREST展 리뷰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APMA)에서는 지금 멕시코 태생 미술가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테크놀러지를 통해 대규모 프로젝트부터 작은 작품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 세계를 자극해온 그의 작품들을 만났다.

사진출처. 라파엘 로자노-헤머 공식 홈페이지(www.lozano-hemmer.com)

|    물리학을 공부한 나이트클럽 사장의 아들, 예술가가 되다!

1967년, 라파엘 로자노-헤머는 멕시코의 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 탓에 조명기계 등을 뚝딱뚝딱 만들어보곤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전구나 LED, 거대한 빛기둥을 이용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17세가 되던 해, 작가는 물리화학을 공부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주한 후 과학 저널에 논문이 실릴 만큼 연구자로서 열심히 활동했으나 돌연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전 세계에 그야말로 ‘연구과제’를 던지며 살고 있다.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과학자처럼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방식은 결국 그를 다른 어떤 예술가와도 다르게 만든 것이다.

사진출처. 라파엘 로자노-헤머 공식 홈페이지(www.lozano-hemmer.com)

|    이상하고 새로운 공공의 기억 만들기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시리즈인 <Relational Architect
ure(상호 관계적 건축)>은 <Voz Alta(큰 목소리)>, <Solar Equation(태양 공식)>과 같이 주로 도시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로 이루어져 있다. 한 작가의 것으로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다른 모양새를 띄는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그의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이상하고 새로운 공공의 기억”을 선물해왔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Relational Architecture(상호 관계적 건축)>는 참가자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도시풍경을 바꾸는 활동”과 관계된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을 활용한 참신한 기획으로 공간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는 것, 어쩌면 그것은 물리적으로 건물을 개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도시풍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라파엘 로자노-헤머 공식 홈페이지(www.lozano-hemmer.com)
사진출처. 라파엘 로자노-헤머 공식 홈페이지(www.lozano-hemmer.com)

 

|    수많은 ‘나’들과 함께하는 순간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초입에는 여러 사람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Sandbox(모래상자)>는 관람자가 들어가서 놀 수 있는 커다란 모래밭과 작은 모래상자로 구성돼 있는데, 작은 모래상자에는 모래밭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장난감처럼 아주 작게 프로젝션projection되어 장난감 같은 작은 사람 그림자를 손으로 쫒아보기도 하고, 잡는 시늉을 하기도 하며 놀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한편에 펼쳐진 커다란 모래밭에는 작은 모래상자에서 놀고 있는 손이 실시간으로 투사된다. 마치 커다란 손이 자신을 쫒아오고 있는 것처럼 모래밭 저편으로 도망가보기도 하고, 뛰어보기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모래밭에서 뛰어 놀며 자연스레 걸음을 옮기게 된다.
여러 크고 작은 작품들을 지나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한 <Pulse Room(고동치는 방)>에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천정에서는 240개의 전구가 반짝이고, ‘두근, 두근’하는 맥박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관람자들을 따라 모퉁이에 설치된 핸들 장치에 손을 얹자, 기계가 나의 맥박을 감지하고서는 맥박과 같은 속도로 소리를 내고 천장에 설치된 전구를 깜빡였다.

방 전체에 울려 퍼진 나의 맥박 소리에 방에 있던 다른 관객들은 고요히 잠겨있었다. 잠시 후, 나의 맥박 소리만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은 나 이전에 참여했던 관람객들의 맥박 소리들과 섞여 동시다발적으로, 그러나 각기 다른 리듬으로 공간을 꽉 채웠다. 240여 명의 맥박 소리 안에 잠기어 있던 그 시간은 그야말로 이상하고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맥박은 심장이 박동할 때, 동맥을 따라 혈액을 밀어내며 팽창과 이완을 되풀이하는 소리, 즉 ‘살아있음의 소리’이다. <Pulse Room(고동치는 방)>에서 이 ‘살아있음의 소리’는 모두 다른 속도로, 각각의 전구를 밝히고 소리를 냈다. 이 공간은 “우리”의 공간이 아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한 수많은 ‘나’들이 만들어내는 생명의 빛과 소리로 가득 찬 전율戰慄의 공간이었다.

사진출처. 라파엘 로자노-헤머 공식 홈페이지(www.lozano-hemmer.com)
사진출처. 라파엘 로자노-헤머 공식 홈페이지(www.lozano-hemmer.com)

 

|    예술로 수행하기

전율戰慄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가족들을 위해 창을 들고 싸우는 모습의 전戰과 마음을 뜻하는 심방변(忄)에 둘 혹은 셋으로 나뉨을 뜻하는 율栗 자를 합하여 만든 율慄로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전율戰慄은, 무명에 휩싸인 마음을 밤송이 쪼개듯 탁 쪼개어 청정하게 전환시키기 위해 싸우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그것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창을 들고 싸우는 군인처럼 자발적이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긍정적인 전율戰慄을 선사하는 것들, 좋은 공연이나 미술 작품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수행이다. 그 안에 담긴 불성佛性을 찾아보고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 이보다 좋은 수행이 어디에 있을까!                                                       
_________________
Rafael Lozano- hemmer : Decision Forest展
장소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 
기간 : 2018년 5월 3일 ~ 2018년 8월 26일. 
문의 : 02-6040-2345

이달의 볼 만한 전시  

세 부처의 모임 : 상주 용흥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 ~ 2018. 10. 28
사찰의 큰 행사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 평소에는 보기 힘든 용흥사의 대형 괘불을 볼 수 있는 기회. 괘불을 보관하는 함과 함께 익살스런 표정의 <나한상>, 신들의 모임을 그린 <신중도> 등 다양한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작품을 통해 천년고찰 용흥사의 숨결을 느껴보자.

이김천 초대전
공유스페이스 선+, 서울 | 2018. 07. 03 ~ 2018. 07. 15
한지를 소재로 산과 바다를 표현해온 이김천 작가의 전시. 작은 파동이 모여 산이 되고 바다가 되는 모습을 그려온 작가가 이번에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화두를 집중적으로 표현했다.

몸 주제展 : 일부러 불편하게
소마미술관, 서울 | ~ 2018. 08. 19
현대미술은 종종 의도적 불편함을 유발하여 우리의 무감각해진 문제의식을 일깨우곤 한다. 가장 친숙하게 느끼는 ‘몸’의 균열과 왜곡을 표현하는 작품을 통해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소중한 경험을 느껴보자.

노상균 개인전 : Light of Lightness
갤러리시몬, 서울 | ~ 2018. 07. 21
시퀸으로 감싼 불상 시리즈로 유명한 노상균 작가의 신작 전시. 축광 안료를 이용해 표현한 ‘지문’ 그림은 전시장 빛이 사라지면 그동안 흡수한 및 에너지를 발산하며 빛과 어둠, 음과 양의 존재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마인드디자인
한국불교를 한국전통문화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고민하는 청년사회적기업으로, 현재 불교계 3대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서울국제불교박람회·붓다아트페스티벌을 6년째 기획·운영하고 있다. 사찰브랜딩, 전시·이벤트, 디자인·상품개발(마인드리추얼), 전통미술공예품유통플랫폼(일상여백) 등 불교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접근하며 ‘전통문화 일상화’라는 소셜미션을 이뤄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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