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頭陀) 제일 마하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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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頭陀) 제일 마하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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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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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聖 제자들

나는 머물러 거처를 떠나 걸식하려고 마을에 들어갔다.
식사중인 한 나병자에게 공손히 다가갔다.

그는 병들어 썩은 손으로 내게 한 덩이 밥을 내밀었다.
내 바리때에 밥을 던지자
그의 손가락이 하나 따라 떨어졌다.

울타리 아래가 가지고 가
나는 그 밥을 먹었다.
그 밥을 먹으면서도, 다 먹고 나서도 내게는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전걸식으로 요기를 하고
쇠오줌을 약으로, 나무 밑에 앉고 누우며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사람
그야말로 자유로운 사방인(四方人-승가)

-장로게(長老偈) 40게집-

이 게송은 부처님 10대 제자 가운데 두타 제일로 알려진 마하가섭의 두타행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게송이다. 두타(頭陀)는 범어 dhuta를 음역한 것으로 ‘털어버린다’ ‘번뇌의 때를 털어버리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고 오로지 불교의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는 특히 불교는 그 요체가 말에 있지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에 있음을 상기해 볼 때 마하가섭의 두타행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겨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부처님의 상수제자로서 부처님의 법을 전수(傳受)했다는 점,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도록 경전결집을 주도했던 점, 두타행으로 일관한 그의 수행정신 등은 우리로 하여금 깊이 머리 숙이게 한다.
그러면 마하가섭의 생애와 일화를 통해 그의 체취를 느껴보기로 하자.

부처님께 출가하다
마하가섭은 인도의 마갈타국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촌에서 태어났다. 마을의 큰 부자인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난 마하가섭의 어렸을 때 이름은 핏피리였다. 그는 네 사람의 유모를 두고 자랐으며 만 8세가 되었을 때 바라문으로써 익혀야할 모든 의식을 배웠다. 남달리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핏피리는 속된 환락을 즐기지 않았으며 어렸을 때부터 출가하여 수행에 전념하고자 했다. 핏피리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보니 부모님은 혼인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그는 독신을 고수하며 수행을 하겠다고 고집하면서 혼인을 거절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평생소원을 끝까지 거절하기가 어려워 마침내 카필라 성의 바들러라고 하는 아릿따운 여인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상한 인연도 있는 법이다. 아내는 바들러도 역시 결혼 이전부터 출가할 염원을 가지고 있었으나 양친의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결혼을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출가 결심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출가한다. 이윽고 갈림길에서 하나는 왼쪽 길로 하나는 오른쪽 길로 헤어졌다. 오른쪽 길로 든 핏피리는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핏피리의 출가를 미리 알고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며 기다리고 계셨던 부처님은,
“마하가섭이여, 이리 와서 앉는 것이 좋겠다. 너는 도를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으니 마땅히 출가의 절차를 밟도록 하라. 그리고 너는 앞으로 중생을 위하여 불법을 널리 펼 것이며 청정한 계행을 지켜 교단의 모범이 되도록 하라.”
부처님을 본 순간 자신이 귀의해야 할 스승임을 깨달은 마하가섭은 부처님께 출가했다. 그리고 머리를 깎은지 8일만에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聖子)의 지위에 올랐다.

두타행을 몸으로 실천하다
마하가섭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난 얼마 후, 부처님을 모시고 길을 가는데 부처님께서 한 나무 아래서 쉬려고 하였다. 그는 서둘러 자기가 걸쳤던 옷을 네 겹으로 접어 부처님의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부처님은 기뻐하면서 그가 마련한 자리에 앉으셨다. 앉고 보니 아주 부드러운 자리였다.
“가섭이여, 이 가사의 천은 매우 부드럽구나”
이 말을 들은 가섭은 몹시 송구스러웠다. 출가 수행자가 입는 옷은 조잡한 천을 쓰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출가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가사는 새 것인데다가 아주 부드러운 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부처님보다 훌륭한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부처님께 자기의 가사를 드리고 자신은 부처님의 분소의(누덕누덕 기운 옷)와 바꾸어 받았던 것이다. 마하가섭은 이때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옷을 평생 벗지 않고 헤지면 누더누덕 기워서 입었다.
마하가섭의 종교적 수행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일화는 걸식에 관한 그의 태도다. 마하가섭은 가난한 집만 골라 걸식을 하였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은 전에 지은 복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생활을 하고 되므로 복을 지어 잘 알게 해주고 싶은 자비심에서였다. 마하가섭이 이렇게 가난한 집만 골라서 걸식한 까닭은 다음의 예화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라가가하 안에 한 노파가 있었다. 이 노파는 친척도 없으며 집도 없었다. 날만 새면 사방으로 다니면서 얻어먹고 살다가 저녁이면 풀밭이나 길가에서 낙엽을 주워모아 몸을 가리고 자곤 하였다. 이 노파는 부잣집 담 밑에서 흘러나오는 쌀 씻는 물을 마시면서 배고픔을 참고 견디기도 했다.
마하가섭은 이 노파 곁으로 갔다. 노파는 헐벗고 늙고 더구나 병까지 든 사람을 찾아온 비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같은 사람을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데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가난한 사람은 자기들 먹을 것이 빠듯하므로 남에게 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 까닭은 가난한 집은 일찍이 남에게 복과 덕을 심어놓은 것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무엇이라도 보시를 하여 그 공덕으로 가난을 벗고 천상에 나가 쾌락을 받도록 하기 위해 왔습니다.”
노파는 이 말을 듣고 그 자비심에 감동하였으나 보시할 것이 없어 슬프게 울기만 했다. 마하가섭은 노파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시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그것이 그대로 훌륭한 의복입니다. 어찌 금은보화가 여기 당할 수 있겠습니까?”
노파는 그 말을 듣고 환희하는 마음으로 부잣집 담 밑에서 흘러 나오는 쌀 씻은 물을 떠서 마하가섭에게 바쳤다. 마하가섭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 마셨다.
마하가섭은 나이가 늙어서도 신참의 비구처럼 조심조심 처신하면서 한결 같이 두타행을 닦아간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밖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이따금 찾아오는 마하가섭을 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대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몸도 많이 쇠해진 것 같구나. 그처럼 누덕누덕 기워 입은 분소의를 몸에 걸치기는 무거울 것이다. 그대는 이제 그런 옷을 입지 않아도 좋다. 공양에 초대 받으면 이제부터는 응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내 곁에 있어다오.”
“부처님이시여, 저는 오랫동안 산림과 광야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탁발 걸식으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줄곧 분소의를 걸치고 싶은 기분입니다.”
“가섭이여, 그러면 그대는 어떤 이유로 그같은 행을 좋다고 생각하고 찬탄하려고 하는가?”
“부처님이시여, 하나는 지금 그것을 행하면서 저는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이런 일을 행하여 뒷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즐거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고행의 생활이 오로지 자기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들 합니다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신명을 아끼지 않고 진리의 법을 중생에게 널리 알려 해탈을 얻도록 해야겠다는 마음과 부처님의 크고도 넓은 은혜에 보답코자 하는 일념뿐입니다. 부디 고행을 계속하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착하다. 가섭이여, 너는 후세 사람들의 등불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너로 인하여 대안락(大安樂)을 얻고 커다란 이익을 얻으리라. 너는 너의 뜻대로 조용한 두타행을 닦음이 좋겠다.”
부처님이 말리심에도 불구하고 굳이 두타행을 계속하고 싶은 까닭을 마하가섭은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그것이 즐겁기 때문에, 그리고 둘째는 훗날 사람들에게도 무엇인가 가르쳐 주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두타의 행이 즐겁다고 태연히 말하는 마하가섭, 그것이 그에게는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인간이란 원래가 편안한 방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는 후세 사람들에게 여기에 이와 같은 길이 있다고 보여 주고자 하여 두타의 수행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두타의 실천 항목으로는 열두 가지가 있다. 예로부터 그것을 십이두타행(十二頭陀行)이라고 한다.
1. 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산다.
2. 언제나 탁발(托鉢) 걸식에 의해서 생활한다.
3. 걸식을 하는데 있어서 집의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4. 하루 한 끼만 먹는다.
5. 많이 먹지 않도록 양을 절약한다.
6. 중식 이후에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7. 폐물인 누더기로 만든 옷을 입는다.
8. 세 벌의 옷 이외에는 갖지 않는다.
9. 무덤들 사이에서 산다.
10. 나무 아래에 산다.
11. 한 군데 앉아 지낸다.
12. 언제나 앉아 있고 드러눕지 않는다.
마하가섭은 이와 같은 두타의 수행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진실하게 수행한 전형적인 종교인상, 수행인상을 볼 수가 있다.

부처님 말씀을 경전으로 편찬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부처님도 이제 여든이 가까워 멀지 않아 열반에 드시게 되었다. 그동안 목건련이 순교했고 사리불이 열반할 때를 미리 알고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가 명을 다 한데다가 부처님도 자주 등이 아프다고 하시어 열반이 멀지 않게 되자 교단 안에는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만약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장차 이 교단을 어떻게 이어갈 것이며 부처님 법은 어떻게 전수될 수 있을 것인가? 또 부처님의 뒤를 이어 이런 어려운 일을 할 사람은 누가 적당할 것인가?
가장 나이가 많은 마하가섭과,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부처님을 줄곧 시봉해왔고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고 알고 있는 아난이 적합하다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부처님은 구시나가라의 사라쌍수나무 밑에서 열반에 드시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수많은 제자들과 왕후장상들이 모여 들었다. 부처님이 열반한 지 7일이 지나서야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마하가섭은 급히 화장터인 천관사로 갔다. 마하가섭이 천관사에 이르러 슬피 울며 부처님 관을 향해 절하자 부처님은 관 속에서 두 발을 죽 뻗어내 보이셨다.
부처님과 마하가섭 사이에는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일들이 세 번에 걸쳐 세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을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고 한다. 그 첫 번째는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모두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끝자리에 앉았던 마하가섭이 빙긋이 웃어 대답하므로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 涅槃妙心)을 마하가섭에게 전하셨다는 이야기(염화미소).
둘째는 부처님께서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법을 설하는데 가섭이 늦게 오자 자리를 나누어 함께 앉으시며 가사로 덮어 주신 이야기(多子塔前分半坐)
셋째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니 마하가섭이 통곡하여 엎드리니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쑥 내보이신 이야기가 그것이다.(槨示雙夫)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 교단 내에는 차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부처님이 살아계신 동안에는 모든 법을 직접 부처님께 여쭈어 들을 수 있었으나 이제 안계시므로 그동안에 설하신 모든 법을 글자로 적어서 세상에 전해주는 일이 가장 요긴한 일이었다. 그래서 마하가섭을 중심으로 장로 비구들이 모여 이 일을 의논하였다. 어디서 그러한 일을 할 것이며 부처님의 법을 누가 되뇌어 글자로 적을 것이며 누가 이를 확인할 것인가에 대하여.
라자가하의 동남쪽에 있는 핍팔라나무 숲에 있는 칠엽굴에 고요하고 사람의 발길도 뜸해서 경전을 편찬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경전편찬을 위해 뽑힌 5백 비구가 모이고 마하가섭이 상수(우두머리)가 되고 아난 아나율 우바리 부루나 등 장로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경전편찬이 시작되었다. 아난은 부처님의 설법을 외우고 아나율은 율(律)을 외우고, 부루나는 논(論)을 외우고 다른 비구들이 확인하면서 부처님의 법은 한자한자 글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때의 결집을 제1결집이라 부른다.
이렇게 제1결집을 마치고 다시 2~3년이 흘러 마하가섭도 이제 백 살이 넘었다. 마하가섭은 아난다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아난다여,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니 앞으로는 그대가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아 책임을 져야겠소.”
모든 것을 아난에게 당부한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사리탑을 찾아 공양예배하고 쿡쿠타파타 산에 이르러 풀밭에 자리를 잡고 선정에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한 것은 오로지 부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다. 내 이제 열반에 들고자 하니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누구든지 내 옷으로 내 몸을 덮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67억년 뒤에 미륵보살이 성불하시고 회상을 마련할 때 나도 다시 태어나서 참배하고 중생을 교화하리라.”
이렇게 원을 세운 마하가섭은 조용히 열반에 들었다. 佛光

지현--스님 경북 상주군 지장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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