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여성불교] 샤론 살츠버그(Sharon Salzberg)
상태바
[서양의 여성불교] 샤론 살츠버그(Sharon Salzberg)
  • 진우기
  • 승인 2007.10.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청난 사랑에 대한 깨달음

샤론 살츠버그(새론 살스버그 Sharon Salzberg)는 IMS의 설립 법사이며 위빠사나의 스승으로서 그리고 전세계를 순회하며 자애 명상을 가르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불교를 처음 만난 것은 17세 때 트룽파 린포체의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2년 후 뉴욕주립대학 재학 중 그녀는 아시아철학 코스를 수강하면서 불교를 좀더 알게 되었다. 이후 당시에는 일련의 사건들처럼 보였지만 후에 돌아보면 완벽한 인생의 전개 단계였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대학 3학년인 그녀는 인도에서 1년을 보내기 위해 1970년 10월 인도로 갔다.

1972년도에 인도에서 수행할 당시의 모습. 맨 오른쪽.

그리고 또한 우연히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의미있는 도시 보드가야에서 생애 최초의 명상수련회에 참석했는데 그것이 바로 고엔카가 지도하는 위빠사나 10일 수련이었다. 하지만 수련회에선 그저 계속되는 고통만을 느꼈다. 1시간을 고통 없이 앉아있는 데도 이후 7개월의 훈련이 필요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들어선 불교수행의 길에 대해서는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었다. 이후 3년 반 동안 그녀는 인도, 버마, 티벳의 스승들에게 불교를 배웠다. 거기에는 20세기의 밀라래빠로 알려진 작고한 티벳스승 칼루 린포체도 끼어있었다.

인도 체류 중 캘커타에서 만난 디파마라는 이름을 가진 비범한 여성 성인은 그녀가 장차 스승이 되리라는 예언을 하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1975년 디파마의 예언대로 새론 잘츠버그,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는 매서추세츠주 베리에 IMS(Insight Meditation Society)를 설립한다. IMS는 한때 카톨릭 신학교였던 거대한 뉴잉글랜드식 건물이다. 이곳에선 10일 수련회 외에도 3달 수련회도 열린다.

수행자의 마음가짐

Lovingkindness : The Revolutionary Art of Happiness

잘츠버그의 어린 시절은 별로 밝지 못했다. 4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버렸고, 9살 때 모든 것을 의지하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이후 잠시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다시 11살 때 아버지가 또 떠났다. 따라서 인도로 간 그녀의 가슴속에는 삶의 고통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반항심이 들끓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수행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꾸준한 연료가 되었다. “나는 어떤 한계를 그을 줄 몰랐어요. 무닌드라가 수행은 진리를 완전히 깨칠 때까지 좌선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나는 그저 자리에 앉아서 그렇게 했어요.”

그래도 어려움은 있었다. 칼루 린포체와 다질링에서 공부할 때 그녀는 산꼭대기 감자 창고에서, 지붕도 없고 벽이라 할 만한 것도 없는 곳에서 살았다. 장마철에는 플라스틱을 덮어야 했고 물은 산기슭의 냇물까지 가서 퍼와야 했다. 음식은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그녀는 세속을 버리는 것, 그리고 보살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

고엔카에게서는 순수하고 개인적 차원을 떠난 사랑을 배웠다. 그가 그녀로부터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그는 돈을 받지 않았고 에고의 증대나 파우어를 위해 가르치지도 않았다. 이런 ‘한없는 순수함’의 모델은 IMS의 발전에 매우 중요했다. 고엔카가 준 사랑과 보호는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었다. 잘츠버그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수행을 했다.

샤론 살츠버그가 조셉 골드스타인과 함께 설립한 배리불교학연구센터(Barre Center for Buddhist Studies).

삶 속에 담긴 지혜

그녀는 미국으로 위빠사나를 들여오면서 다르마가 희석된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 미국인들이 너무나 경쟁적이고 목적지향적이기 때문에 그녀와 동료들은 깨달음이라는 말을 일부러 뺐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100년 후 깨달음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그들이 인도에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말은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수행이 진정 힘들고 노력을 요하는 것이라는 말은 미국인들이 익숙해져 있는 ‘즉시 만족’의 기대에 비추어볼 때 진정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전달해야 하며 사람들에게 도전을 안겨주는 것은 옳다. 예를 들어 조셉과 내가 처음 부모와 자녀들을 위한 수련회를 할 때 부모들은 자녀들을 너무 편안치 못한 환경에 몰아넣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우리는 웃기는 짓을 했다. 조셉은 ‘무아의 진리’ 대신 ‘자아 이미지가 없다는 진리’를 강의했다. 우리는 진리를 희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다. 조금만 삶을 살아보면 충분한 삶의 고통을 겪고 그러면 진실에 설탕을 칠 필요가 없어진다. 실은 그것 속에 놀라운 지혜가 담겨있다.”

배리의 한 남학생은 여성 스승의 존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체험에 의하면 여성은 특히 미묘한 감성적 차원에서 대단한 감수성과 이해를 보여준다. “잘츠버그 선생님께 가면 좀더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요. 그 부드러움에 저의 여성성이 절로 표현되죠.” 여성 스승은 또한 여성이 수행에서 남성과 동일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필요한 존재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마음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범위를 다 체험해야 한다. 그는 한때 수행의 진전이 자신보다 빠르다고 느낀 동료 남성에 대한 경쟁심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자신의 수행이 상대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대인터뷰에서 잘츠버그는 그것을 담박 알아챘다. “경쟁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다만 자신의 무지와 경쟁하고 있을 뿐입니다.” 남성 스승이라면 이처럼 명료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30년 수행을 통한 깨달음

1984년 5월 우빤디타 스님이 배리로 3개월 과정을 가르치러 왔다. 그를 본 그녀는 머리에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극히 엄하고 요구하는 것이 많은 스승이었지만 그녀는 그가 너무 좋았다. 전사형이었던 그는 자유를 향한 정진을 하다 죽는 것이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스승을 다시 가질 수 있음에 기뻐하며 그녀는 미얀마에 있는 그의 숲 속 승원으로 찾아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1989년 조셉 골드스타인과 새론 잘츠버그는 배리 불교학센터(BCBS)를 설립하였다. 센터는 전통과 현대, 공부와 수행, 학문적 이해와 명상적 통찰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려 한다. 1998년에는 IMS와 BCBS 사이에 숲 속 초막을 지어 어떤 시스템도 없이, 하지만 스승과는 함께 하며 집중수련을 하려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있다.

30여 년간 계속한 명상을 통해서 그녀는 우리의 마음이 진실로 유쾌하며, 고통스러운 모든 체험과 다른 삶을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넓음을 깨달았다. “진실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실로 내가 그 많은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이다. ‘이것이 정말 내 모습인가?’ 실은 우리 모두에게 다 엄청난 사랑이 가능하다.” 삶과의 깊은 연관성을 깨닫고 그를 더욱 발전시키게 만드는 것은 그런 사랑의 마음이다. 그녀에게 있어 명상은 ‘다시 시작하는 법을 알게 하는 기술’이며, 우리가 좀더 명료하게 볼 수 있게 해주고, 모든 존재가 상호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주며 마음이 자애로 향하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 샤론 샬츠버그 홈페이지 : https://www.sharonsalzberg.com/
* 배리 불교학센터(BCBS) : https://www.buddhistinquiry.org/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