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생각하는 사람들’
반가사유상은 반가의 자세로 사유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6~7세기경 꽤 유행했고, 현재 30점 정도 남아 있다 한다. 서양에서는 고대 유물이 기독교에 의해 파괴되고 1% 남짓 남아 있다고 추정한다. 우리는 사정이 다르겠지만, 비슷하게 계산하면 한때 한반도에 반가사유상이 3,000점 정도가 제작됐다가 현재 30점 남았다고 볼 수 있다. 반가사유상은 종교 미술이다. 그러니까 ‘사유’도 단순한 ‘생각’이나 ‘고민’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다. ‘오늘 점심 뭐 먹지?’, ‘ 메뉴 고르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이런 식의 고민은 종교적 사유와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양미술에도 생각이나 고민에 잠긴 주제나 소재가 꽤 있다. 종교의 빛을 찾는 사유와는 결이 한참 다르겠지만, 주제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독특한 자세나 표정이 고안됐고, 조형적으로 정착됐다.
‘생각’ 또는 ‘고민’에 빠진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주제는 다음 세 가지가 가장 많다. 첫째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 마리아가 출산할 때나 갓난아기를 요람에서 돌보는 장면에서 아버지 요셉은 쭈그렁이 할아버지 모습으로 그림 한 귀퉁이에 힘없이 앉아서 턱을 괴고 있다. 여기서 턱을 괴는 자세가 ‘생각’의 도상이다. 한편, 젊은 새댁 마리아와 나이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할아버지로 요셉을 표현하는 이유는 마리아의 순결과 무원죄 잉태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물론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다음에 동생을 여럿 생산했다. 요셉도 나름대로 구실을 제대로 한 남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교회 제단화로 걸리는 종교화에서 어리고 순결한 마리아 옆자리에 근육질의 마초 맨이 ‘등빨’을 뽐내고 있다면 그것도 꼴불견일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종교화에서 요셉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무한정 늘어나게 된다.
두 번째는 성 히에로니무스다. 1,600년 전 히브리 성서를 라틴어 성경 『불가타(Vulgata)』로 번역한 대학자다. 요즘도 가톨릭에서는 성 히에로니무스 번역을 정경(正經)으로 사용하고 있다. 번역이 얼마나 뼈를 갈아 넣으면서도 돈 못 버는 작업인지는 누구나 잘 알 것이다. 필자도 통산 100권 넘게 번역하면서 인생 탕진해 봐서 알고 있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종교화에서 노상 이마 기름을 쥐어짜면서 턱을 괴고 있는데, 이건 번역이 잘 안 풀려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미술 주제로 자주 나오니까 끼워준다.
세 번째는 멜랑콜리아. 멜랑콜리아는 서양미술의 주제로 다뤄질 때는 대개 ‘예술가의 창조적 우울’을 의미한다. 예술가는 힘써 작품을 탄생시키지만, 창조주가 생명을 부리는 솜씨는 따를 수 없다. 창조주가 지어낸 피조물인 자연을 모방하면서 창조의 흉내를 내기는 한다. 하지만 예술가와 창조주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간극에 절망한다. 그것이 창조적 우울, 곧 멜랑콜리아인데, 턱을 괴는 자세가 특징이다. 표정도 어둡고 이맛살도 세게 잡으면 멜랑콜리아 도상 완성.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을 서양미술의 ‘생각’ 도상 세 가지와 비교하면 공통점이 있다. 턱을 괴는 자세다. 물론 서양에서는 주먹을 쥐고 턱을 괴거나, 손바닥을 펴서 뺨에 붙이거나, 자세들이 무척 다양하다. 손이나 주먹으로 턱을 괴는 건 안면 지압 효과도 있겠지만,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무겁다는 의미일까. 가끔 반가사유상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하는데, 로댕 조각은 제목만 ‘생각하는 사람’이고, 사실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라고 불러야 맞다. 지옥문 상인방 벼랑에 걸터앉아서, 자기가 둘러본 지옥의 풍경과 장면들을 머릿속에 되새김질하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하는 사람이 단테 맞아? 근데 단테가 왜 옷을 홀랑 벗고 있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머리 부분을 잘 관찰하면 ‘시인의 가죽 모자’를 머리에 덮어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 말고도 서양 조형에서 옷 벗은 알몸이나 누드가 자주 나오는데, 의미는 여러 가지다. 가령 로마 콜로세움 옆에 서 있던 네로 황제의 거상이 알몸이었는데, 이건 ‘영웅적 누드’라고 부른다. 헤라클레스도 그래서 옷을 잘 안 입는다. 또 헤르메스, 아폴론 비너스의 누드는 ‘신성한 누드’, 아담과 하와(이브), 세례받는 예수의 누드는 ‘순결한 누드’, 알몸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진실의 알레고리는 ‘벌거벗은 진실’ 곧 ‘진실의 누드’, 그 밖에 욕정에 불을 댕기는 팜파탈의 음란 또는 ‘유혹의 누드’가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다섯 가지 누드 가운데 영웅적 누드로 분류할 수 있다.
가시 뽑는 소년
반가사유상을 주제가 아닌 조형의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가시 뽑는 소년(Spinario)>이 가장 가깝다. 걷다가 재수 없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 모양인데, 잠시 바위 턱에 걸터앉아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자기 발바닥을 들여다보면서 가시를 뽑고 있는 도상이다. 현재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있는 <가시 뽑는 소년>이 가장 유명하고, 카피가 꽤 있다. 바로크 시대 로마 한 군데에서만 50점이 넘는 카피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꽤 인기를 탔던 모양이다. 기원전 5세기 초의 머리통과 기원전 1세기의 몸통을 결합한 조각인데, 반가사유상에서 ‘사유’ 말고 ‘반가의 자세’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사실 서양미술에서는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영웅 그리고 종교 미술에 나오는 여러 제자와 성인들은 대부분 서 있는 자세가 많다. 앉아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올림피아의 제우스가 앉아 있었고, 코린토스의 아스클레피오스가 앉아 있었고,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명부의 신 하데스가 가끔 앉는 정도다. 천상의 모후 마리아와 최후의 심판 예수도 앉아 있다. 그런데 다들 반듯하게 허리 세우고 두 다리 반듯하게 붙이고 근엄하게 앉아 있는 게 공통된 특징이다. 하지만 딱 하나 <가시 뽑는 소년>이 서양 고대 미술사에서 예외적으로 ‘반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고대 조각 가시 뽑는 소년의 도상은 르네상스 이후 조형의 본보기가 돼 회화 조각 불문하고 무수히 인용되지만, 그걸 반가사유상과 비교할 수는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두 점은 원래 78호, 83호로 불리다 지금은 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78호를 편의상 ‘일월’, 83호를 ‘삼산’으로 부르기로 하자. 둘 다 출토지 불명. 그리고 일월이 얇고 가볍고 작은 반면, 삼산은 두껍고 무겁고 크다 한다. 일단 출토지 불명이면 작품 연구가 장님 코끼리 더듬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양식사적 비교가 유일한 단서가 된다. 물론 양식사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헛발질 위험이 아주 크다. 학계에서는 일월이 먼저, 그리고 삼산이 50년쯤 뒤에 만들어진 걸로 보는 모양이다. 필자는 동양미술에 꽝이라서 여기에 대해 동의도 부인도 하기 어렵다. 그냥 내 관찰만 적어보려고 한다.
조형성(造形性)의 문제
우선 일월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삼산은 얼굴이 수직이다. 물론 둘 다 앞으로 숙이긴 했다. 고개 갸웃의 모티프가 정서적 교감을 꽤 야기한다.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 관장은 일월에 대해 “슬픈 얼굴인가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지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면 준엄한 기운이 누르는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이라는 감상을 남겼다는데, 그건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니까 존중해 주기로 하자.
사실 이런 부분은 ‘표현 의미’라고 해서 학계에서는 금기다. 가령 모나리자로 유명한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상화 모델을 서면서 ‘기쁜 미소를 짓고 있느냐, 아니면 최근에 아기를 잃고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느냐’ 같은 이런 구분은 학문적 작품 기술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돈 빌릴 때와 돈 갚을 때 심정이 다른 것처럼 똑같은 작품이라도 밥 먹기 전과 밥 먹은 다음에 보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인지상정. 앞으로 불상 놓고 표정이 ‘이렇네, 저렇네’ 하는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실컷 말한 다음에 ‘형언할 수 없다’는 등의 레토릭도 조심해야 할 표현이다.
우선 일월부터 보자. 장식이 많다. 몸은 전체적으로 유연한데, 사지의 디테일은 부실하다. 손가락 발가락이 기계적으로 처리됐다. 또 손가락에는 뼈가 없다. 철사 심지 박은 봉제 인형 손가락처럼 제멋대로 휘어진다. 가령 오른쪽 발목에 앉혀 있는 왼손을 보면 엄지손가락 손톱이 정면에 노출되는데, 보살이 아니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유연성이다. 일월은 앉은 자세에서 두 허벅지를 벌리고 있다. 삼산도 마찬가지. 좌우 등각으로 보인다. 왼발의 허벅지는 척추와 좌우 골반 기준으로 30도 정도 바깥으로 젖혔다. 이때 왼발의 정강이뼈는 정면에서 볼 때 수직을 이루고 있어서 의아하다. 살짝 안으로 휘어져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더군다나 발과 발가락도 정면을 향한다. 허벅지는 바깥으로 벌리고 정강이는 다시 정면으로 꺾은 것이다. 당연히 무릎관절에 무리가 가고, 장딴지근, 앞정강근, 가자미근이 뒤틀려서 쥐가 난다. 이런 자세로 사유 활동이 가능할까?
등 쪽을 보면 조형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 앞서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의 <가시 뽑는 소년>은 반가사유상보다 600~700년 앞서 제작됐지만 등이 경탄스러울 만큼 훌륭하다. 반가사유상의 경우 일월과 삼산 모두 왼쪽 다리를 수직으로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끌어모아 왼발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이런 ‘반가’ 자세에서는 왼쪽 골반이 바닥에 안정적으로 달라붙고 그 대신 오른쪽 골반은 뜨게 마련이다.
그런데 두 점의 반가사유상 모두 좌우 어깨가 수평이다. 골반의 좌우 높낮이가 다른데, 어깨가 수평이 되려면 상체를 지탱하는 척추는 당연히 구부러진다. 척추의 아랫부분, 곧 요추는 뒤에서 봤을 때 왼쪽으로 휘었다가 흉추로 올라오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다시 위쪽 경추로 이어지면서 곧게 펴졌을 것이다. 다시 말해 척추는 뒤집힌 알파벳 S 자의 형태가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월과 삼산 모두 오른팔 팔꿈치가 오른발 허벅지에 닿아 있다. 그러려면 상체가 앞쪽으로 살짝 접힌다. 따라서 척추는 x, y, z 세 축으로 모두 구부려져야 한다. 이건 집에 앉아서 반가 자세를 취하고 자기 등의 척주기립근만 살살 만져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카피톨리노의 <가시 뽑는 소년>의 척추는 세 축으로 구부러진 척추의 완벽한 사례다. 안타깝게도 일월과 삼산은 척추의 움직임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종교 미술의 보수성
여기서 잠시 종교 미술의 보수성에 대해서 짚어야 할 것 같다. 종교 도상은 관성이 강해서 여간해서는 잘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조형적 실험을 꺼리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이 불변성 항구성 영속성의 차원에서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종교 도상의 보수성을 더욱 고착시키는 이유일 것 같다.
서양 종교 미술의 경우 태초에 신이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창조했을 때는 다 좋았는데, 차츰 인간이 죄짓고 타락해서 머지않아 종말을 맞고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에 가까울수록 악하고 추하고 더러우며, 과거로 갈수록 순결하고 아름답고 깨끗했다’는 황금시대의 신학 논리가 종교 도상의 보수성을 확고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기독교 미술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 앞서 기원전 6~5세기, 아케익-엄숙양식-고전기로 이어지며 조형적 발명이 활발하던 시기의 종교 도상은 비교적 변화가 느렸다. 하지만 그것은 작품의 앞면에 국한된 이야기다. 기원전 6~5세기 ‘쿠로스(Kouros) 조각’의 뒷면을 보면 앞면에서 볼 수 없는 혁신을 드물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주문자가 원하는 종교적 보수성은 어쩔 수 없이 정면에 양보하지만,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품의 등과 엉덩이에서 양식사적으로 거의 한 세대를 건너뛰는 대담하기 짝이 없는 실험과 시도를 감행한 것이다. 실물을 친견한 고고학자들에게는 놀랍고도 행복한 감상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일월과 삼산의 등과 엉덩이를 보고 실망스러운 탄식을 뱉는다면 그건 뭘 좀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일월과 삼산의 옷주름 옷자락 비교는 다른 연구자들도 많이 다루고 있으니 생략한다. 다만, 일월의 경우 콧방울 처리라든지 왼쪽 정강이 앞쪽 U 자 형태의 주름이 파인 형태에서 후가공을 방불케 하는 매너리즘적인 흔적이 보인다. 다시 말해 인체의 표현과 옷주름의 표현이 제각기 다른 선례에서 나온 별개의 두 가지 양식인데, 그것을 같이 조합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형태와 기법이 따로 논다고 할까, 된장국에 우유를 섞어서 먹는 것 같다. 일월의 얼굴과 보관에서 보이는 조형성과, 일월의 왼발 U 자 옷주름과 얼굴 콧방울에서 보이는 그래픽적 요소가 어울리지 않고 충돌하는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출토지 불명 작품들의 연대 측정은 참 어렵고 조심스럽다. 종교적 대상물을 놓고 조형성을 논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 현재 자유롭게 창작활동 중이다. 『청동에 생명을 불어넣은 로댕』, 『단숨에 보는 르네상스 미술』 등 100여 권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