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연기(法界緣起)는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라고도 한다. 이는 법계(法界) 즉 우주만유(宇宙萬有)를 일대연기(一大緣起)로 보는 학설로 우주만유의 사물이 천차만별하나, 피차(彼此)가 서로 인과(因果)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하나도 단독으로 존재한 것이 없다고 파악한 깨달음이다. 유일(唯一)이라든지 절대적(絶對的)이라는 것은 용납되어지지 않은 세계임을 직각(直覺)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유(萬有)를 모두 동일한 수평선상 위에 놓고 볼 때에는 중생(衆生)과 부처<佛陀>, 번뇌(煩惱)와 보리(菩提·覺), 생사(生死)와 열반(涅槃)과 같이 대립(對立) 내지는 상대적으로 생각하던 것도 실지는 모두 동등한 것으로 번뇌 즉 보리요, 생사가 곧 열반(涅槃·大自由) 이어서 만유는 그 어느 것도 서로 상극(相克)이 없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것이다. 그래서 화엄에서는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한 사물은 단독한 하나가 아니요, 그대로 전 우주라는 뜻에서 한 사물을 연기의 법으로 삼고, 이것이 우주성립의 체(體)이며 힘인 동시에 그 사물은 전 우주로 말미암아 성립된 것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이와같이 우주의 만물은 각기 하나와 전체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인과(因果)관계로, 인연화합(因緣和合)의 관계로,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로 연유하여 그 어느 것 하나도 홀로 있지 않은 중중무진(重重無盡)의 관계이므로 또 이것을 법계(法界, 宇宙) 무진연기(無盡緣起)라고도 한다.
이 사상을 설명하는 것이 6상원융(六相圓融)과 10현연기(十玄緣起)의 가르침이다. 육상원융이란 만유가 낱낱이 6가지의 모양이 있음을 말한 것으로 첫째는 총상(總相)이니, 만유의 모든 법을 한 체(體)로 잡아 관찰하는 평등적 부문으로, 마치 가옥의 전체를 보아서 한 집이라고 함과 같은 것이고, 둘째는 별상(別相)으로 부분적으로 관찰하는 차별적 부문이다. 마치 가옥을 조성한 기둥, 기와, 돌 등을 낱낱이 떼어서 보는 것과 같은 것. 셋째는 동상(同相)으로 낱낱 차별이 동일한 목적에 향하여, 서로 협력 조화하는 통일적인 부문 즉 마치 기둥이나 들보 등의 부분이 협력 조화하여 한 집을 이룸과 같은 것이다. 넷째는 이상(異相)으로 낱낱이 각기 제 본위(本位)를 지켜 피차의 고유한 상태를 잃지 않고 서로서로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마치 기둥은 수(竪)로 들보는 횡(橫)으로 제각기 본분을 지켜 서로 다름과 같다. 다섯째는 성상(成相)으로 낱낱이 서로서로 의지하여 동일체(同一體)의 관계를 이룬 것으로 마치 기둥과 들보가 서로 의지하여 한 집을 이룸과 같은 것이다. 여섯째는 괴상(壞相)으로 낱낱이 어떤 일체(一體)인 관계를 가졌으나 오히려 각자의 본위(本位)를 잃지 않는 것으로 마치 기둥과 들보가 서로 의지하여 한 집을 이루면서도 각자의 모양을 지켜 그 본분을 잃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십현문(十玄門)은 십현연기무애법문(十玄緣起無碍法門)이라고도 하며 십은 만수(滿數), 현(玄)은 심현(深玄)의 뜻이고, 문은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문이란 말이다.
화엄에서 말하기를 온갖 만유는 낱낱이 고립독존(孤立獨尊)된 존재가 아니고, 낱낱이 하나를 취하면 어느 것이든 모두 전일(全一)의 관계가 있는 것을 10가지 부문으로 관찰하여 말하는 것을 10현문이라 한다.
이와 같이 보았을 때 법계 즉 우주의 삼라만상은 그 어느 것도 차별이 있되 차별을 갖지 않은 자비와 평등의 부처님의 동체대비(同體大悲)사상이 직각(直覺)될 수 있음을 간파할 수 있겠다. 법계 연기에 대한 깨달음은 곧 진여연기의 깨달음으로 무명(無明)의 늪에 있는 중생에게 자력구제(自力求濟)의 큰 광명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