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반가半跏의 숨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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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반가半跏의 숨은 뜻
  • 주수완
  • 승인 2023.05.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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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의 인문학

반가란 ‘반가부좌’의 뜻이다. 일반적으로 반가사유상이 앉아 있는 자세를 반가좌라고 하고 있는데, 수행하는 분들에 의하면 엄밀히 이 자세는 반가좌가 아니라고 한다. 결가부좌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상태에서 양쪽 발이 모두 반대쪽 다리 허벅지에 올라가게 앉는 것이라면, 반가부좌는 한쪽 발은 반대쪽 다리 아래로 넣는 것을 말한다. 결가부좌로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에 무리가 갈 수 있는데, 그때 잠시 다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앉는 자세라고 한다. 그런데 반가사유상이 앉은 모습은 한쪽 발, 보통은 왼쪽 발을 오른발 아래로 넣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발을 내리고 앉아 있다. 따라서 반가부좌하고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단 이 글에서는 편의상 반가좌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사진 1. 유희좌를 하고 있는 금동 관음보살좌상(보물), 보타사 소장
사진 2. 윤왕좌를 하고 있는 관음보살좌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반가좌와 비슷한 앉은 자세로는 유희좌(遊戲坐)와 윤왕좌(輪王坐)가 있다. 유희좌는 반가좌처럼 앉은 상태에서 꼬고 있던 다리의 무릎을 세워 앉는 것을 말한다. 서울 보타사의 금동 관음보살좌상이 그 대표적인 예다(사진 1). 윤왕좌는 가부좌한 상태에서 주로 오른발의 무릎을 세워 앉는 것을 말한다(사진 2). 해남 대흥사 금동 관음보살좌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반가좌, 유희좌, 윤왕좌는 모두 가부좌의 변형으로 한쪽 다리를 늘어뜨리거나, 무릎을 세우거나, 혹은 한쪽은 늘어뜨리고 한쪽은 세우거나 하는 차이를 지니고 있다.

사진 3. 반가좌를 한 수월관음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더불어 유희좌와 윤왕좌의 자세로 앉은 보살상은 대체로 관음보살로 인식되는데 반해 반가좌는 미륵보살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조각은 아니지만, 고려시대에 그려진 <수월관음도>는 상체가 사유의 자세가 아닐 뿐, 앉는 방법만 보자면 반가사유상의 앉는 법과 다르지 않다(사진 3). 따라서 이들 자세는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상황이 더 복잡하지만, 한국의 상황만 정리해 보자면, 삼국시대에는 반가좌의 사유상, 고려시대에는 반가좌의 수월관음, 조선시대에는 윤왕좌, 혹은 유희좌의 수월관음이라는 맥락으로 전개된다고 정리해 볼 수 있다. 반가좌를 한 보살이 관음보살이라고 보는 견해는 이러한 맥락에 초점을 맞춘 경우다. 

사진 4. 중국 산서성 북향당산석굴 중심석주의 반가좌를 한 불좌상

그렇다면 옛사람들에게 이러한 자세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던 것일까? 마침 중국 향당산 석굴사원의 한 석굴에는 가운데 큰 돌기둥을 남겨두고 사방에 돌아가며 불상을 새겼는데, 그중에 반가좌를 한 불상이 한 분 새겨져 있다(사진 4). 보살상이 아니라 불상으로서 반가좌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다. 이런 불상의 모습은 중국 북제시대에 종종 제작됐는데, 이와 같은 유형의 불상에 ‘파좌상(破坐像)’, 즉 ‘가부좌를 푼 부처’라는 표현이 새겨진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파한다’는 것은 단순히 푼다는 의미도 있지만, ‘끝낸다’는 의미도 있기에 ‘수행을 마친다’, ‘참선을 마친다’ 등의 의미도 지닐 수 있다. 그렇다고 당장 지금까지 ‘반가좌’로 불려왔던 자세를 ‘파좌’라고 바꾸기도 어렵겠지만, 충분히 참고할 만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진 5. 중국 대동 운강석굴에 새겨진 미륵보살의 도솔천 설법 장면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반가좌가 지닌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래 중국에서 반가사유상은 발목을 교차하고 앉아 있는 보살상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서 협시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바로 이 중앙에서 발목을 교차하고 앉아 있는 보살상은 미륵보살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앉는 방법을 ‘교각좌(交脚坐)’라고 한다(사진 5). 이처럼 교각좌 보살상이 미륵보살을 뜻하기 때문에 반가한 사유보살상은 미륵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반가한 사유상이 미륵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미륵은 아니지만, 미륵 곁에는 있었던 이력이 독특하기는 하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미륵으로 간주됐던 교각좌 보살상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옆에 있던 반가좌의 사유상을 미륵으로 보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어쩌면 반가이건 교각이건 이런 다소 어중간한 자세들이 미륵이나 미륵과 연관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이러한 자세들은 결가부좌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에서 조금 편안하게 힘을 뺀 자세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힘을 뺐다는 것은 권위적인 자세에서 보다 인간적인 자세로 변화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단정하게 앉은 자세가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보살의 모습이라면, 느슨한 자세로 앉은 모습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보살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즉, 부처의 협시로서의 보살은 서 있거나 결가부좌를 한 전형적인 단정한 자세의 보살이라면, 그보다 가까이 우리 곁에 있을 때의 보살은 이처럼 인간적인 자세의 보살로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반가좌의 변형인 윤왕좌나 유희좌 보살상이 수월관음의 표현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선재동자가 포탈락가산에 관음보살을 만나러 갔을 때, 또는 의상대사가 양양 낙산사에 관음보살을 만나러 갔을 때 모습을 드러낸 관음보살은 이상적인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사는 평범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우리는 완벽한 형태의 보살은 볼 수 없다. 보살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이처럼 완벽함을 잠시 숨기고 인간적 모습으로 변화했을 때만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의 미륵이나 관음을 표현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보살이 지금 우리 곁 가까이에 오신 것이구나 실감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이다.

사진 6. 도솔천을 재현한 돈황 막고굴 제275굴의 입구에 조성된 경계인으로서의 반가상

이렇게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것은 또한 보살이 초월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의 경계에 있음을 의미한다(사진 6). 특히 교각좌나 반가좌는 가부좌를 완전히 푼 것도 아니고, 안 푼 것도 아닌, 다소 어중간한 좌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어중간함’을 통해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나아가 여기에도 속하고, 저기에도 속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5호 16국 시대의 북량 시기에 만들어진 돈황 막고굴의 초기 석굴 중 도솔천을 표현한 한 석굴을 보면 도솔천 안에는 교각좌의 보살들이 열 지어 앉아 있고, 석굴 바깥 입구, 즉 도솔천의 입구에는 반가사유상이 좌우에 앉아 있다. 도솔천은 다음 생애에 부처가 되기로 수기를 받은 보살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여기에 머물다 다음 생을 받아 태어나면 그 생에 부처가 되어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보살을 ‘일생보처의 보살’, 즉 ‘윤회를 한 번만 남겨둔 보살’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물론 미륵보살도 포함된다. 이런 보살은 아직 보살의 단계이지만 부처가 되기로 확정된 보살들이기 때문에 부처와 보살의 경계에 위치한 보살들이라고 간주된다. 

한편 도솔천 입구의 반가사유상은 일생보처의 보살은 아니지만 도솔천에 태어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 죽음 이후의 가장 원하는 바가 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그만큼이나 도솔천 왕생도 염원하는 바였다. 다만 도솔천은 일생보처의 보살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나무아미타불’만 외면 갈 수 있는 극락세계만큼 보편화되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일생보처의 보살이라는, 말하자면 최고의 엘리트들이 태어나는 곳이라는 점에서 고승들이나 학구적인 사람들이 왕생하고 싶어 했던 이상적인 세계였다. 아마도 일생보처의 보살은 아니면서도 도솔천에 태어난 사람들 역시 경계인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경계라는 것은 공간적 의미에서의 경계이기도 하고, 시간적 의미에서의 경계이기도 하다. 공간적 경계라는 것은 초월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의 경계에 있다는 의미고, 시간적 의미의 경계란 비록 지금은 부처나 일생보처의 보살이 아니지만, 곧 그러한 존재로 업그레이드될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비록 한국에서는 교각좌의 보살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교각이나 반가 모두 ‘경계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는 좌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한국에서는 반가사유상이 중국의 교각상을 대신하는 것이니만큼 그러한 의미로 반가좌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사유를 진행하다가 깨달음을 얻은 상태, 그 순간 중생이 부처로 넘어가는 순간일 것이다. 반은 중생이고 반은 부처에 걸쳐진 상태. 이렇게 경계에 선 반가상은 저 멀리 깨달음의 세계를 우리 곁으로 모셔 오기 위한 의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파좌’의 의미가 더욱 실감이 간다. 반가의 자세를 통해 이제 막 깨달음이 성취됐음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미술적 시각에서 보자면, 이 경계인의 자세는 매우 까다로운 조각적 특성을 지녔다. 일반적으로는 불상의 머리, 팔, 상체, 하체는 서로 몸통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상호 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독립적 존재다. 그러나 반가사유의 자세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보살의 얼굴 뺨에는 손가락이 붙어 있고, 손가락이 달려 있는 팔의 팔꿈치는 무릎에 닿아 있으며, 무릎이 달려 있는 다리는 다시 허리에 연결돼 있다. 허리의 척추 상단에는 다시 보살의 머리가 위치한다. 따라서 이렇게 신체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얼굴을 숙이는 각도를 조금만 다르게 해도, 허리의 앞으로 기울인 각도를 조금만 다르게 해도 사유의 자세가 어색해질 수 있다. 또한 턱을 괸 팔꿈치에 연결된 다리의 기울어진 각도는 상체의 전체적인 기울임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도 한다. 이 미세한 부분들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사유의 자세도 완벽하게 나올 수 없다. 실제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소장된 다양한 반가사유상을 보면 이러한 유기적인 구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여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해 어색한 자세로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가상을 만날 때, 그저 자세가 어려워 제대로 만들지 못한 실패작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실험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이자 한국미술의 자랑인 일월식보관 반가사유상이나 삼산관 반가사유상의 깊이 있는 사유의 자세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실패작처럼 보이는 반가사유상들의 다양한 실험이 없었더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정점의 결과물들이다.

다른 불상들에서는 이런 엉뚱한 실패작들이 잘 보이지 않는데, 반가사유상에서 유독 어색한 작품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삼국시대의 조각가들이 반가사유상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실험을 많이 했음을 짐작게 한다. 이러한 애착은 중국에서는 교각좌의 미륵보살상을 협시하는 보조적 존재였던 반가상을 이제는 미륵보살이라는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었으리라.  

 

주수완
불교미술사학자이자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전공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인도와 실크로드에서 중국과 한국에 이르기까지 불교미술 도상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 『불꽃 튀는 미술사』,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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