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과 인도를 갈라놓는 국경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긴 나무 작대기 하나 걸쳐놓고 이쪽이 인도땅이고 저쪽은 네팔 땅이다. 국경을 건너면서 '여기가 정말 국경이냐'고 몇 번이나 물어 야 할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는 국경이다.
인도 말고는 나라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국경이라면 우리 나라의 휴전선처럼 으 레히 높은 철책이 가로막히고 무장군인들이 지키고 섰을 것이라 여겼는데, 이런 생각을 비 웃기라도 하듯 막아서는 사람도 없고 길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대로 이어져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고 끝을 맺는 휴전선 부근 그 철길이 생각나게 하는 국경이다.
수나울리(Sunauli)에서 국경을 건너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가 있다.
부처님 당시 룸비니는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동산이었다고 전해지며, 아쇼카 왕이 이곳을 방문하고 석주를 세웠을 때도 이곳은 융성한 마을이었다. 7세기경에 이곳을 답사했던 현장 또한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샤카족의 한 인물이 목욕하던 연못이 있는데, 그 물은 맑아 거울과 같다. 온갖 꽃들이 어지러이 피어있다."
지금의 룸비니는 이렇듯 아름다운 동산이 아니다. 허허 벌판에 허리춤까지 오는 억새풀이 무성한 황량한 들판이다.
아쇼카 왕이 석주에 명문을 새겨 조세를 감면해주고자 했던 룸비니 마을은 없다. 버스길에 서 유적지까지 근 십리 길에 보이는 것은 사방으로 온통 억새풀뿐이고 오가는 사람도 없다.
사실 룸비니의 위치에 대해서는 19세기말까지만 해도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
그러 던 중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휘러(A.A. Fuhrer)가 오늘날의 네팔령 테라이(Terrai) 지역 에 있는 옛 사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쇼카 왕 석주를 발견하였다. 울창한 숲에 버려져 있었던 이 석주의 명문에는 이곳에서 붓다 사캬무니가 태어났으며, 왕은 즉위 20년이 되던 해, 즉 기원전 244년경에 이곳을 순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오랜 세월 동안 잊혀 져 있었던 부처님 탄생지가 확인된 것이다.
명문의 내용은 아쇼카 왕의 부처님 탄생지 순례의 사실뿐 아니라, 위대한 성인이 탄생한 이 마을에 대하여 조세를 감면한다는 칙령을 담고 있어 불교에 대한 아쇼카 왕의 심중을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아쇼카 왕 석주의 동쪽에 접하여 있는 마야데비(Mayadevi) 사원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사방에 둘러친 포장을 비집고 들여다보았더니, 이미 사원은 없고 허물어진 돌더미만 눈에 들어온다.
원래 이 사원은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그 동안 몇 차례의 부분적인 개축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완전히 허물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원을 지키고 섰던 아름드리 보리수나무도 잘리고 없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나무 뿌리가 사원의 지반을 망가뜨릴 염려가 있어서라고 한다. 어련히 알아서 계단을 내렸을까마는 사원 앞에 섰던 그 보리수를 볼 수 없다는 서운함을 떨칠 수가 없다. 사원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 탄생 장면 부조는 경내 사무실에 임시 보관되어 있다.
오른손으로 사라(sala)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부처님을 출산하는 마야데비 부인과 그 옆으로 부인을 시중드는 범천(梵天, Brahma) 및 천녀(天女)들을 새긴 이 부조는 기원전 3세기 경의 유물이다.
사원 남쪽에 싯다르타 연못이 있다. 법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연못은 마야데비가 부처 님을 출산한 후에 목욕한 곳이며, 중승(衆僧)이 그 물을 떠서 마실 정도로 맑은 연못이었던 것 같다. 현장 또한 이 연못의 물이 맑아 거울과 같다고 전한다. 연못 주변으로 승원터와 고 대 스투파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현재 룸비니는 곳곳에 개발공사가 한창이다. 이미 오래 전에 발족된 룸비니 개발공사의 청 사진에 따라 박물관, 도서관이 세워지고 여러 가지 사업들이 진행중이다. 이 사업은 주로 네 팔 정부와 인근 불교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우리 나라도 동참하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새 로 태어나는 몸부림이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