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감에 불타는 아이
상태바
정의감에 불타는 아이
  • 관리자
  • 승인 2007.10.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심불심

오늘도 변함없이 ‘으앙’하고 울리는 전주곡 따라 철수의 발걸음은 이곳저곳으로 바쁘기만 하다.
친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자신이 아무리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는 중이라도 과감히 뿌리치고 그곳을 향해 질주한다. 우는 친구에게 다가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닦아주고 자신도 눈물방울을 머금으며 금방 시야를 흐리곤 한다.
그런 뒤엔 친구를 울게 만든 사람을 찾아 항변을 하고 상대가 자신에게 너무 벅찬 존재면 기어이 교사에게 데려와서는 교사의 심판을 기다리고 서 있는다.
요즘 매일 반복되는 철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 학기초의 철수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온다.
학기초 철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맑고 투명한 이슬방울을 두 눈에 담고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사 옆으로 다가서곤 했다.
철수를 이끌고 온 친구들이 서로 질세라 하는 한마디씩의 상황설명은 정의감에 불타는 철수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선생님 민기가 철수를 때렸어요.”
“그런데 사실은 철수가 먼저 민기를 때렸어요. 그래서 민기가 철수를 때린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철수가 잘못한 거예요.”
일의 발단에서부터 판결까지 내린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자신들이 놀던 곳으로 돌아가 버리고 그곳에는 철수만 우두커니 남겨지게 되곤 했다.
어린이들이 하는 한마디씩의 상황설명 없이도 철수의 표정과 두 눈에 고인 눈물은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했었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에서 그와 같은 일은 학기초에 철수에게 매일같이 일어났던 일일행사가 되어버린 덕으로 철수를 며칠 지켜본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가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철수와 교사가 남겨졌을 때 눈물을 닦아주고 무릎에 앉힌 뒤 이야기를 시작하면 눈물 머금은 여렸던 모습은 사라지고 굳건한 의지를 지닌 정의로운 용사가 되어 앞뒤가 맞지않는 발음도 안되는 어설픈 이야기들로 힘겹게 상황을 설명하곤 했다.
“민기가 나를 때렸어요.”
“민기가 철수를 왜 때렸는데?”
그러면 머리를 긁적이고 한참 머뭇거리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내가 먼저 민기를 때렸어요.”
“왜 민기를 때렸어?”
“왜냐하면 민기가 세연이를 놀렸어요. 친구를 놀리면 나쁘잖아요. 그래서 내가 혼내줬어요.”
그러면서 어느 사이엔가 철수는 아주 정의로운 일을 했을 뿐 자신은 결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변해 있었다.
그 뒤 몇 번 더 오고가는 교사와의 질문과 대답 속에서 철수는 폭력의 위력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정의감은 지속되어 약자에게 사랑을 쏟으면서 대화로 사건을 해결해보자는 성숙하고 사려깊은 꼬마 사회인이 되었다.
철수가 친구얼굴을 감싸면서 자신의 두 눈에도 투명한 이슬을 담은 가슴 벅찬 장면을 볼 때마다, 철수에게 무수한 공격의 대상이 되면서도 한발짝 뒤로 물러나 너그럽게 참고 이해하는 마음 큰 우리아이들이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고 대견하기만 하다.
늘 의로움에 불타는 철수의 정의감이 어른이 되어도 식지 않고 지속되어 이 사회 어두운 곳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철수를 지켜보아야 겠다. 佛光

신현광: 유아교육전공. 2년간 유치원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 불광유치원 교사로 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