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기도가 있을 수 있을까. 불교의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거기에는 몇 가지 주장이 의례 있다.
첫째 불교는 스스로 수행하여 번뇌를 끊고 성불하는 종교요, 성인의 가호로 현세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한편에는 불교는 인과에 의하여 스스로의 결과가 돌아가는 것인데 인과를 떠나 성인의 가호를 기원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다들 한편의 이유가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염불공덕, 송경공덕을 설하고 또는 식재(息災) . 증익(增益) . 조복(調伏) . 경애(敬愛)등 여러 기도법을 말씀하신 경전의 대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역시 전자의 주장은 불교의 넓은 뜻을 깊이 헤아리지 않은 단편적 주장이라고 말이 있게 된다.
무엇보다 성불의 종교로서의 불교입장에서 보면, 번뇌를 제거하고 깨달음을 이룬다는 것인데 번뇌를 제거하면 깨달음이 나타나며 깨달음은 곧 부처님을 의미한다. 또한 번뇌를 제거하는데 있어서도 부분적으로 점진적 소멸에서부터 단번에 무(無)를 실현하는 사이가 있다.
번뇌를 완전히 소멸한 것을 성불이라 한다면 서서히 번뇌가 소멸되어 법성광명이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깨달음이 부처님일진데 번뇌를 제거함에 따라 부처님 위덕이 나타나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말을 바꾸면 미혹의 근본이며 중생고의 원인인 번뇌를 제거하고 마음을 맑힘에 따라 부처님 광명인 법성공덕이 넘쳐나 그 자신과 환경에 법성공덕이 실현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기도의 성격이 바로 수행이니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불교가 인과주의라는 입장에서도 기도를 배척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도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인(因)을 행하여 갈 때 새로운 과(果)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과를 벗어나 기도가 성립된다는 말이 아니라 바른 인을 통하여 과를 거둔다는 말이다.
거칠고 어두운 마음을 버려서 밝은 마음을 얻고 밝은 마음이 이루어졌을 때 밝은 환경이 나타나는 것은 이것 또한 불교의 원리이다. 일체 존재는 마음에 나타남이며 마음이 바뀜에 따라 당연히 일체 존재 환경에 변혁이 오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성불의 종교의 주장으로서나 인과의 종교의 주장에서도 역시 기도는 정당하며 중요한 수행의 한 방식이 된다 하겠다.
오늘날 기도에 대해서 논란하는 사람 가운데는 부처님의 역사적 석가모니불로서 이미 열반에 드셨고 부처님의 법인 법성진여는 진리이며 법칙이지 인격이 아니라는 주장을 갖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 또한 부처님이 법이요, 법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부처님은 법신(法身)이며 상주신(常住身)이며 금강신(金剛身)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부처님은 위없는 지혜와 자비로서 끊임없이 대자비의 구름을 일으키시어 무진방편을 전개하고 계심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진리로서 영원하시며 대 지혜로서 자재하시고 대자비로서 뜨거운 구원의 손길이 쉴 날이 없는 것이다.
또한 기도에 이해가 없는 사람 사이에서 기도는 안이한 기적을 구하는 행위라고 지탄하는 것을 본다. 이것 역시 기도의 본질과 그 방법을 모르는데서 오는 견해다.
바른 원을 세워 마음을 바꾸고 행을 닦아 가는 것이 어찌하여 안이하다는 것인가. 마음이 바뀌어 환경이 바뀌는 것을 어찌하여 안이한 기적을 구한다고 하는 것일까. 모두가 부질없는 견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