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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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작용
  • 관리자
  • 승인 2007.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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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마음

도적과 양민(良民)은 겉모습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마음과 행동의 차이에서 달라질 것이다.
퇴계(退溪) 선생은 회제(晦齊) 선생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하고 주자(朱子)의 성리학을 수용하여 우주의 현상을 이(理)와 기(氣) 이원으로써 설명하고 이기(理氣)는 서로 다르면서 상호의존관계에 있다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한편 율곡 선생은 서화담(徐花潭)의 학설을 계승하여 주기설을 발전시켜 왔는데 우주 만물의 존재의 근원은 기에 있으며, 모든 현상은 기의 움직임에 따라 나타나며 기의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하여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근본사상으로하여 퇴계 선생의 주리설인 이기이원론과 대립하였다.
주리설이나 주기설에서 이와 기가 무엇인가. 곧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이와 기가 아닌가. 이 이기가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서 육신과 어울려 나타나는 것이라야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기는 마음 즉 이성과 감정이라 할 수밖에 다른 표현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고 바르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불행하고 보기 흉한 처지가 될 것이고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됨을 우리들 주위에서 많이 보아 왔다.
『명심보감』에 “언불중리(言不中理)면 불여불언(不如不言)” 이라는 말이 있다.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라는 뜻이다. 이치가 무엇인가. 곧 사람이 살아가는 마음 속에 정해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아니겠나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이든 마음 속으로 먼저 계획과 실천방법을 정해두고 난 후에 일을 시작하는 경우만 보아도 ‘마음’ 곧 정신이 결여된 인간생활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이 빈약하고 정신이 건전치 못한 우리들의 생활이나 세상은 빈 수레와 같을 것이고 향기 없는 꽃과 다를 바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일상생활을 통하여 우리들은 의사표현을 할 때 육체 위주가 아니라 마음을 주로 하여 사물에 의미성을 부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령 색감이나 미감을 나타낼 때나 공간적 시각 또는 정서적 감각을 나타낼 때 모두 마음이나 정신작용에 의한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몸과 마음 이원적 관계에 대하여도 인종이나 종교, 문화의 특성에 따라서 분류하고 해석하는 방법이 다른 것은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전통정신이나 정서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에 준하여 몸과 마음의 생리적 병변을 한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특히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병명 가운데 ‘홧병’이라는 것이 있다. 곧 마음의 병이다.
속이 상해서 마음이 아파서 등 화(火)가 쌓여서 생기는 병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식욕이 떨어지고 두통,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증을 사화(査火) 또는 심화(心火)라 하여 안심(安心), 보심(補心), 화(火)를 사(瀉)하는 약으로 다스리는데 투약 못 지 않게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의 안정이다. 환자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심(心)이라는 글자의 뜻은 마음이지만 오장(五臟)의 장기 중에 심장에 해당된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 심장에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특히 희(喜, 즐거움, 웃음)는 지나치면 과희상심(過喜傷心)이라 하여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다. 이러한 경우 심할 때는 정신이상 또는 실성하기도 한다. 또한 노기가 지나치게 폭발하면 자신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고 고함을 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을 ‘간이 부었다’라고 하여 과노(過怒)하면 간이 상하게 되어 노속간(怒屬肝)이 되고 사속비(思屬脾)라 하여 생각을 지나치게 하면 비가 상하여 소화력이 감퇴되고 안색이 황색(黃色)을 띄게 된다. 우속폐(憂屬肺)라 하여 근심, 걱정, 애를 너무 많이 태워도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되며 공속신(恐屬腎)은 공포를 과도하게 느낄 때 생기는 증상으로 안색이 검게 되고 대소변이 무의식 중에 배출되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몸과 마음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마음의 작용은 몸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지 마음과 육체를 분리해서는 인간의 신비를 설명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종교적 수행으로 마음의 초월함을 얻기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이국땅 설산 토굴에서 수행하고 있는 친구를 생각해 본다. 한의사에 석사과정까지 마친 그 친구. 생각하다가도 모를 그 친구의 마음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부모와 처자 재산까지도 모두 팽개치고 수도생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 육신의 안일보다도 호화로운 물질보다도 모든 육체적 고난을 감수하며 육신의 고통을 통해 진정한 마음의 의미를 깨달으려는 사람, 아내들이 시기할 정도로 늘 어울려 다니기도 했던 친구. 외동아들인 그가 제 아버지 장례에도 참여하지 않았을 때는 그를 많이 원망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친구와 함께 오래전에 송광사 구산 스님께 ‘시심아(是甚我)’ 라는 글을 한 폭씩 받은 적이 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친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이역만리 토굴 속 또는 갠지스 강가에서 거지 떼와 나환자들과도 어울려 수행하고있다. 마음을 초월하라는 구산 스님이 주신 그 화두를 풀지 못하여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그 친구의 넓고 깊은 마음을 나와 같은 속인이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시심아는 그날 새벽 송광사 안개 속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스님께서 써주신 글 한 폭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속인은 두손으로 받았고 그 친구는 승방에 풍기는 차향과 함께 마음 속으로 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 글을 벽에 걸어두고 남에게 자랑만 하고 살아왔다.
오늘은 보고 싶은 마음 넓은 호수만 하지만 지금은 체념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라 정지용 님의 싯구가 생각난다.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사람이 눈을 감을 때는 감정이 북받쳐 마음을 추스리지 못할 때, 기도할 때 모든 것을 잊고 용서하며 받아들이고 맨 마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듯 맺힌 마음, 매듭, 고, 한(恨) 모두 봄이 오면 강물이 풀리고 굳은 땅이 녹듯이 이승에서 맺힌 매듭 모두 풀어야 겠다. 이제부터라도 욕심을 버리고 용서하고 양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맨몸이듯이 맨 마음으로 살고 싶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이석우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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