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창간된 월간 「불광」이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았습니다. 1974년 같은 해 창간된 사찰과 단체를 찾아 지난 50년을 되돌아볼 예정입니다. ‘1974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맞이할 100년을 준비합니다. 세 번째 순서로 이기영 박사의 원력이 남겨진 ‘(사)한국불교연구원’을 찾았습니다.
불연 이기영
1974년 4월 5일 창립된 (사)한국불교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지난 50년 동안 ‘연구’와 ‘교육’, ‘신행’을 함께한 기관이다. 불연 이기영(不然 李箕永, 1922~1996) 박사가 창립을 주도했고, 원력이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이기영 박사는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대에서 동양사학(한국사)을 전공한 후, 1954년 벨기에 루뱅(Louvain)대학에 유학해 1960년 귀국했다. 유학 당시 가톨릭 신앙을 독실하게 믿었다. 가톨릭 신부의 추천으로 유학했고, 루뱅대학에서 지도교수로 만난 라모뜨(Lamotte) 교수 역시 신부였다. 그런데 박사학위는 「불교에서 참회에 관한 연구」다. 이전 생애부터 이어진 불연(佛緣)이었을까?
이기영 박사를 ‘실천적 지식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1967년 발간한 『원효사상』은 20세기 원효의 재발견이었고, 지성인으로서 이기영을 세상에 드러냈다. 1960년대 동국대, 서울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지도위원으로 창립에 관여했고, 불교계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1961년, 1964년에는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불교를 대표해 참여하기도 했다.
“좌고우면하지 못한 성격이셨어요. 자기 이익과 명예를 따지지 않으셨죠. 이상과 원칙이 생기면 그대로 밀고 가시는 분이었습니다. 가톨릭이나 불교를 떠나 종교적 심성 그 자체가 강했던 분입니다.”
현 한국불교연구원 원장이자 이기영 박사의 자제인 이주형 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의 회고다.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만들고 교수로 재직 중, 타의에 의해 학교를 그만두기도 했다.
“동국대 일각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항의가 있었죠. 그때가 선친 인생에서 또 다른 계기가 됐습니다. 영남대에 내려가서 신라와 경주를 발견한 거죠. 책으로만 읽던 원효를 경주에서 만나게 되고, 불자로서 정체성도 분명히 했습니다.”
한국불교연구원 창립
이기영 박사가 대학에 적을 두지 않는 기간 여러 구상을 하면서 창립한 단체가 한국불교연구원이다. 1974년 4월 창립한 연구원은 서경수, 황수영 박사가 지도위원으로, 이기영 박사가 원장으로, 간사장과 간사에 이민용과 정병조가 참여했다. 이외에 리영자, 목정배, 장충식, 김상현 등이 연구위원으로 참여했다.
“1970년대 초는 우리나라 지성사에서 변화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중요한 학술서들이 나오기 시작했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많은 연구기관이 만들어지고, 성과를 내던 시기였습니다. 불교계에도 연구소가 있었지만, 박사님은 한국사회의 지성사 흐름에 동참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원의 첫 출판물은 18권 분량의 『한국의 사찰』이다. 연구원은 창립부터 연구사업뿐 아니라 교육과 신행을 주요 사업으로 삼았다. 그해 7월 ‘제1회 불교기초과정’ 강좌가 2주일간 열렸고, 8월 수련 프로그램인 ‘제1회 연수과정’이 양산 통도사에서 열흘간 열렸다. 이 두 과정의 참여자들을 중심으로 ‘구도회’라는 신행단체가 10월에 결성됐다.
이후 매년 몇 차례에 걸쳐 강의와 연수가 진행됐다. 지방에서도 강좌가 실시됐고 부산, 대구, 대전 등 지역단위의 구도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청년부와 학생부도 운영됐으며, 대전 구도회 같은 경우 충남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이공계 출신들이 모임의 중심이었다.
구도회는 현재도 토요법회와 강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경기도 광주 유마정사에서 전국 회원들이 참여하는 수련회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자를 꿈꾼 사람
이기영 박사는 연구원을 창립한 1974년, 동국대 인도철학과로 복직해 1987년까지 재직했다. 퇴임 후 동국대 경주캠퍼스를 출강하기도 했으나 주력한 일은 연구원 일이었다.
1985년 연구원 학술지 『불교연구』를 창간했고, 1988년에는 ‘원효학당’을 설립했다. 1988년에는 연구원을 사단법인화했고, 1989년부터 교사불자연수를 개최하면서 연구원 산하로 ‘전국교사불자회’를 창립했다. 원효학당을 통해 전문적인 불교교육을 실시하고자 했다. 이기영 박사는 여래장 사상, 대승기신론, 유마경, 임제록, 무문관 등 학교 재직 때보다 폭넓은 주제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1996년 11월 9일 연구원 주최로 ‘종교와 국가’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진행됐다. 기조 강연을 맡았던 이기영 박사는 강연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쓰러져 홀연히 타계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학술대회 도중 벌어진 일이기에 ‘학술 열반’이라는 이름으로 박사를 추모하기도 한다.
“인도 전통에서 스승을 구루(guru)라고 하죠. 숙부(이부영 교수, 분석심리학자) 말씀에 따르면, 선친께서는 청소년 시절 일기장에 장래 희망을 ‘위대한 교육자’라고 적으셨다고 합니다. 불자들과 호흡하면서 가르치고 보살 사상을 펼쳐나가는 일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었습니다. 선친은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벨기에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까지 이기영 박사는 ‘불교 지성인’으로 우뚝 섰다. 1960~1970년대에 한국의 지성계와 학계에서 불교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는 종교와 신화, 미술, 철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각을 드러낸 이기영 박사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
새로운 시대
이기영 박사 타계 후 정병조 교수가 2대 이사장(원장 겸임)으로 취임했다. 2001년에는 경기도 광주에 연구원 부설 수련원인 ‘유마정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이사장과 원장 체제를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창립 초부터 진행된 토요법회와 연수프로그램은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된다.
연구원에서는 이기영 박사의 강의 녹음을 풀어 『불교개론 강의』, 『유마경 강의』, 『대승기신론 강의』, 『임제록 강의』, 『무문관 강의』 등 ‘불연 이기영 전집’을 발간했다. 설립자 사후 28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국불교연구원이 이기영 박사의 뜻을 기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종화 현 이사장의 역할이 큽니다.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버팀목 역할을 하셨죠. 의사이신데 스님들이나 불자들을 남몰래 도와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병두 종교평화원구원 원장)
근래에는 제자이자 4대 원장이었던 이민용 박사가 이기영 박사의 루뱅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번역했고,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이민용 박사는 필생의 업으로 작업을 했다 한다.
1974년 창립 시부터 50년, 이기영 박사 사후 28년 시간이 지나면서 연구원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불교학 연구인력이 많아지고, 또 많은 연구기관이 설립되면서 한국불교연구원은 부처님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진리로 따르되, 박제된 텍스트나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세대에 맞는 열린 불교와 신행을 추구해 가고자 한다.
학술적으로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창의적인 연구 플랫폼을 제공하고자 한다. 신행에 있어서는 재가불자가 중심이 되어, 새 세대가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불교 모델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이주형 원장은 그러한 활동의 코디네이터(기획운영자)라는 작은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소망을 밝힌다.
연구원은 토요법회와 원효학당 강좌의 확충과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토요법회에서는 전 원장인 안성두 교수가 ‘유식사상’에 이어 ‘대승기신론소’ 강의를 시작했고, 이주형 원장이 ‘부처님의 시대’를, 김성철 교수(연구실장)가 ‘불교와 명상’을 시리즈로 강의하고 있다.
원효학당에서는 2024년 상반기에 ‘인도 문명과 불교: 무엇을 따랐고 무엇이 다른가’라는 참신한 주제의 강좌를 통해 인도 불교의 혁신과 독자성, 한계를 살펴보았다.
“250명 넘는 인원이 상반기 강좌를 들었습니다. 석박사 학위를 가진 분들도 많이 등록했습니다. 지성적인 불교를 지향하는 분들이 찾고 있습니다.”
(원광 김태석, 서울구도회)
올해 11월 1일에는 ‘불교의 미래, 불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창립 50주년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불교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존속할 수 있을까’, ‘어떠한 변화가 필요할 것인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이민용, 권석만, 양형진, 성태용, 명법 스님 등이 강연한다.
오늘날 한국 불교가 역사의 유물로 남지 않고 찬란한 전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의 공감과 참여를 불러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기존의 불교 신행과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한국불교연구원은 갇히지 않은 안목과 이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한국불교연구원’ 혹은 ‘원효학당’을 검색하면 연구원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