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금정구.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 어귀에 부산 지역에 딱 하나, 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건물 외벽에는 청소년쉼터에 대한 어떠한 표시도 없었다. 은색 철문을 두드리고 쉼터가 있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 가정에서 쉼터로, 또 거리로
‘영희네집’, 재단법인 범어청소년동네가 운영하는 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의 이름이다. 범어사에서 사회복지를 위해 설립한 범어청소년동네가 2007년부터 부산광역시 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다.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쉴 수 있는 쉼터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발견된 경우 그날 하루 쉴 수 있는 일시쉼터가 있고요. 그곳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되면 최대 9개월까지 지낼 수 있는 단기쉼터로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영희네집과 같은 중장기쉼터예요. 중장기쉼터는 최대 4년까지 생활할 수 있습니다.”
허일수 소장이 쉼터를 찾는 아이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쉼터를 찾는 아이들은 경찰에 의해 발견되어 보호를 위해 오기도 하며, 스스로 안전하게 묵을 곳을 알아보며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집을 나온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쉼터의 존재를 모른다.
일시쉼터에서 중장기쉼터까지 생활공간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청소년들이 있는가 하면, 청소년 시기가 지날 때까지 생활하는 아이들도 있다. 중장기쉼터까지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생활하며 성인이 된다.
부산 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 영희네집은 현재 6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허 소장을 포함해 4명 선생님의 사무공간과 아이들이 주간에 생활하는 공부방, 휴게실 등이 같이 붙어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야간에 아이들이 머무는 숙소가 있었다. 한 방에 2명씩 생활하는 공간은 일반 가정집과 다를 게 없었다.
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데에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있다.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고, 함께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 선생님들이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지만 외출을 할 때는 이야기를 하고 나간다. 그 밖에 사소한 규칙들이 있다.
“쉼터 생활을 하려면 어쨌거나 규칙을 따라야 하는데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보호와 관심이 억압과 간섭으로 느껴지나 봐요. 쉼터를 들락날락하다가 아예 밖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사실 쉼터에 오는 아이들보다 쉼터 밖에서 생활하는 가출 청소년들이 훨씬 많습니다.”
쉼터에서 생활을 하면 다행이지만, 집을 나온 아이들 중 일부만 쉼터를 향한다.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가출팸’이라고 불리는 모임을 만든다. 원룸, 모텔, 사우나, PC방 등에서 생활하며, 길 위에서 노숙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 위험에 처한 아이들
가출 청소년을 향한 어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어린 나이에 발랑 까져서”, “커서 뭐가 되려고”, “부모 속 썩이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비행청소년으로, 부적응 학생으로, 문제아로 낙인찍어 바라보기 일쑤다.
“집을 나온 아이들이 술과 담배를 하고, 남녀가 어울리고, 밤늦게 돌아다니니 보통의 학생들과 다르게 보여 나쁜 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열에 아홉은 가정문제입니다. 이혼 가정, 한 부모 가정, 가정 폭력 등 아이들을 지도해야 할 가정이 붕괴되고 해체되어 아이들이 거리로 나옵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다른 어른들의 말을 들을까요? 바른길로 이끌어줄 사람이 없기에 잘못된 길로 빠집니다.”
허일수 소장은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문제로 집을 나왔다고 했다. 지금 청소년들의 부모들은 그들의 부모세대와 많이 다르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서로가 참지 못하고 돌아서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다. 포기하는 게 쉬워졌다. 어른들의 변화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집을 나온 아이들과 면담해 보면 이런 경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잦다. 이혼한 엄마(혹은 아빠)가 계속해서 아이에게 “너는 네 아빠(혹은 엄마)를 닮아서 애가 왜 이래”라며 아이를 혼낸다. 부모가 이혼하며 나 몰라라 아이를 버리고, 재혼한 부모의 새 배우자로부터 아이는 학대를 당한다. 부모의 손찌검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도망 나오기도 하며, 아이가 번 돈마저 빼앗은 부모들이 수두룩하다. 전국의 가정 밖 청소년은 30여만 명에 달한다.
“어른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집을 나온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가출을 하는 아이들 중 10퍼센트만이 쉼터를 찾아요. 나머지 90퍼센트의 아이들이 쉼터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위험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범죄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요. 특히 여자 아이들의 경우 성범죄를 많이 경험합니다. 직간접적으로 성범죄에 연루되어요.”
허 소장의 말에 따르면, 여자 가출 청소년의 경우 통계로 나와 있는 수치보다 더 많이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하루 이틀 정도 일시적인 가출이 아니라 한 달 이상 집을 나온 거의 모든 여자 아이들은 성매매 등의 경험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한다.
도움을 준다는 말에 속아서 성폭행이나 성매매를 당하기도 하며, 체계적으로 포주가 있고 성매매를 하는 곳에 끌려가기도 한다. 또 여자 아이들 스스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직접 성매매를 하는 등 성범죄가 만연하다. 상처 난 마음이 아물 틈도 없이 아이들은 위험에 처한다.
“그렇기 때문에 쉼터의 존재가 꼭 필요합니다. 길 위의 아이들은 너무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청소년들은 힘이 없습니다. 특히나 여자 청소년은 더 심합니다. 어른들에게 피해를 당하고, 또래 남자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당합니다. 위험은 널려있는데 보호받을 곳은 한정적이에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 아이들에게는 쉴 곳이 필요하다
허 소장 이전에는 범어사 스님들이 쉼터의 소장 역할을 맡았다. 그 전에 소장을 맡았던 스님들이 지금까지도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쉼터 시설물 관리에 있어서 봉사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스님과 신도들이 와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쉼터 운영에 대한 도움만이 아니라 아이들과도 함께 한다. 스님과 봉사자들은 아이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나눈다. 상처받은 마음을 살피며, 정신적으로 아픔을 나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그런 어른들이 어색했지만, 자신들을 위해서 도움을 주고 공감하는 모습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영희네집 아이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며 도움을 주는 분들을 통해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기초 학업 공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상식 등 자립을 위해 많은 것들도 배운다. 문화의 날이라고 해서 영화나 연극을 보기도 하고 가죽공예품을 만들거나 스키장에 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쉼터에서 생활하며 보다 나은 앞날을 준비한다.
영희네집에서 생활하던 한 아이는 작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자립했다. 또 어떤 아이는 대학에 진학하여 기숙사로 거처를 옮겼다. 봉사자들에게 과외를 받기도 하며 사회로 나가기 위해 각자 준비한다. 아기 새가 둥지를 떠나듯, 아이들의 목표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쉼터는 말 그대로 잠시 쉴 곳이다.
“이곳 쉼터에서 열심히 준비해서 잘 된 아이를 보면 뿌듯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쉼터에서 좋게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지만 사실 예산이 부족해요. 심지어 밥값을 줄일 수밖에 없는 쉼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자체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그에 반해 집을 나오는 아이들은 많아지기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집을 나오는 연령대도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부산이지만, 청소년 쉼터의 수와 예산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범어재단과 지역 중소기업, 몇몇 스님들을 포함한 개인 후원자 등이 도움을 주고 있지만 전체 예산 상황을 보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부산에서 여자 청소년이 장기간 쉴 수 있는 곳은 이곳 하나. 부산 내 모든 청소년쉼터를 다 합해도 6개다. “지자체의 예산이 많이 모자란다”며 허 소장은 “앞으로 생활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청소년 쉼터가 130개 정도 있습니다. 집을 나온 아이들을 수용하기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 현재 운영하고 있는 쉼터에 대한 지원도 많이 부족합니다. 거리에 나와 있는 우리 아이들을 도와주세요.