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속에는 자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끝없는 윤회 속에는 우리의 부모 자식 형제 자매며 친구가 다 있다. 자비에는 관용 인내 박애 친절 등의 덕목이 포함됐다. 윤회하다가 아라한이나 보살이 나온다. 이들은 남을 돕기 위하여 낳고 죽으며 끝내 모두 부처가 되게 힘쓴다. 이들의 윤회는 땅위에 비추는 달 같다. 잔잔한 호수나 바다에서 본다고 하지만 하늘에 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달은 하나지만 보는 사람은 많고 볼 수 있는 처지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 보듯, 부처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기의 윤회에 따라 지난날과 미래가 연결된다.
나는 신앙공부에 무던했지만 딴 일은 몰랐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는 포탈라 궁의 죄수라고 한단다. 공부하느라 궁과 라사 중간에 지은 가족집도 한 달이나 6주에 한 번씩 상봉했다. 아버지는 가끔 궁이나 하계 별궁에 참석하면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말에 대한 취미로 말부터 먹이고 조반을 들었는데 계란이나 차도 말먹이로 했단다. 하계 별궁에는 달라이 라마 마구간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나보다 말 구경을 즐겼던 것 같다.
라사에 산지 1년 만에 누나가 오고 큰형도 왔다. 누나가 도착 후 새로 여동생 남동생이 생겼다. 막내 동생이 귀여웠으나 두 살 때 죽었다.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매장하지 말고 두면 다시 난다고 들었다.
과연 어머니는 아기를 낳고 죽은 동생과 같은 자국을 몸에 지녔다.
집안일에는 자주 참석을 못했다. 언제나 어른들 속에서 사느라 어린이다운 것도 없어졌다. 그러나 남들이 포탈라가 감옥이라 한들 나에겐 황홀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건물이라 같은 건물에 거주한 사람들끼리도 서로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언덕 하나를 완전히 덮은 하나의 도시다. 1300년 전 티베트 왕이 처음 시작해서 선방으로 쓰다가 17세기에 제5대 달라이 라마가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13층짜리 중앙 부분도 그때 시작했는데 2층 올리고 그가 입적하자 수상은 그의 유언대로 그와 비슷한 승려를 골라 달라이 라마처럼 분장시켜 13년 만에 공사를 끝냈다. 지금도 2층에는 그때 왕생을 기원하던 비문이 남았다.
중앙부분에는 행사용 장소 외에 법당 35, 선방 4, 달라이 라마 능 7개소가 있는데 어떤 능은 30피트 높이에 귀금속으로 장식됐다. 서쪽 부분은 나중 건축인데 2백 명의 승도를 수용하고 동쪽 부분은 정부청사다. 나의 집무실은 최상층에 있었다. 거리에서 쳐다보면 4백 피트 높이에 방이 네 개로 제일 많이 쓴 방은 25평방피트짜리에 제5대 달라이 라마 일대기로 벽을 메워 인물크기를 1인치로 그렸는데 공부를 하다가 지루하면 벽을 둘러보며 보낼 때도 있었다.
또 궁에는 보물장이 있었다. 천년 묵은 고문서, 역대 왕 보물, 중국이나 몽고에서 받은 선물, 달라이 라마들의 귀중품들이 있다.
병기고도 있었다. 역대 무기가 있었고 서고에는 7천권의 책 중에 80파운드 이상 나간다는 진서, 천년이나 된 인도패엽, 금, 은, 산호가루로 쓰여진 것도 2천권이 있었다. 지하실에는 사원 군부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버터, 차, 의류가 있었다. 동쪽 끝에는 런던탑처럼 고위직 감옥도 있었다. 사방은 티베트 국군이 경비했다.
이러한 속에서 나는 공부하며 어린이다운 놀이도 했다. 나는 기계가 흥미로웠는데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자동차, 배, 비행기 같은 장난감은 분해하여 그 원리를 알아보느라 오래가지 못했다. 또 장난감으로 기중기, 화물차 같은 것도 만들어 봤다. 영사기가 생겼을 때도 뜯어보고 전지가 불을 켠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포탈라 궁에서는 설날 해뜨기 전, 제일 상층에서 행사가 있었다. 누구든 따스한 차 생각이 나는 몹시 추운 때도 행사는 여러 가지였고, 매일 매일이나 한 해의 마무리는 섣달그믐 승무였다.
봄에는 하계 별궁 가는 행사가 사람들 구경거리였다. 포탈라 궁이 문화적 유산으로 자랑스럽다면, 별궁은 집 같아서 좋았다. 별궁 이름은 보물공원이란 뜻이다. 제7대 달라이 라마가 18세기에 시작해서 후계자들이 증축했으나 크지 않았다. 처음 자리를 잡은 때부터 땅이 좋아 20파운드짜리 무와 아름드리 배추가 자랐다. 포플러, 버들, 사과, 배, 복숭아, 호도, 살구가 열렸다. 꽃도 많았다. 나는 자두 딸기를 처음 심었다.
공부를 쉴 때면 공작과 사슴과 놀았다. 연못에서 놀다가 두 번씩이나 익사할 뻔했다. 고기들도 먹이를 달라고 사람 쪽으로 헤엄쳐왔다. 지금에 와선 포탈라 궁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고기들이 중공군에게도 먹이를 달라고 하지는 않는지…,
별궁에는 발전기가 있었다. 가끔 전기가 나가면 고친다고 이 기계도 뜯었다. 내연기관이 무엇이며, 자장계가 어떻게 생기나 알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고쳐질 때도 있었다. 이 실력을 자동차에도 써 보려고 했다.
라사에는 오스틴이 2대, 1931년 닷지 1대가 내 전임자가 받은 선물이었다. 히말라야를 넘을 때는 분해하여 제 발로 구르지 못하고 라사에 와서 재조립했다. 그러나 전임자 입적 후에는 녹이 슬게 그냥 나두었다. 그래서 인도에서 운전을 배웠다는 젊은이를 찾아내어 내가 조수로 달라붙어서 닷지와 오스틴 1대를 나머지 부속으로서 맞추어 굴러다니게 했다.
또 나에게는 지구의가 1개 있었는데 딴 나라들은 어떨까 무척 궁금하였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영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내가 라사로 오던 해에 발발했다. 인도에서 발간되는 티베트판 신문이 알려주었는데, 그 전쟁이 끝나기 전 나는 영어를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영국처럼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물론 티베트 사람들은 산을 잘 탄다. 라사 시민들도 산에 올라 향을 사르고 기도한다.
전혀 불행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다. 선생님들의 친절함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신앙심을 깊이 넣어 주고 아는 대로 다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원 세상에 16살인 나에게 중공이 쳐들어 왔으니까 국가를 이끌라고 했다. <계속>
흥교 김일수 옮김
마하보디협회 한국지부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