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의 불교 성지순례는 8대 성지(atthamahathanani)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북인도에 흩어져 있는 이 여덟 곳 성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불자들의 중요 순례지가 되었으 며,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큰 공덕이 된다고 여겨졌다. 아쇼카 왕이 남긴 여러 명문은 이러 한 순례를 '경건한 행위'라고 말하고 있으며, 룸비니와 보드가야의 명문에서 보는 것처럼, 아쇼카 왕이 친히 이곳을 순례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8대 성지 가운데 부처님의 탄생, 정각, 초전법륜, 열반과 관련된 룸비니(Lumbini), 보드가야 (Bodhgaya), 사르나트(Sarnath),쿠쉬나가르(Kusnagar), 의 네곳을 특히 4대 성지라고 일컫는 다. 그리고 나머지 네 곳은 슈라바스티(Sravasti), 샹카쉬야(Samkasya), 라자그리하 (Rajagrha), 바이샬리(Vaisali), 이다. 이 네 곳은 부처님이 정각을 얻은 후에 중요한 기적을 행한 곳이다. 슈라바스티는 부처님이 티르티카(Tirthika) 종파의 이교도드을 물리치기 위하 여 기적을 보인 곳이며, 샹카쉬야는 부처님이 도리천을 방문하고 어머니 아야데비 (Mayadevi)에게 불법을 설한 후 다시 하강한 곳이다.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라자그리하는 부 처님이 미친 코끼리를 제압하는 기적을 행한 곳이며, 바이샬리는 수많은 원숭이들이 망고 동산에서 부처님에게 벌꿀을 바친 곳이다.
캘커타를 기점으로 8대 성지를 순례하는 경우 그 첫 경유지는 보드가야가 되는 것은 당연하 지만, 그 다음부터는 길이 다소 애매해진다. 가야에서 곧장 서행(西行)하여 초전법륜지 사르 나트로 가는 길과, 북상하여 라자그리하로 가는 두 가지 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라자그리하로 향한다면 바이샬리에 이르러스는 쿠시나가르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두 고 다시 파트나로 돌아와 사르나트로 갔다가 쿠쉬나가르로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가야 에서 사르나트 행을 택한다 해도 어려움은 마찬가지이다. 어디서든 어차피 한 번은 갔던 길 을 되돌아가야 한다면, 먼저 라자그리하-나란다-파트나-바이샬리로 갔다가 다시 파트나로 돌아와서 바라나시-사르나트를 순례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런 다음에 쿠쉬나가르-룸비니-쉬라바스티-샹카쉬야를 돌아본다면, 아마 8대 성지르 답사 하는 최단거리가 될 것이다. 가야(Gaya)에서 북쪽으로 60Km 거리에 라자르리하(王舍城)가 있다.
이곳은 부처님이 전법(轉法)의 여정을 통하여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 중의 하나다. 도시 의 동쪽에 위치한 영축산은 부처님이 <법화경>,<대집경>등의 대승 경전을 설했던 곳이다.
시가지에서 이곳으로 가는 길 왼편에 지바카(Jivaka)의 망고나무 동산이 있다. 지금은 대나 무 숲만 무성한 죽림정사(竹林精舍)터와 마하카쉬야파(Mahakasyapa)를 중심으로 5백 비구 들이 모여 경(經)과 율(律)을 집성했던 칠엽굴(七葉窟)도 라자그리하의 의미깊은 불적이다.
또한 이곳에는 열렬한 불교도였던 빔비사라(Bimbisara)왕과 그의 아들 아자타샤트루 (Ajatasatru)와 관련된 유적이 여럿 있다.아지타샤트루 왕은 부처님 입멸 후 8등분 된 사리 의 한 부분을 안치하고 스투파를 조성했던 왕이다. 이 스투파는 죽림정사에서 신(新) 왕사성 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있다.
8대 성지에 들지는 않지만, 라자그리하에서 파트나로 가는 길에 있는 나란다(Nalanda) 유적 을 지나칠 수 없다. 나란다는 세계최초(A.D.5c) 최대의 불교대학이 있었던 곳으로, 대승불교 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중관(中觀)과 유식(唯識)의 두 교학 체계가 싹트고 꽃을 피운 고향이며, 나가르쥬나(Nagarjuna, 龍樹), 아 상가(Asanga, 無着), 디그나가(Dignaga, 陳那)등 수많은 논사들이 거쳐간 곳이다. 이곳 유적 은 근 천오백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웅장함이 여전하다. 승원과 사원 유적이 함께 있다.
파타나에 들어서면 암라팔리라는 이름의 간판이 여럿 눈에 띤다. 암라팔리 호텔도 있고 암 라팔리 옷가게도 있다. 재빠른 상업주의가 바이샬리의 기녀(妓女) 암라팔리(Amrapali)를 끌 어다 쓴 것이다.
파트나에서 바이샬리까지는 북쪽으로 백리 길이다. 갠지스 강을 끼고 있는 바이샬리는 상업 이 번창하던,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의 도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녀 암라팔리의 이야기나 재가 불교의 선구라 할 수 있는 유마(維摩,Vimalakirti) 거사와 같은 인물은 이를 뒷받침한 다. 제2차 결집이 있었던 곳 또한 이곳 바이샬리이다. 오늘날 바이샬리 볼적의 중심은 이곳 릿차비(Licchavi) 족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라고 할 것이다. 바이샬리 박물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이 스투파의 서북 방향으로 약 2Km지점에 아쇼카 왕이 조성했다 는 스투파와 석주가 있다. 이 석주는 현존하는 아쇼카 왕 석주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 호한 것으로, 머리 부분의 사자 장식이 돋보인다.
어디를 경유하든 쉬라바스티로 가는 길은 멀고 어렵다. 룸비니에서 간다면, 우선 국경을 넘 어 소나울리까지 와서, 버스로 콜루히(Koluhi)-나우가르(Naugarh)를 경유하여, 나우가르에서 기차로 발람푸르(Balrampur)로 간다. 발람푸르에서 쉬라바스티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이렇듯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이곳에 기원정사(祈園精舍)터가 있는 까닭이다. 기 원정사는 부처님이 45년 전법의 여정을 통하여 24번의 안거를 보낸 곳이다. 지금은 단지 적 벽돌로 재현한 터만 슬쓸하지만, 그 의미로 친다면 어느 불적지 못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 이다. 불적지 가운데 가장 조용하고 산뜻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대라 한다면 또한 단연 이곳을 들어야 한다. 아차라바티 강 부근에 있는 앙굴라마라 스투파와 수닷타 장자 집 터도 빼지 말고 보아야 할 곳이다.
닿기가 어렵기로는 쉬라바스티 못지 않은 곳이 샹카쉬야이다. 샹카쉬야는 8대 성지 가운데 가장 외진 곳에 있다.
지난날 부처님이 쉬라바스티의 망고 나무 숲에서 홀연 몸을 감추어 도리천을 방문했다가 다 시 샹카쉬야로 하강하듯 그렇게 닿지 않는다면 실로 가기 어려운 곳이 샹카쉬야이다. 유적 관리가 허술하기로 친다 해도 아마 가장 밑바닥일 것이다. 허리 부러진 아쇼카 왕 석주와 이를 가두고 있는 작은 누각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현장이 전하는 대가람은 흔 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아쇼카 왕 적주 남쪽으로 약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나지막한 언덕이 있고, 그 위에 고색 창연한 건물이 하나 있다.
이곳을 지키는 늙은 바라문은 이 건물이 불교사원이라고 우기지만, 그 무엇으로 보아도 그 것은 힌두교 사원임에 분명하다. 금년 2월 인도 고고학회 책임자를 만났을 때, 곧 샹카쉬야 불적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작업이 있을 것이라 하였으니, 조만간에 삼계보도와 부처님의 하 강에 얽힌 불적이 여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샹카쉬야에서 델리로 가는 길에 마투라(Mathura)박물관에 들러, 인도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예의 그 불상을 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