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궁중茶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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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차차차茶茶茶] 궁중茶례
  • 김세리
  • 승인 2023.04.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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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 제왕帝王의 음료

 

왕의 의례, 진다(進茶)

차를 올리는 진다(進茶) 의식은 삼국시대의 헌다(獻茶) 의식이 발전된 것이다. 그 대상은 신(神), 선왕(先王), 임금이거나 오악삼신(五嶽三神)과 때로는 외국에서 온 사신이기도 했다. 귀한 이에게 올리는 의식의 예물로 정성껏 만들어진 차를 진상했다. 차는 아픈 이들에게는 치료 약으로, 교유에 있어 소통의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국가 의례에 있어서는 품위와 격식을 갖추는 음료였다.

● 오악(五嶽): 동의 금강산(金剛山), 서의 묘향산(妙香山), 남의 지리산(智異山), 북의 백두산(白頭山)과 중앙(中央)의 삼각산(三角山)을 말한다. 
● 삼신(三神): 상고(上古)시대에 우리나라의 국토를 마련했다는 신(神), 환인(桓因)과 환웅(桓雄)과 환검(桓儉). 

고려의 가장 큰 명절인 팔관회(八關會)는 산천과 토속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거국적인 제전(祭典)이다. 궁정의 신하들은 왕에게 하례를 올리고 지방 관리들은 특산물을 바쳤다. 외국 사신과 상인, 백성들은 팔관회 행사를 함께하고 왕에게 경하드렸다. 행사의 백미는 진다 의식이다. 신하가 왕에게 차와 다식을 바치면, 왕이 신하에게 차와 다식을 하사했다. 

정월 보름날, 부처님께 국가와 왕실 태평을 기원하는 연등회(燃燈會)에서도 왕의 행차와 입장 의식에서 진다 의식을 행했다. 태자 이하 군신들이 왕에게 차와 술, 꽃을 바치면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고 함께 나눴다. 다과를 베풀고 왕과 신하가 함께 음악과 춤을 즐겼다. 고려 왕실의 행사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의식은 왕과 신하, 나아가 백성의 화합을 의미하며, 왕의 권위와 자애로움은 차를 통하여 표출됐다.

그 외에도 고려 왕실의 혼례인 가례(嘉禮), 왕자와 공주의 탄생, 관례(冠禮), 왕비의 책봉례(冊封禮) 등 사례(四禮)와 각종 행례 의식에서 차를 올렸으며, 경건한 다의례(茶儀禮)를 통해 왕실에서 이뤄지는 행사는 한층 장엄한 격조를 갖추게 된다. 

 

다방(茶房)과 다군사(茶軍士)

“왕이 가상히 여겨 품차 일습과 수정 염주 108개를 하사하였다(王嘉之賜品茶一襲水精念珠百八箇).” 
_ 『삼국유사』 「감통(感通)」

신라 경덕왕이 월명(月明) 스님에게 “도솔가를 지어 나라를 편안하게 한 공로로 좋은 차 일습(一襲)과 수정 염주 108개를 하사했다”는 내용이다. 일찍부터 특별한 격려와 축하, 위로해야 할 때 왕이 차를 선물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 14년 왕건이 신라를 병합하기 전에 신라왕과 군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말과 비단, 복두 등의 의복과 차를 하사했고, 충신의 부고(訃告)를 맞게 되면 시호(諡號)를 내리고 부의품으로 차와 다른 물건 등을 하사했다. 왕은 불전에 올리는 차와 향을 사찰에 시주하기도 하고, 진각국사(眞覺國師)와 같은 대선사에게는 차와 향, 옷을 하사하기도 했다. 귀하고 좋은 물건들이 많겠지만, 차는 왕이 내리는 권위이자 정중한 예의를 갖춘 특별한 하사품이었다. 

왕실에서 차와 관련한 업무는 상당히 전문적으로 이뤄졌다. ‘다방(茶房)’을 설치하여 진다 의식을 집행하는 일에서부터 제단 준비, 왕이 순행(巡幸)할 때 차를 봉행하는 일, 차를 끓이는 일, 다과를 준비하는 일 등 차에 관계되는 모든 일을 관장했다. 이 밖에 세금으로 거둬들인 차를 보관·관리하는 일, 하사품이나 부의품으로 차를 보내는 일, 세자궁에 차를 올리는 일 등 차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다방에는 다방태의소감(茶房太醫少監), 다방시랑(茶房侍郞), 다방별감(茶房別監), 다방참상원(茶房參上員), 다방인리(茶房人吏), 다방좌우번(茶房左右番) 등과 같은 관리들이 있었다. 때로 다방의 인원이 많아져 삭감하는 경우나, 다른 직제와 겸해 일하기도 했다. 왕이 순행할 때 다구와 짐 나르는 일은 행로다담군사(行爐茶擔軍士)의 몫이었다. 다군사는 군역을 면제받는 특전이 있어, 보충 인원이 수백 명이 몰리기도 해 적정 인원으로 심사하고 조정하기도 했다.

고려시대 제작된 청자상감 주전자와 받침(보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 제작된 은제 금도금 잔과 받침(보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결정권자에게 필요한 지혜의 시간, 다시(茶時)

‘다시(茶時)’는 말 그대로 차 마시는 시간이다. 지금처럼 일하다가 남는 시간이나 여유로울 때 마시는 티타임(tea time)의 개념은 아니다. 고려 때부터 시행된 국가 제도인 ‘다시’는 공무에 들어가기 전에 다례(茶禮) 의식을 통해 차를 마시는 것이다. 국가 중대사를 처리하기 전에 차 마시는 일을 정례화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는 결정권자에게 이성과 객관을 강화하는 시간이기에 특히 중요했으며, 그 문화는 고려에 이어 조선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사가문집(四佳文集)』 기록에 ‘다시’, ‘다시청’, ‘다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헌부의 청사(廳事)는 둘이 있는데, 다시청(茶時廳)과 제좌청(齊坐廳)이다. ‘다시’라는 것은 다례(茶禮)의 뜻을 취한 것이다. 고려 때와 우리나라 초기에 대관(臺官)은 말하는 책무만 맡고 다른 여러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날마다 한 번씩 모여 다례(茶禮)를 행하고는 마쳤다. 국가의 제도가 점차 갖추어져 대관도 송사를 청리(聽理, 송사를 듣고 심리함)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되어 다스려야 할 일이 많아지자, 드디어 항상 출근하여 직무를 처리하는 장소가 되었다.”
_ 『사가문집』 「사헌부제좌청중신기(司憲府齋坐廳重新記)」

사헌부의 ‘다시청’, ‘제좌청’에서 ‘다시’, 즉 차 마시는 의식이 이뤄지고 있었다. 날마다 한 번씩 모여서 차 마시는 의례를 진행한 것이다. 사헌부가 어떤 곳인가? 국정을 논의하고 공무를 수행함에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 감찰 기관이다. 지혜로운 음료인 차를 마시며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차를 마시는 리추얼(ritual)을 통해 이성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하기 위한 다짐하는 시간을 내었고, 이는 백성을 위해 선한 정치를 이루려는 선대 왕들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조선 궁정의 차

조선의 왕과 문무대신들에게 차는 스스로를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군자의 기본 과업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과 예(禮)의 표현이었다. 물론 고려와 마찬가지로 각종 의례, 연회, 사신 접견 등의 국가 의식에서 차를 올리는 다례의 예는 조선의 방식대로 이어진다. 출생에서 시작해서 삶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는 관혼상제 의식에서 차를 올리는 의미는 특별했으며, 왕실만의 제사인 주다례(晝茶禮), 별다례(別茶禮)에서도 차를 올렸다. 주다례는 임금이나 왕비의 인산(因山)뒤 3년 안에 혼전(魂殿)이나 산릉(山陵)에서 낮에 드리는 제사이고, 명절·초하루·보름 이외에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드리는 차례는 별다례(別茶禮)다.  순조 대 이후 왕실 잔치에서 꽃·차·술을 올리는 일, 음식·음악·무용을 포함하는 진연(進宴)은 즐기기 위한 연회 이상으로 당시 문화와 사상을 반영하는 의례였다. 차와 술의 원재료인 찻잎과 쌀은 인간의 영생과 관련해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귀하게 만들어진 차와 정성으로 빚어낸 술은 왕실 진연에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었다. 왕실 번영과 무병장수를 위해 선별된 차와 술이 진다 의식에 올려졌다. 순조와 고종 대의 진연에는 작설차(雀舌茶)를 올리는 의식이 행해졌고, 영조 대에는 인삼차, 담강차(淡薑茶, 생강과 꿀로 만든 차), 송절차(松節茶, 소나무 마디로 만든 차) 등의 대용차를 사용하기도 했다. 쌀이 귀했던 시절 금주령을 내린 영조는 술 대신 송절차를 의례 음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 인산(因山): 태상왕·태상왕비, 임금·왕비, 왕세자·왕세자빈, 왕세손·왕세손빈의 장례.
● 혼전(魂殿): 임금이나 왕비의 국상 중 장사를 마치고 나서 종묘(宗廟)에 입향할 때까지 신위(神位)를 모시는 곳.
● 산릉(山陵): 임금과 왕비의 무덤으로 인산(因山) 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아니한 능(陵).
● 진연(進宴): 진연, 진찬(進饌), 진작(進爵) 등은 왕과 왕비 또는 왕대비의 생신 등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다.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진연이고, 진찬은 진연보다 절차와 의식이 간단하다. 그중 진찬은 내진찬(內進饌)과 외진찬(外進饌)으로 나뉘어 행해졌다. 내진찬은 왕실 일가친척이, 외진찬은 문무백관들이 참석해 열렸다.

 

1829년(순조 29), 기축년(己丑年)에 있었던 궁중 잔치를 그린 병풍이다. 순조가 즉위한 지 30년을 기념해, 효명세자가 거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순조(1790~1834)와 고종(1852~1919) 대의 진연에서 비교적 구체적인 진다 의례를 알 수 있다. 1829년 순조의 40세 생신과 즉위 30주년을 기념하는 잔치가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의 통솔하에 거행된다. 창경궁 명정전과 자경전 등의 진찬에서 네 차례에 걸쳐 연회가 베풀어지는데 개인용 찻상인 다정(茶亭)이 설치되고 음악이 연주되면 작설차가 올려졌다. 차는 은다종(銀茶鐘, 은찻종·은찻잔)에 따라 붉은 칠한 둥근 상에 받쳐 올린다. 차를 마시고 나면 다식으로 과일상인 별행과(別行果)가 마련됐다. 

내진찬(內進饌)에서도 왕과 왕세자에게 풍악과 함께 작설차가 올려졌고, 이후의 연회에서도 가무와 함께 차가 올려졌다. 고종의 재위 기간에는 작설차를 진다 의식에 자주 사용했다. 1892년 왕의 41세 생신과 즉위 30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왕이 첫 번째 술을 마시고 나면 제조가 작설차를 올렸고, 왕이 두 번째 술을 마시고 나면 부제조가 왕세자에게 작설차를 올렸다. 술로 취기가 오를 수 있는 연회를 차와 함께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진지하게 차를 올리는 진다 의식 절차를 통해 궁중의 연회는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회의 품격을 올리는 데 일조했다. 

궁중 잔치에서는 개인용 찻상인 다정(茶亭)이 준비된다.

 

세상을 아우르는 제왕(帝王)의 차

따듯한 인품으로 백성을 돌보고 편안히 살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군주가 갖춰야 할 자세라면, 우선 그 스스로가 안정된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효명세자는 정조와 같은 성군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심성의 안정을 위해 일상의 차 생활은 물론 의례에서도 차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차에 대한 그의 마음은 시의 언어로 종종 표현하기도 했다.

투명하고 청량한 한 잔의 맑은 차여   
차 한 모금 마시니 담박한 향기 피어오른다.
크고 작은 찻잔 모두 그 제도에 따랐음을 비로소 알겠고
사물에 능통한 자 무엇 때문에 옛 솥 좋아하는지 알겠네.
_ 『경헌집(敬軒集)』 권2, 「찻잔」

한 잔의 차를 마시고, 맑은 차에 감흥을 얻고 동화된다. 그 과정을 통해 효명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며, 그것은 마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군주의 역할, 즉 투명하고 맑은 한 잔의 차와 같은 통치자가 되겠노라는 의지를 담는다. 

왕에게 있어 차는 무엇일까? 스스로에게는 위안과 안정을 주고, 신하와는 의(義)를 두텁게 하는 매개체며, 왕실의 의례는 더욱 근엄하게 하며, 대외적 교류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왕에게 차를 잘 다룬다는 것은 국가 통치자로의 바탕이요, 세상을 아우르는 기반이 되는 지혜의 음료인 것이다. 

 

김세리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성균예절차문화연구소 고문으로 활동한다. 저서로 『차의 시간을 걷다-동아시아 차문화 연대기』, 『길 위의 우리 철학』, 『영화, 차를 말하다』 등이 있다. 월간 「다도」, 월간 「고경」, 더칼럼니스트에 차와 인문학 관련 글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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