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킨 은인, 성장에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부모나 은사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 의무사항에 해당한 것이고 너무도 흔한 규격품적 고백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그보다는 나의 시적 토양이 된 ‘고향의 흙’과 ‘자연의 은혜’를 생각해 본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육신과 혼을 점지해 주신 분으로 제1의 어머니라면 고향의 흙과 자연은 내게 시심과 대지의 덕성을 길러준 제2의 어머니, 또 하나의 위대한 스승이라 할 것이다.
나의 소년시절은 공부를 위하여 어머니의 품을 떠나 광주의 서석초등학교로 전학하였는데,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한 향수 속에서 조그만 시심이 싹텄다. 그 결실이 초등학교 시절의 동요인 ‘고향 같은 어머니’이다. 이 동요는 당시 은사 정용상 선생님이 작곡하셨고 그 노래는 고등학교 교재에 실려 있기도 하다.
간절한 생각은 고향 계신 어머니
눈물을 흘리면서 남쪽 하늘을
홀로 앉아 외로이 바라볼 때에
해님도 서산 넘어 고향 갑니다.
그칠 줄을 모르는 어머님 생각
돌아서면 바라보는 먼 하늘을
홀로 서서 우러러 하염이 없고
어머니 얼굴 실은 달이 뜹니다.
-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동요 전문
이 동요는 결국 육신을 주신 제1의 어머니와 시심과 덕성을 길러준 제2의 어머니인 고향의 자연 두 가지에 바쳐진 소년 시절의 헌사였다.
이 시심은 6·25로 인하여 다시 고향에 피란 가서 농삿일을 거들고 땔나무를 해나르는 초동이 되면서 더욱 자연과의 친화와 교감을 통해 오묘하고 위대한 스승으로 나를 압도하였고, 인근 소읍의 농고를 다니면서도 20리 상거한 큰 고개를 넘어 새벽이슬 떨며 등교하고 별 보며 돌아오곤 했다. 나는 고향의 산천과 흙 속에서 행복한 소년으로 자랐고 대학을 다닐 때도 통학을 했다. 그 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고향의 호롱불 밑에서 「호롱불의 역사」, 「땅의 연가」, 「고무신」, 「겨울산촌」, 「엉머구리의 합창」 등 초기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시편들을 구상, 고향의 산천, 그 자연에게서 배웠다.
그러므로 나의 위대한 스승은 직접 시를 가르쳐 주신 은사 김현승 시인 이외에도 고향의 자연이라는 제2의 스승 제2의 어머니가 있었다. 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나의 성장기였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