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낫는법(2)-병의 공성(空性)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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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낫는법(2)-병의 공성(空性)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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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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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낫는 법(2)]-병의 공성(空性)을 알라!
-병과 싸우려 하지 말고, 병을 벗으로 삼으라...

병이 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인과요, 또 하나는 교훈으로서의 병입니다.

인과로 인해 병이 온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쉽게 이해 가는 일입니다.
가령 담배를 많이 피우는 분은 폐가 나빠지기 쉽고,
술을 많이 드시는 분은 간이 쉽게 상합니다.

운동을 않고 폭식을 하시는 분은 비만이 되기 쉽고
청결한 식생활을 하시지 않는 분은 각종 감염성 질환에 걸리기 쉽습니다.
화를 잘 내시는 분은 심장이나 호흡기의 병이 오기 쉽고
욕심이 많은 분은 소화기 계통의 병이 잘 옵니다.
이렇게만 보더라도 병이란 잘못된 생활, 잘못된 마음가짐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나 병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이런 현실의 인과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이유 때문에 오는 수도 적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세의 업 때문에 오는 전세병( 前世病)이나
빙의에 의해 오는 마병(魔病)이 그것입니다.

설명이 간단하지는 않지만, 이런 병 역시 와야 할 원인이 있기에 오는 인과 병입니다.
이러한 인과 병은 그 원인(因)을 소멸할 때,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과(果)인 병 그 자체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병 자체는 공(空)한 것입니다.

두 번 째 원인은 '교훈으로서 오는 병'입니다.
우주는 생명에 대한 자비로 가득한 곳입니다.
생명을 탄생시키고 생명을 번성시키려는 의지로 가득 찬 곳이 바로 이 세상이요 우주의 근본 의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주의 근본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우리의 삶이 나아갈 때,
우주는 크나큰 자비심으로 우리의 삶에 경고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엔 재물의 손실이나 사업의 실패, 명예의 추락,
집안의 우환,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여러 이웃의 질환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병에서 교훈을 찾아 우리의 잘못을 고칠 때,
병 또한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이 또한 공(空)입니다.

이런 이유로 고등 종교에서는 '병이란 실로 없다'고 가르칩니다.
절대 진리의 자리, 본성에서 볼 때 병이란 없는 것입니다.
단지 인과의 그림자이거나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찾아 오는 고마운 이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체가 없는 이러한 병에 사로 잡혀 자꾸 병에 집착하게 됩니다.
병을 두려워하고 병을 싫어하며 병을 한사코 낫게 하겠다는 그 마음이,
자꾸만 병을 더 크게 만들고 더 강하게 내 곁으로 오게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 병의 깊은 늪 속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눈으로 볼 때 이 우주는 생명의 자리요 생명 의지로 꽉 찬 자리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병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자리엔 병이란 없다',
또는 '주님, 하느님의 자리에는 병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영원한 생명이요(無量壽佛) 영원한 광명(無量光佛)입니다.
또한 주님, 하나님은 빛이요 생명이요 진리인 자립니다.
그러므로 그 곳에 병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주님은 병이 있는 곳에서 병이 없는 것을 보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병이 없는 그 자리를 사무치게 보아야 합니다.
병에 이끌려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자꾸 없는(空) 병 속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병의 공함을 바로 보아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본래 생명이 예나 지금이나,
건강할 때나 병든 지금이나 조금도 차이 없이 찬란히 타오르고 있는 것을 봐야 합니다.

한 겨울 고목 속에서도 화려한 봄날과 조금도 다름없이 생명을 노래하는 꽃들을 보고,
병 있는 곳에서도 병 없이 찬란한 나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병이란 없다, 공한 것이다,
나는 지금 헛것에, 없는 것에 속고 있다!
내 생명은 무한하다, 영원한 생명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렇게 보고 이렇게 생각하며 이렇게 마음 지어 나가야 합니다.

병이란 본래 없는 것.
단지 인과의 산물이요 내게 교훈을 주러 오는 좋은 벗에 지나지 않는 것.
그러니 나는 병을 낫겠다는 생각마저 버릴 일입니다.
오히려 반가운 마음으로 병을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병마와 싸운다는 말을 합니다만,
이런 말은 진리의 자리에서는 금물입니다. 싸울 병마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없는 병과 싸우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병 속으로 끌려갑니다.

마치 아무리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시비를 가린다고 같이 덤비면
잘한 자, 못한 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진흙탕 속으로 끝없이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없는 병과 싸우는 대신 이러한 병의 공성(空性)을 꿰뚫어보고,
[좋은 벗]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나를 깨우쳐주려는 지극한 자비심과 정성으로 찾아오는 나의 [오랜 벗]을,
두려움과 공포, 혐오 대신 [반가움]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가움에는, 만약 내가 병의 진의를 끝까지 모를 때는,
그래서 내 삶의 전환을 이루어 내지 못할 때는
기꺼이 벗의 뜻을 따라 가겠다는 너그러움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마침내 병이 없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註1.병은 '죄의 결과'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병이란 단지 '인과의 결과'인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결과' 와 '인과의 결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이야기입니다.

가령 밥을 많이 먹어 비만이 오는 경우,
밥을 많이 먹은 것 자체는 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그렇게 많이 먹고도 이웃에 도움되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문제겠지요.
밥 자체를 많이 먹은 것을 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담배를 많이 피워 병이 났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예술가들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합니다.
그 창작의 과정에 담배나 술을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오는 병을 죄의 결과라 단죄하기는 다소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불멸의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쓰인 담배나 술이 어찌 죄성(罪性)이 있겠습니까.
다만 너무 지나친 게 탈이라면 탈이겠지요.

'죄'라는 것은 나의 '가치관, 주관'이 개입된 것이요
'인과'란 단순한 사실, fact 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병을 '죄의 결과'라고 하는 것은 어두운 마음입니다.
어두운 마음으로는 병이 낫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죄의 결과', 또는 '업보'로 이야기하는 것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註2.병이 오는 이유 중에 인과나 교훈 외에도,
당신이 병을 앓음으로써 영적 성장을 더 크게 이룬다든가,
또는 비슷한 병을 앓는 이웃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스스로 원해서 이번 생에 병을 앓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헬렌 켈러 여사나 팔다리 없이 태어난 일본의 오토다케 같은 분이 그런 분으로,
이 경우에도 역시 병의 본성은 공(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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