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사람의 눈빛이 별빛과 햇빛과 달빛을 만든다.
너희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니도록 하여라.
그 눈빛으로 너희들만의 풍경을 창조하도록 하여라."
한승원 산문집《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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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내 딸이 아니라 이미 독립적인 개체가 됐다. 부녀 문학관 건립도 원치 않는다. 책읽는 문화 조성에 힘써달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입이 되어주는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말 속에서 딸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엿보입니다.
그런 작가님이 자녀에게 보낸 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한승원 작가의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에 담긴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 중 일부를 함께 읽어봅니다.
간밤에도 알 수 없는 몸살을 앓았다. 으슬 으슬 춥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면서 열이 오르고 진땀이 나고 무력증이 일어난다.
지난 두 달 동안, 보통의 감기와는 전혀 다른 독감 바이러스가
내 생체기관 모든 곳을 공격 한 모양인데 아마 심장과 허파 따위가 많이 약해진 듯싶다.
그로 인해 이 아비의 늙음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는것인지 모르고, 마음도 함께 약해진 듯 싶다.
(중략) 넘어지면 넘어진 김에 누워서 쉬어간다고,
병을 미끼로 침잠한 채 시(詩)와 신(神)을 낚는다.
병을 미끼로 삼는다는 것은 칭병한다는 것이다.
칭병하고 오래전 약속했던 강연을 취소하고 새로 해달라는 것을 거절한다.
이천오백 년 전, 인도의 가비라 성 사람 유마는 대단한 선지식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칭병 하고 누운 채 당시의 수많은 선지식들의 문병을 받고 누운 채
당시의 수많은 선지식들의 문병을 받고 ‘불가사의(不可思議) 해탈(解脫)과 불이(不二)’를 설했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지만, 생전에 '조선의 유마' 라고 알려진
추사 김정희는 늙어 앓으면서 불이선란(不二禪蘭)을 수묵으로 쳤는데 대단한 명품으로평가된다.
(중략) 아침나절에는 유마 거사의 '불가사의 해탈' 에 대한 설법을 생각하며,
토굴 앞 정자에 앉아서 푸른 하늘과 바다와 산과 들과 소통한다.
풀과 꽃 과 새와 야생 고양이들과 사귄다.
꽃들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곤 한다.
'텅 빈 산에 사람의 모습 보이지 않지만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空山無人 水流花開)' 의 경지에 살려고 한다.
산곡 황정견의 시도 같은 분위기를 표현한다.
고요히 앉아 있으면 (靜坐處)
차를 반쯤 우려냈을 때의 향기 같고 (茶半香初)
무슨 일인가를 도모할 때면 묘용시(妙用時)
물 흐르듯 꽃 피듯 (水流花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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